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마라톤대회 참가기

베를린마라톤대회 참가기

※ 이 글은 정열우 감정평가사님께서 기고하신 글입니다.

글. 정열우 감정평가사(태평양감정평가법인 대전충남지사)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을 후회 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반환점 없는 마라톤이다.
손기정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1. 마라톤에 대하여

마라톤의 기원(유래)

마라톤은 기원전 490년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의 전투에서 비롯된다. 아테네군이 페르시아군을 격파하자, 이 승전보를 알리려는 아테네군의 한 병사가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까지 약 40㎞의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갔다. 그는 장거리를 종주한 뒤 “우리가 승리했다. 아테네 시민이여, 기뻐하라”고 외친 후 죽었다.

근대 올림픽 부활 당시 소르본 대학의 언어학자 이셀 브레얼 교수가 이러한 고사를 쿠베르탱 남작에게 전달하면서 마라톤이 올림픽 경기로 채택되었고,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인 아테네대회부터 마라톤 경주가 실시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마라톤대회는 1920년 조선체육협회 주최로 열린 경성 일주 마라톤대회(25㎞)이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孫基禎)이 세계 신기록인 2시간 29분 19초로 우승했고, 남승룡(南昇龍)이 2시간 31분 42초로 3위를 기록하여 한국 마라톤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마라톤을 금지하는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라톤을 금지하는 나라는 ‘이란’이다. 이란이 마라톤을 철저하게 금지하는 이유는 마라톤의 기원에서 비롯되며, 1974년 자국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서도 마라톤 종목을 제외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 사신을 보내 무조건 항복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아테네는 항복은커녕 페르시아 사신을 우물 속에 넣고 매장해 버렸다. 화가 난 다리우스 대제는 전함 600여 척에 10만여 명의 정예군사를 동원, 아테네 정벌에 나섰다.

페르시아군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약 40㎞ 떨어진 마라톤 평원까지 진격해 왔다. 그러나 전선 중앙부에 비교적 약한 군을 배치하고 좌우로 강력한 부대를 포진해두었던 아테네군의 작전에 말려들어 페르시아군은 앞뒤로 포위된 채 무력하게 무너졌다. 아테네군은 쫓기는 적을 해안가 습지로 몰아넣었다. 아테네군은 습지에 빠져 오도 가도 못 하게 된 페르시아군을 무참하게 살육했다. 이 전투에서 죽은 페르시아군 전사자가 6만 4,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는 완벽한 승리를 거둔 반면 페르시아의 정예부대는 치욕적인 첫 패배를 당했다. 페르시아 입장에서 보면 마라톤 전투는 끔찍한 기억이다.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이 지금도 마라톤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이유다.

손기정옹이 세무사를 찾은 이유

몇 해 전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세무사의 사무실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나를 만난 세무사가, 자기 사무실로 오다가 혹시 손기정옹을 뵈었느냐고 물었다. 못 보았다고 했더니, 조금 전에 그 사무실을 다녀가셨다고 얘기하면서 이제는 많이 늙으셔서 지팡이를 짚고 다녀가셨다는 것이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어른께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보다도 연세가 높으셨기 때문이다.

세무사는 그분을 보내드리고 나서 자기 마음이 무거운 반성에 잠기게 되었다고 했다. 손 옹이 찾아와 “최 선생, 바쁘지 않으면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어? 내가 요사이 어디서 상을 받은 것이 있는데, 상금도 생겼다고. 그래서 공짜로 생긴 돈이니까 세금을 먼저 내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왔는데,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어.”라고 한 것이었다. 세무사가 “선생님은 연세도 높고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신고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럴 수는 없지. 내가 지금까지 한평생 얼마나 많은 혜택을 국가로부터 받고 살았는데. 세금을 내야지. 내가 이제 나라를 위해 도움을 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아?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 세무사가 그러면 도와드리겠다고 말하고, 계산해 보여드렸다. 그 계산서를 살펴본 손 옹은 “그것밖에 안 되나? 그렇게 적은 돈이면 내나 마나지. 좀 더 많이 내는 방법으로 바꿀 수는 없나?”라고 요청해 왔다. 세무사가 다시 법적으로 가장 많은 돈을 낼 수 있는 방법으로 계산해드렸더니 그제야 만족해하면서 “됐어, 그만큼은 내야지. 그래야 마음이 편하지….”라면서 정리하고 가셨다는 설명이었다.

손 옹이 긴 복도 저쪽까지 걸어가는 것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드리고 오면서 생각해보니까 ‘나라가 없을 때 사신 분들은 우리와 생각이 다르구나. 나는 한 번도 대한민국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형석 교수님의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에 수록된 내용
(손기정 : 1912. 5. 29. ~ 2002. 11. 15., 김형석 : 1920. 7. 6. ~ 생존)



왜 42.195㎞인가?

42.195㎞를 달리는 마라톤은 고대 아테네 병사 얘기에서 유래한다. 아테네 병사가 달린 거리는 약 40㎞라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난 일이라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1908년 런던올림픽대회 때 영국 왕비 알렉산드라(에드워드 7세의 부인)가 “마라톤이 윈저성에서 시작해서 화이트 시티 스타디움(경기장)에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이 거리에 맞추다 보니 어정쩡한 ‘42.195㎞’라는 숫자가 나왔는데, 이후 이것이 국제 기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출처 : WBRC 1

여성 마라톤의 역사

1980년대 이전에는 여성이 마라톤을 하면 아이를 가지기 힘들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오랫동안 여성의 마라톤 참여가 금지당해왔다. 그러나 달리기가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의 문제를 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건강과 순산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다.

최초의 여성 마라토너인 ‘캐서린 스위처’는 여성 마라톤 역사에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여성의 마라톤 출전이 금지됐던 1967년,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이름을 이니셜으로만 등록하고 남장을 하여 대회에 출전했다. 달리는 중에 여자라는 자신의 정체가 들통난 그녀는 달리지 못하게 붙잡던 주최 측과 남성 마라토너들, 관중(응원단)들의 끈질긴 방해에도 불구하고 4시간 20분 만에 완주했지만, 결국 실격으로 처리되었다. 그후 이 소식이 여기저기에 알려지면서 여성의 마라톤대회 참여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캐서린 스위처는 그로부터 50년 뒤 만 71세에 자신의 옛 번호였던 261번 번호표를 달고 2017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4시간 44분 31초로 완주했다.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대회

학생들이 시험을 대비하여 열심히 공부하듯,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면 목표가 생기지 않아서 나태해진다. 이에 일부 마라토너들은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대회 참가를 목표로 하기도 하는데, 달리기의 의지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좋은 것 같다.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대회는 미국의 뉴욕·보스턴·시카고, 독일의 베를린, 영국의 런던, 일본의 도쿄마라톤대회다.

베를린마라톤대회

베를린마라톤대회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1974년부터 매년 9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개최된다. 2008년에는 전 세계 107개 국가의 4만 827명이 참가해서 3만 5,913명이 완주해(완주율 약 88%)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마라톤대회 중 하나로 기록됐다. 마라톤 코스는 티어가튼에서 출발하여 베를린 시내를 돌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약 200m 지점인 티어가튼에서 끝나는 순환형으로,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이 약 1㎞ 정도의 거리다. 2022년 대회에서는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38세)가 2시간 1분 09초로 세계 신기록 2 을 세우며 우승했고(본인 기록인 2018년 베를린마라톤대회의 2시간 1분 39초에서 30초 단축), 2023년 대회는 킵초게가 2시간 2분 42초로 우승, 특히, 여자 부문에서 에티오피아의 티기스트 아세파(26세)가 2시간 11분 53초의 엄청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며 이날의 주인공이 되었다. 참고로 우리나라 여자 최고기록은 2018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김도연 선수가 세운 2시간 25분 41초, 남자 최고기록은 2000년 도쿄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이봉주 선수가 세운 2시간 7분 20초이다.

  • 1 남자 선수들 속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그녀를 억지로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하는 감독관 사진은 미국 라이프지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사진 100장’에 꼽힐 정도로 역사적 장면이라고 평가받는다.
  • 2 ‌2023년 10월 8일 시카고마라톤대회에서 케냐의 켈빈 키프텀(23세)이 2시간 0분 35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2. 나의 베를린마라톤대회 참가기

베를린마라톤대회 참가

나는 베를린마라톤대회 참가를 오래전부터 꿈꾸었으나 쉽지 않았다. 2019년에 독일어를 전공한 딸이 인터넷으로 참가 신청을 해줬는데, 나의 최근 1년 기록이 3시간 20분 이내가 아니어서(2018년 11월 4일 JTBC 마라톤대회에서 3시간 39분 17초 기록) 탈락, 참가인원 제한 전체 4만 명 추첨에서 제외되어 참가가 좌절되었다.

2020년에는 여행사를 통해 참가 신청(연령별 기준기록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대회 활성화 차원에서 여행사에 제공하는 쿼터) 하였으나, 달리기하다 넘어져 왼쪽 어깨 인대 접합 수술로 3개월 정도는 운동을 못 할 상황이어서 취소하고 계약금을 환불받았다.

2021년에는 전 세계적인 팬데믹(코로나 19) 영향으로 대회가 취소되었고, 2022년에도 여행사를 통해 참가 신청하였으나 달리기 연습 중 왼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또다시 취소하고 계약금을 되돌려 받았다. 두 차례나 베를린마라톤의 참가를 취소했었기에 2023년에는 신청하지 않고 있었는데, 여행사에서 신청하라는 연락을 받아 2월 1일 드디어 참가 신청을 했다. 올해는 무사히 참가하고 완주할 수 있기를 다짐하며 열심히, 그러면서도 조심조심 연습했다. 그러나 7월과 8월은 무더운 여름이라 대회가 없어 하프마라톤을 완주하지 않은 것이 조금은 걱정스러웠다(다만, 무주 구천동에서 8월 5일 30㎞, 8월 19일 24㎞ 연습함).

출발준비

대부분의 마라톤 선수들이 대회 전날 밤엔 긴장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전날 밤 얼마나 잠을 깊이 잤느냐에 따라 대회 당일 컨디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나의 최대 숙제는 달리는 중간에 변의(便意)를 느끼지 않도록 출발 전에 해결하는 것으로, 원만하고 깔끔하게 준비할 수 있을지 긴장되었으나 원하는 대로 해결되었다.

달리는 중 갑작스럽게 배변 신호가 찾아오는 현상은 의외로 종종 있는 일이다. 의학적으로는 ‘러너스 트롯(Runner’s trot)’ 또는 ‘러너스 다이어리아(Runner’s diarrhea)’라고 부르기도 한다. 출발할 때는 몸 상태가 최상이었음에도, 30㎞ 이후에 갑자기 창자가 뒤틀리듯 통증이 오는 것에 대해 의학적으로 명확히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공급이 일정한 산소와 혈액이 근육에 대량을 공급하느라 소화기관에 공급되는 양의 부족으로 소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소화 장애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2023년 달리기 연습 내역
연월 운동일수(일) 운동 거리(㎞) 비고
2023. 2. 19일 198
2023. 3. 20일 252
2023. 4. 20일 229
2023. 5. 17일 206
2023. 6. 19일 215
2023. 7. 23일 234
2023. 8. 22일 238 8월 5일 30㎞
~ 2023. 9. 21. 13일 162 9월 22일 출국
누계 143일/233일 1,734 평균 12.1㎞ 달림
마라톤대회 참가 내역
날짜 대회명 참가부문 기록 비고(날씨)
2023. 2. 19. 청주 무심천 마라톤대회 하프마라톤 1시간 46분 56초 1~8℃
2023. 3. 19. 2023 서울(93회 동아)마라톤대회 마라톤 3시간 56분 51초 3~13℃
2023. 4. 30. 제1회 이순신 백의종군길 마라톤대회 하프마라톤 1시간 52분 11초
2023. 5. 14. 제19회 대전3대하천 마라톤대회 하프마라톤 2시간 1분 59초
2023. 6. 10. 제20회 보령 마라톤대회 하프마라톤 2시간 11분 50초 21~25℃
2023. 7. 8. 전마협 훈련 마라톤대회 10㎞ 50분 24초
드디어 출발이다

대한민국 대표 선수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고 싶어 가슴과 등에 ‘Korea 정열우’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최저 10℃, 최고 18℃ 기온에 바람이 없고, 옅게 낀 높은 구름이 좋은 차일이 되어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다. 마라톤대회 출발선에 설 때마다 마치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듯한 수준의 긴장 가득한 경외감으로 몸과 마음이 충만해진다. 매번 출발선에 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가슴 설레며 동시에 두려운 마음을 안고 출발선에 섰다. 달리는 중에 신발 끈이 풀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출발 직전에 다시 한번 신발 끈을 잘 묶는다.

대회 참가 신청 시에 예상기록(원하는 기록)을 4시간으로 제출했던바, 출발 순서 A~K 그룹 중 E그룹에서 출발했다. ㎞당 평균 6분 속도로 40㎞를 4시간, 2.195㎞를 13분, 전체 4시간 13분 목표로 잡았으며, 외국대회에서는 국내대회보다 30분 정도 여유 있게 달리려고 한다.

130여 개국의 4만 5,000여 명이 출발하는 것도 커다란 장관이고, 이 속에 내가 포함되어있다는 게 가슴이 뛰고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관중 혹은 응원하는 이들도 달림이들만큼이나 많아 베를린시 전체가 흥겨운 축제(Festival)에 빠진 듯하다.

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 행복을 찾아가는 여행

마라톤대회 출발선에 서면 고민은 사라지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지난 일에 대한 미련, 회한, 아쉬움이나, 앞으로의 일에 대한 근심 걱정 없이 오롯이 현재에 집중하고 만족한다.

최적의 체중보다 1kg 증가할 때마다 마라톤 기록은 3분 길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42.195㎞를 한걸음에 평균 1m로 본다면 약 4만 2,000보, 좌우 한 발에 각 2만 1,000번씩 디딤을 하는데 체중 1kg이 발목과 무릎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것이다. 내 최적 체중은 63~64kg으로, 이 체중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실제 유지하고 있다. 키는 173㎝.

마라톤을 완주한 성취감으로 이루어진 행복함은 얼굴에서도 환하게 드러나,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진짜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성취감을 느낄 기회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번 출발선에 서는 일은 내면의 게으름과 싸움이었고, 불안함과의 사투였고, 몸과 마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단톡방과 응원

출발 전에 친조카 18명, 처조카 21명, 가족(마눌님, 아들과 딸), 형제자매(8명) 등 단체 카톡방을 4개 만들어 달리기를 생중계했다. 10㎞마다 사진을 전송하고 댓글을 읽고 답하면서 달리니 지루할 틈이 없다.

5㎞ 지점까지 26분 8초, 5~10㎞ 지점까지 26분 58초, 누계 53분 06초

10㎞ 지점 부근에 한국인 50대 여성 5~6명이 반갑게 환영해준다. 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부탁하고 단톡방에 올리는데 3분 정도 걸린다.

10~15㎞까지 26분 42초, 누계 1시간 19분 48초
15~20㎞까지 27분 33초, 누계 1시간 47분 21초

20㎞ 지점에서 길옆에서 힘차게 응원하는 중년 서양 여성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20~25㎞ 지점까지 30분 08초, 누계 2시간 17분 29초
25~30㎞ 지점까지 33분 03초, 누계 2시간 50분 32초

30㎞ 지점에서 젊은 백인 남성에게 부탁한 사진이 단톡방에 보내려니 없다. 달리기를 중단하고 포즈를 취했었는데…. 할 수 없이 ‘30통과’라는 글자만 전송하고, 35㎞ 지점에서의 사진을 전송했다. 30~35㎞까지는 34분 40초로 누계 3시간 25분 12초.

달리기는 자기 자신과 싸움이다. 마라톤은 휴식시간도 없고 교체할 수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혼자만이 달려야 한다. 하지만 달리다가 지치고 힘겨울 때 누군가의 응원이 없으면 아마 더 힘들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마라톤 중계를 보면 거리에 나와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 달려보면 그분들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어린아이들까지 나와서 고사리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해주면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힘이 솟는데, 브라스밴드에 맞추어 열심히 춤을 추는 3~4세 정도의 꼬마 아가씨가 어찌나 귀여운지 달리기를 멈추고 보고 싶을 정도이다.

정직한 운동 마라톤

달리기는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 정직한 운동이다. 뿌린 대로 거두기에 종종 우리의 삶을 마라톤과 비교하는 것이리라. 달리기는 강한 정신력을 오랫동안 꾸준히 유지해야 하는 운동이다. 지금껏 달리기하지 않던 사람이 달리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달리기를 습관화하기 위해 일주일에 최소 사흘 정도는 시간을 내야 하는데 이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체중 60kg인 사람이 마라톤을 완주하면 약 2,600kcal를 쓴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성인의 하루 열량 소모량(1,500~2,000kcal)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양이다. 밥으로 따지면 10그릇에 해당하니, 완주한 후 폭식하지만 않으면 당연히 살이 빠질 것이다. 이는 마라톤이 그만큼 격렬한 운동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충분한 훈련을 거쳐 시도해야 한다.

그리운 베를린

35~40㎞까지 35분 56초, 누계 4시간 01분 09초

베를린에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자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동시에 아, 돌아가면 이 도시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과연 참 그립다.

일주일에 4~5일, 한 달에 20일, 200㎞ 이상 달리기를 목표로 한다. 이렇게 달리기 훈련이 쌓이면서 하프마라톤은 따로 연습을 안 해도 바로 참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나는 주로 아침에 달린다. 더 자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달리면서도 힘들다고 느껴지는 초반을 무사히 지나 개운한 마음이 들 때까지 달린 뒤 산뜻함이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늦잠을 자 운동을 하지 않은 날에는 온종일 후회로 가슴이 아프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극복한다면, 달리기를 통해 얻는 삶의 성취감이 언제든 달콤한 향기를 지닌 채 나의 곁으로 와줄 것이다. 그리고 그 성취의 결실들이 모여 내 삶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달리기할 때마다 마음의 상처, 후회, 안타까움이 가득했던 시간과 아름답게 헤어지는 중이다. 마음의 상처는 아물고 새로운 경험 덕분에 삶의 벅참도 느낀다. 그저 달리기만 했을 뿐인데 삶의 변화가 상당하다. 이 아름다운 변화를 나는 앞으로도 지속하고 싶다.



2023년 9월 24일 오후 2시

브란덴부르크 문3 을 통과하자 피니시라인이 보인다. 벅차오르는 숨을 참고 마지막 한 발 한 발을 힘겹게 한편으로는 가볍게 내디뎠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사람들의 함성이 점점 커지고 사람들의 통로를 지나 마침내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푸르른 하늘과 수많은 군중, 흥겨운 음악 소리와 군중들의 함성으로 온 세상은 마치 축제 같았다. 나는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라도 된 듯 두 팔을 높이 들어 군중들을 향해 흔들며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이보다 멋진 순간이 또 있을까? 마지막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숨이 끊어질 듯 고통스러운 순간을 참고 달렸다. 1㎞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완주한 순간, 고통과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40~42.195㎞ : 16분 32초, 누계 4시간 17분 33초

목표보다 4분 33초 늦었지만 무슨 문제인가?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해 보인다.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우리 모두가 우승자다!
- 게리 무흐르케
(1970년 제1회 뉴욕 마라톤 대회 우승자)

  • 3 브란덴부르크 문은 1788년에 건설을 시작해 1791년에 완공된 것으로, 당시 프러시아 제국의 개선문으로 만들어졌다. 꼭대기에 있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마차를 이끌고 가는 모습의 동상(사두마차 조형물)은 1793년에 세워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자, 브란덴부르크 문은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파리의 개선문이나 로마의 콜로세움에 비견할 수 있는, 베를린에서 가장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장소다.



베를린마라톤대회 완주

인생의 버킷 리스트 중 또 하나를 채웠다. 완주한 사람, 완주자를 영어로 ‘Finisher’라 한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을 말한다. 마라톤에서 기록보다 완주가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것 때문일 것이다.

베를린마라톤대회 참가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마치 마라톤에 처음 도전할 때만큼 수준의 긴장으로 가득한, 경외감으로 몸과 마음이 가득해진 경험이었다. 출발선에서 결승선까지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응원하는 시민과 베를린의 모든 것들은 나에게 지칠 틈을 주지 않았다. 베를린마라톤 완주와 동시에 나는 또다시 달려야겠다는 각오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언제나 흐뭇한 기억들이 있기에 삶이 훨씬 부드럽고 윤택한 것은 아닐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 흐뭇한 기억을 되돌아보면, 평생 웃음 지을 좋은 기억이 된다. 2005년의 보스톤, 2017년의 로마에 이은 세 번째 해외마라톤대회 참가는 먼 훗날 돌아보면 웃음 지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 중 하나겠구나’라고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감동적이었던 시간은 보스톤, 로마, 그리고 베를린마라톤대회 완주 직후이다. 눈부신 행복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강하고 순수한 행복은 처음으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몇 번이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절절함이 스며온다. 강렬하고 가슴 뭉클한 기억을 남긴 베를린마라톤대회 덕분에 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하나 연 것 같다. ‘마라톤을 완주하다니’ 나 자신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고, 건강한 신체를 물려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왜 달리는가?

유산소 운동이 좋은 ‘항우울제’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말 기분을 안정시키고 명상적으로 만든다. 완주 후에는 명상음악을 들을 때처럼 온몸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나 자신에게 고맙고 자랑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다. 하루에 네 시간 이상 걸었다는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그는 ‘온갖 세속적인 얽힘에서 벗어나 산과 들과 숲속을 걷지 못한다면 나는 건강과 영혼을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던바, 그 말을 ‘온갖 세속적인 얽힘에서 벗어나 산과 들과 숲속을 달리지 못한다면 나는 건강과 영혼을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할 것 같다’고 바꾸면 바로 내게 해당하는 것이다.

달리기는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 해소 등 정신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뇌로 혈액 순환이 원활하게 되어 집중력이 높아지고 알츠하이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나간 일들, 고통스럽거나 아픈 기억, 상처로 얼룩진 마음이 달리기를 통해 순화된다. 달리기를 하면 괴로움을 잊을 수 있고,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면 복잡한 생각이 말끔히 사라지는 기분이고, 샤워 후에는 개운하다.

달릴 때는 과거에 미련 갖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복잡한 생각이 말끔히 사라지고 오롯이 현재에 만족하고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피부도 좋아지며, 건강하고 활력있는 삶을 만들어주는 달리기를 나는 계속하련다. 어떤 삶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건전한 삶이라 여기는 달리기와 함께 하는 삶을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2000년 03월 19일 서울국제(동아)마라톤대회 입문 : 3시간 34분 47초
2003년 03월 19일 서울국제(동아)마라톤대회 최고기록 : 3시간 15분 08초
하프마라톤 : 1시간 32분 04초, 10㎞ : 39분 55초,
5㎞ : 19분 02초의 최고기록

나는 마라톤등록선수들만큼 기록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급적 조금이라도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러나 2003년을 기준으로 1년에 10㎞는 30초, 하프마라톤은 1분, 마라톤은 2분씩 기록이 늦춰지고 있다. 그리고 달리기 당일의 기온은 나의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적 기온은 3~10℃로, 20℃가 넘는 경우에는 마라톤은 아예 참가하지 않고 하프마라톤은 기록과 관계없이 무사히 완주만을 목표한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

마라톤 완주, 2005년 보스톤마라톤대회, 2017년 로마마라톤대회, 2023년 베를린마라톤대회 참가, 다음 나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가? 2025년 런던마라톤대회, 만 70세가 되는 2027년에는 바르셀로나마라톤대회 참가를 계획(목표)하고 있다. 목표(꿈)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 비하여 훨씬 열심히 풍요로운 삶을 이어갈 것이다.

베를린마라톤대회 이후 참가 대회 내역
날짜 대회명 참가부문 기록 비고(날씨)
2023. 10. 15. 제22회 대청호 마라톤대회 하프마라톤 1시간 50분 08초 18~21℃
2023. 11. 5. 2023 JTBC서울마라톤대회 마라톤 3시간 55분 12초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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