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전화위복 ‘미키마우스’
미키마우스 캐릭터는 사실 월트 디즈니 인생이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만들어졌다.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열었던 1923년, 당시 그는 인기 있는 단편 앨리스 코미디를 제작한 후 4년을 들여 ‘행운의 토끼 오즈월드(Oswald
the Lucky Rabbit)’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 토키 오즈월드는 캐릭터 자체 인기는 물론, 20개 에피소드가 넘는 만화에 대해서도 관객들의 호평이 자자했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가 토끼 오즈월드 캐릭터 계약을 갱신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하던 중, 그는 계약서에서 배급 업자였던 유니버설이 캐릭터에 대한 소유권을 모두 갖게 되는 조항을 발견했다. 눈앞에서 본인이 만든 행운의
토끼 오즈월드 시리즈 판권을 배급 업자에게 모조리 빼앗기게 된 상황이었던 것. 기차 안에서 계약 조항을 검토하던 월트 디즈니는 망연자실했지만, 그의 머릿속에 남은 건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새로운 캐릭터를 고안하던 그는 기차 안에서 고향 캔자스시티에서 보았던 생쥐를 떠올렸다. 그때 떠올린 생쥐 모습에서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미키마우스의 초기 모습,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가 탄생한 것이다.
미키마우스 이름을 딴 법이 있다고?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창작성이 인정된다면 저작권법에 따라 저작권을 보호받는 ‘저작물’이 된다. 우리나라는 개인 저작물의 경우,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한 후 70년 동안 보호 기간이 존속된다.
법인이나 단체 저작물은 같은 법 제41조에 의해 해당 저작물을 공표한 때부터 70년간 보호된다. 미국 저작권법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개인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자의 생존 기간과 저작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70년 동안
보호하고 있지만, 법인 또는 업무상 저작물은 한국의 법과 좀 다르다. 미국 법인 저작물의 경우 최초로 공개된 해로부터 95년 혹은 창작된 해로부터 120년,
이 두 기간 중 더 짧은 쪽을 보호 만료 기간으로 채택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초기 미키마우스도 이 법이 적용돼 1928년부터 95년간 저작권을 보호받은 셈인데, 미국 법인 저작권 보호 기간이 처음부터 이렇게 길었던 건 아니다.
미국 저작권법은 소위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저작권법 개정 과정에서 디즈니사의 영향력이 많이 작용했다고 알려졌다. 미키마우스의 원조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가 공개된 1928년, 당시 저작권 보호 기간은 총 56년으로,
1984년까지만
디즈니사의 저작권이 인정됐다. 디즈니사는 미키마우스 저작권 보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1976년, 미 의회에 저작권 보호 기간을 19년 연장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요청했고, 의회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돼
1928년부터 2003년까지 총 75년으로 증기선 윌리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저작권 보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8년에도 저작권 보호 기간이 무려 20년 더 늘어난다.
당시 애니메이션, 영화 등 저작권을 20년 연장한 ‘Sonny Bono Copyright Term Extension Act(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 법률)’에 대한 미연방대법원의 합헌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
법은 월트 디즈니 사의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캐릭터의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을 위해 제정됐다고 비난받으며 ‘미키마우스 연장법(Mickey Mouse Extension Act)’이라 불리게 됐다. 결국 이 기나긴
과정을
거쳐 초기 미키마우스 ‘증기선 윌리’는 1928년부터 2023년까지, 총 95년을 보호받은 후 올해 1월부터 저작권이 만료됐다.
미국 저작권법은 소위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저작권법 개정
과정에서
디즈니사의 영향력이
많이 작용했다고 알려졌다.
공포 영화부터 통신사 광고까지, 캐릭터의 변신은 무죄
원저작물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존재하듯, 2차적 저작물에서도
그 저작물이 공표된 시점으로부터
저작권 보호 기간이 새로 존재하게 된다.
듀크대학교 로스쿨 소속 퍼블릭 도메인 연구센터에서는 매년
1월 1일, Public Domain Day(저작권이 소멸하는 날)를 기념하며 과거 소설, 영화 등 저작권 기간이 만료된 저작물들을 발표하고 있다. 2022년엔 곰돌이 푸와 아기 사슴 밤비의 저작권이 만료됐고,
올해는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만료됐다. 공유저작물이 된 캐릭터들이 공개되면서 주목할 만한 점은 디즈니 캐릭터들이 대중들이 알던 기존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의 원작인 오스트리아 소설 『A Life in the Woods』에서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아기 사슴 밤비는 2022년 1월 저작권이 소멸되면서 공포 영화 <곰돌이 푸 : 피와
꿀>
감독을 맡았던 리스 워터필드 감독과 스콧 제프리 감독에 의해 ‘광견병에
걸린 사악한 살인 기계 밤비’로 재탄생할 예정이라고 한다.
밤비와 같은 해 만료된 곰돌이 푸 또한 원작 소설 『Winnie the pooh』의 저작권이 풀리면서 미국 통신회사 ‘민트 모바일(Mint Mobile)’을 홍보하는 동영상 광고에 사용됐다. 원작 소설 제목
<Winnie the pooh>을 비틀어 <Winnie the screwed(찡그린 곰돌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광고에는, 소설의 첫 장에서부터 비싼 통신 요금에 짜증이 난 곰돌이가 탁자에
머리를 ‘쾅, 쾅, 쾅’ 소리 내며 들이받는 모습이 등장한다. 기존 곰돌이 푸가 먹던 꿀(honey)을 광고 취지에 맞게 통신요금 명세서(bill)로 바꾸는 등 원작 소설로부터 재밌는 변화를 시도한 이 광고
영상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민트 모바일 광고 <Winnie The Screwed>
(출처 : 민트 모바일 사업자 라이언 레이놀즈 유튜브)
‘주의’ 1928년생 미키마우스만 저작권 풀렸다
1928년 방영된 만화 <Steamboat Willie>
올해 미키마우스의 저작권도 풀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미키마우스를 활용한 콘텐츠들이 공개됐다. 살인마가 되고, 피를 흘리는 미키마우스 모습에 동심이 파괴된다는 반응이 있는 한편, 미키마우스 캐릭터 사용 범위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저작권이 만료된 캐릭터는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이다. 원저작물을 기초로 한 2차적 저작물이 만들어지더라도 원저작물에서 변형, 각색
등을 통해 특이점이 추가된다면, 2차적 저작물은 독자적인 저작권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원저작물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존재하듯, 2차적 저작물에서도 그 저작물이 공표된 시점으로부터 저작권 보호 기간이 새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1월 저작권이 풀린 미키마우스는 현세대에 익숙한 컬러 디자인의 미키마우스가 아닌 1928년 공개된 증기선 윌리에서 공개된 미키마우스만 해당한다. 물론 초기 미키마우스 모습에서도 현대 미키마우스의 모습을 아예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두 미키마우스를 자세히 살펴보면, 흑백과 컬러 차이 외에도 눈 모양, 흰색 장갑 착용 여부 등에서 모습이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현대 미키마우스는 초기 미키마우스와 저작물 공표 시점과 보호 기간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작권이 만료된 미키마우스라 하더라도 원저작물(초기 미키마우스)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이후 변형된 미키마우스는 저작권 보호 기간이 남아있어 영리 목적으로 저작물 이용 시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저작권이 만료된 캐릭터를 무분별하게 이용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저작권과 함께 캐릭터를 보호하는 ‘상표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보호 기간이 종료되면 소멸하는 저작권과 달리, 각국 특허 기관에 등록된 상표권은 보호 기간이 종료되더라도 10년 단위로 갱신할 수 있어 사실상 보호 기간 제한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원조 미키마우스 저작권이 풀린 것과는 별개로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상품이나 서비스에 사용하며 발생하는 상표에 대한 디즈니의 권리는 계속해서 인정되는 것이다. 저작권 보호 기간이 종료된 미키마우스에 이어 슈퍼맨, 원더우먼 등 앞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공공 영역에 등장할 예정이다. 저작물을 올바르게 이용하면서도 더 다채로운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