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위기의 메모리 반도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램’은 바닥 지났다

글. 이서영 기자(서울파이낸스신문 증권부)

낸드플래시는 빨간불

‘세계 1위’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산업 분야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1위’는 한동안 당연한 수식어였고, 지금도 여전하지만 요새는 ‘위기’라는 수식어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중 SK하이닉스의 실적을 살펴보자. 상반기에만 6조 2,844억 원의 적자를 봤다. 삼성전자는 전체 실적으로 봤을 때는 흑자이지만, 반도체에서만 상반기 9조 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 삼성전자는 반도체에서만 29조 원의 이익을 내면서, 한때 주가가 1주당 9만 6,800원까지 찍은 적도 있다. 10만 전자가 눈앞에 있는 듯했지만, 지금은 7만 전자 언저리에서 주가가 지지부진하다.

우리나라의 기둥처럼 여겨지는 두 반도체 기업들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반도체를 종류별로 살펴보면 상황은 약간씩 다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중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이 메모리 반도체는 ‘D램’과 ‘낸드플래시’로 나뉜다. 간단하게 D램과 낸드플래시를 설명하면 D램은 도체가 데이터 저장을 하여 내부에서 이동이 수월하고, 낸드플래시는 부도체가 데이터 저장을 하여 이동은 수월하지 않지만 저장을 오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이런 기술적인 설명은 중요치 않다. D램은 흑자, 낸드플래시는 적자라는 점이 중요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사업 부문은 지난해 4분기부터 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D램은 올해 1분기부터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올해 1분기는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적자였지만, 낸드플래시의 적자액이 2배가량 컸다. 심지어 두 회사 모두 올해 2분기 낸드플래시 적자 액수가 D램 적자 액수보다 6배나 많았다.

올해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대부분 반도체 공급업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불어온 반도체 불황을 견디다 못해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감산에 들어갔다. 다만 두 회사는 모두 적자 폭이 큰 낸드플래시를 적극적으로 감산했던 것이 아니라 수익성이 더 나은 D램 감산에 적극적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D램과 낸드플래시의 ‘시장 구조’가 다름에 있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점유율이 33.5%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D램도 1위다. 그러나 D램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3사로 분할된 경쟁으로 제한적인 시장이다.

D램과 달리 낸드플래시 시장에는 3사 외에도 일본의 키옥시아,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 중국의 YMTC 등 경쟁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 심지어 SK하이닉스는 지난 2020년 10월에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 부문을 인수했고, 인수 전 5위였던 낸드플래시 점유율이 지난해 2위로 성큼 올라서며 위협적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경쟁자가 다수인 시장이야말로 현재 감산하지 않아야 향후 호황이 왔을 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시장 구조적인 문제 외에도 D램은 성장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이다. 챗GPT가 세상에 나오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에는 D램 중에서도 고성능 D램인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요하다. 이에 D램에 훈풍이 불어올 것이라는 예측이 이미 많았다. AI 붐과 함께 올해 세계 HBM 메모리 수요가 전년 대비 60%가량 증가할 것이란 시장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이 같은 예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오는 듯하다. 전 세계 D램 매출은 지난해 3분기부터 전 분기 대비 하락세를 이어왔으나, 올해 2분기 매출은 약 114억 3,000만 달러로 전 분기 대비 20.4% 증가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보다 먼저 상품 개발을 시작해, 현재 1위를 차지하고 있다(SK하이닉스가 1위인 것에 대해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추산할 때 자신들이 1위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논외로 하자). HBM은 1세대에 이은 4세대 제품까지 있는데, 4세대 제품양산은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 또한, SK하이닉스가 5세대까지 개발하며 GPU를 생산하는 미국 엔비디아에 샘플 공급을 시작했다. HBM 덕에 SK하이닉스는 전 분기 대비 시장점유율이 5.7%포인트 상승하기도 했다. ‘엔비디아, 땡큐’를 외칠 정도로 성장세가 커지고 있다.

D램 시장은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낸드플래시 시장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설명이 가장 잘 어울린다. 낸드플래시의 가격은 1년 사이 평균 20%가량 하락했다. 이로 인해 현재 낸드플래시 거래 가격이 원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장 구조도 경쟁체제인데, 수요 또한 부진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낸드플래시의 주력 제품인 128단과 176단 제품은 40%가 모바일에 사용된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은 올해 10년 만에 최저치 규모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마트폰 판매량이 감소하다 보니, 낸드플래시 사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PC 판매량도 감소세가 뚜렷하다.

이에 따라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낸드플래시를 추가 감산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경쟁업체인 마이크론, 키옥시아, WD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의 수익성 하락을 두고 볼 수만 없는 모양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약 10% 추가 감산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낸드플래시 공급 회사들이 감산에 들어갔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4분기까지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짜 위기는 ‘낸드플래시’부터

위기의 메모리 반도체라는 말은 여기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위기의 ‘낸드플래시’다. 낸드플래시 사업 위기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본격적인 감산이 이제 시작됐으니 내년 초면 현재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견해가 있는 반면,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부정적인 의견의 밑바탕에는 낸드플래시 시장이 살아나려면 시장 구조가 D램처럼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D램 시장처럼 3개사 정도로 경쟁사가 줄어야 하지만, 그럴 기미가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점유율 3~5위권에 있는 키옥시아와 WD의 합병설은 주기적으로 흘러나오고 있기는 하다. 키옥시아와 WD가 합병하면 올해 1분기 점유율 기준, 단순계산으로 전체 낸드플래시 시장의 36.7%를 점유한다. 이는 삼성전자를 앞서는 수준이다.

하지만 주요 낸드플래시 업체가 합병을 한다고 업계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적다. 낸드플래시 시장에 경쟁업체가 많은 이유부터 찾아봐야 한다. 낸드플래시는 D램처럼 10㎚(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공정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즉, 두 회사가 합병돼 경쟁자가 줄어들더라도 중국 혹은 제3국에서 빠르게 기술을 습득해 또다시 진입할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사업을 버려야 할까? 그러기도 쉽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단편적인 예시로 디스플레이 업계의 액정표시장치(LCD)와 비슷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중국의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면서, 저가 공세로 LCD 패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에 LCD 패널 가격이 떨어지고 국내 업체들은 수익성이 떨어지자 지난해부터 LCD 사업에서 철수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가 LCD 사업을 철수하다 보니, 중국이 주된 생산국이 돼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TV 등 일부 IT 기기에는 LCD 패널이 필요한데, 이를 장착해야 하는 TV와 핸드폰 제조사들은 가격 상승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중국산 제품밖에 쓸 수 없으니, 가격 낮춰달라는 요구가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만약 지금 당장 힘들다고, 낸드플래시 사업을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러기엔 위험 부담감도 크다. AI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성장 중인 HBM에 대한 기대, 낸드플래시 시장도 다시 한번 성장 모먼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랄 뿐이다. 일부에서는 2025년쯤이 되면 데이터센터향 수요와 전기차·자율주행차 확대 등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이 활기가 돌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D램과 달리 AI 수요에 특화된 낸드플래시 제품이 많이 없다는 문제점도 있는 만큼, 향후 시장에 발맞춰 또 다른 기술 개발을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두 기업이 각자의 전략과 박자에 맞게 낸드플래시 시장의 암흑기를 버틸 여력은 메모리 반도체 1, 2위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HBM에 대한 기대, 낸드플래시 시장도
다시 한번 성장 모먼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랄 뿐이다.

구독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