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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A TOGETHER
부동산 이야기

디플레이션(Deflation)과
부동산

송현부 도시경제학 박사(일본도시경제연구소 소장)

세계적으로 저성장 현상이 지속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평균 상승률(2019년 1월부터 9월까지 기준)은 0.35%이며, 9월에는 -0.4%로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0%대의 낮은 물가 상승률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하락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이 강하게 표면화되면서 국가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은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의 한 부문에서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은 디플레이션이 아니며, 가령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을 디플레이션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디플레이션은 물가수준이 하락하는 상황으로 인플레이션율이 0% 이하이면 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부동산, 주식의 가격은 하락한다. 우리는 고도 성장기에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며 관련 정책을 펼쳐왔지만, 디플레이션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염려스럽다.

선진국 사례를 통해 디플레이션의 역사를 보면, 영국은 산업혁명 당시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장기적 대불황을 경험했다. 당시 영국은 미국과 독일 등 신흥공업국의 성장으로 인해 경제가 침체하였다. 영국의 제조업은 세계 시장 점유율 1870년 31.8%에서 1896년~1900년 19.5%로 하락했고, 수출 점유율도 1870년 18.9%에서 1900년 15.0%로 하락했다. 당시 영국의 성장률은 미국 4%, 독일 3%의 경제성장률보다 밑도는 2% 미만이었다. 미국도 과잉공급의 충격으로 인해 대불황(1873년~1896년)에 따른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디플레이션 현상이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집중된 까닭은 금본위제 제도를 채택했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선진국 통화제도에서 금본위제는 완전히 폐지(1978년 4월)되었고, 산업경제 시대에 진입한 20세기 이후에 발생한 장기적 디플레이션 사례는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거품경제를 조정하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고 총량규제에 따른 대출을 제한(1989년~1990년)하는 긴축정책에서 비롯됐다. 1992년 이후 일본의 물가 상승률과 기업물가지수, GDP디플레이터,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일본은행(2000년)은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고자 제로금리 정책을 해제하고 2001년에 양적 완화, 긴축재정, 민영화, 규제 완화 등의 경제정책을 펼쳤지만 이것이 오히려 일본의 경제를 더욱 침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장기적 디플레이션 속에서 2016년 1월에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도입하게 되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의 가치가 폭락하는 데서 오는 충격이 컸다. 1990년대 거품 붕괴에서 부동산 및 주가가 폭락함으로 인해 극심한 내수 부진으로 총수요 측면에서 물가하락 압력이 증폭되어 경기회복을 찾지 못한 데서 기인하고 있다. 또한 일본 디플레이션이 복잡하고 장기화한 까닭은 디플레이션의 발생 원인을 자산 디플레이션으로 판단하지 못한 점, 문제를 안일하게 생각한 점, 부실채권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한 점 등으로 인해 신용경색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산(부동산) 버블 붕괴로 성장기반이 크게 손실된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접어든 일본의 저성장, 저출산(0세~13세 비율이 1995년 16%에서 2015년 11.8%로 감소), 초고령화(65세 이상 비율이 1995년 14.6%에서 2015년 26.9%로 상승)가 만성적 디플레이션의 구조적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실물자산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한 고령층에 거품 붕괴 피해가 집중되면서 총수요 부진을 심화시켰고, 주택시장의 주된 구매 연령인 35∼54세 인구가 감소한 것은 구조적 부진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노동시장에서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서비스업 분야에 지속하여 진입하면서 명목임금의 기조적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잃어버린 20년의 불황 경제와 디플레이션 시기를 겪으며 일본의 토지자산액은 1994년 1,965조 엔(1990년 2,477조 엔 피크 시)에서 2013년 1,136조 엔(최저기)까지 하락하였고, 주식 자산액은 1994년 477조 엔에서 2011년 334조 엔까지 하락(증발)하였다. 일본의 경제는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 등으로 호텔 중심의 부동산 경기가 활력을 띄는 듯 이제야 상승 기조를 보인다.

만약 우리나라에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부동산 시장은 거래가 단절될 것이고 부동산 담보와 연계된 가계부채 상환 불능 위험도 커질 것이다. 또한 경기 침체로 가계 수입은 감소하고 세금은 증가하여 대출 빚을 감당하기 힘든 부동산 소유자들은 자산을 헐값에라도 처분하려고 할 것이다. 2019년 경제성장률이 1%대로 예상되는 거시경제에 비하면 금융비용(대출금리)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며, 부동산 취·등록세, 양도세 등의 거래 비용도 고성장 시대에 못지않게 높다고 할 수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대출금리, 저축금리도 동반 하락하며 소득 감소로 인해 채무상환 능력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자산 디플레이션 시기에 초저금리정책의 도입 및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 정책을 추진하여 통화 가치를 올리고 물가 하락을 억제하는 등 경제의 균형을 조정할 것이다.

디플레이션 발생 시에는 물건의 가치, 부동산의 가치도 하락한다. 다만 화폐가치가 불안정하여 오히려 금, 외환, 부동산 등의 현물투자에 대한 움직임이 높아진다. 또한 세계적으로 거래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면, 만일 원화 가치가 하락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의 경우 일본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임대 수익성 아파트는 임대료 대비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았으며, 임차인이 갑자기 임대료를 내려 달라고 요청하는 사례도 적었다. 수요가 안정된 임대 목적의 부동산은 디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자산 가치가 다소 하락해도 임대료의 변동 폭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디플레이션 발생 시 위험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동산을 선정하여 투자하면 주식처럼 경기가 좋고 나쁨에 연동하여 월 임대료가 연계되어 요동하지는 않는다. 주식의 가격 변동보다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의 하락은 작고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를 보면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은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 구조의 취약 요인(부동산가격의 불안정성 지속, 초고령화 진입, 가계부채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저성장, 저물가, 저출산 등의 상황이 굳어져 향후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정책의 적절한 도입이 요구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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