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배종영 감정평가사(감정평가법인 대교 경기중앙지사)
낡은 배의 갑판을 열고
누렇게 녹슨 엔진을 들어냅니다.
바다는 사실 울퉁불퉁한 길이었습니다.
요철 위를 달리는 듯
엔진소리가 통통 튀었습니다.
생전의 아버지는 그 깊은 바닷속을
채굴하듯 맨손으로 파내는,
깊은 물 속 사정을 일렁이는 수면만 보고도
대뜸 알아내는 사람이었습니다.
파도가 칠 때면 파도를 붙잡았습니다.
파도와 맞서던 그 안간힘을 나누어 먹고
가족들은 무엇이든 꽉 잡고
놓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나도 아버지처럼 깊이를 모시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깊이는 늘 울렁거렸습니다.
그래서 낮고 깊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을 올라
높은 사람이 되라 했지만
높이는 헉헉거리며 올라도
자꾸만 곤두박질치는 곳이었습니다.
마치 당신의 관을 들던 날처럼
굴곡진 물 위를 달리던 엔진은 무겁습니다.
물고기보다 빠르고
커다란 절벽 같은 파도도 뛰어넘던
엔진은 그날의 당신처럼
차갑게 식어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높이를 일컬어 해발이라고 하면
바다에서 하늘을 떼어놓은 그 깊이의
맨 위쪽에서부터 높이는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해발은 몇 미터였을까
당신이 채굴한 바닷속은 또 얼마나 깊었을까.
낡고 병든 아버지의 목선을 고쳐
다시 파도를 걷어내고
높이의 깊은 밑바닥을 파내려 합니다.
높이와 깊이를 가르는,
파도의 주름 밑으로 침전된
아버지의 곡진했던 시름을 건지려 합니다.
파도를 붙들고 파도보다
더 울렁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지금은 침묵하는 엔진이지만
찾아보면 그 속 어딘가엔
통통거리는 불씨 한 점쯤
남아있을 테니까요.
배종영 감정평가사
현 ㈜감정평가법인 대교 경기중앙지사 재직
시현실 등단(2014)
시집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사유하는 팔꿈치』(2023) 발간
매일문학상(2016), 경북일보 호미문학상(2021), 천강문학상(2022),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2023), 경북일보 문학대전(2023), 성호문학상(2023), 여수해양문학상(2023)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