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정재흥 감정평가사
(나라감정평가법인 본사)
2022년 6월 어느 날, 영등포 재래시장 영업 보상 감정평가 현장조사를 나가게 되었다. 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요청한 감정평가 의뢰를 한국감정평가사협회에서 소속 감정평가법인으로 배정한 건이었는데,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시장 재개발사업 진행으로 인한 영업 보상이었는데 떡집, 생선가게, 기름집, 식품 판매점 등 18건이었다. 사업시행자인 조합 관계자와 피수용자들이 선정한 보상컨설팅 업체 직원인 박 이사님의 현장 안내를 받아가면서 별
어려움 없이 현장조사를 이어갔다.
대부분 상인은 현금 매출 자료 등을 제시하면서 지난번 보상금이 너무 적게 나왔다고 적극적으로 설명하였다. 현장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수용자의 의견을 충실히 경청하는 것이라는 평소 생각에 열심히 메모하고 사진을
찍으면서도, 속으로는 재결 감정평가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조사를 해 가던 중 코다리를 판매하는 어떤 가게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전의 가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70대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맞이하셨다. 도매로 구매한 코다리를 냉장고에 저장해 놓고 손님들에게 몇 마리씩 판매하는 가게였다. 연로하신 할머니는 다른 곳처럼 미리 준비해 놓은
자료도 없었고, 적극적인 설명도 하지 못하셨다. 이것저것 캐물었는데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시면서 “여기서 27년째 장사하면서 자식들 키워내고 먹고 살아왔는데 이제 어디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한숨과 장탄식만
하셨다. 코다리 가게의 재결 보상 감정평가액을 확인해 보니 이전비가 전부였고, 다른 가게들과 비교하면 많이 낮았다.
박 이사님에게 할머니가 들리지 않게 조용히 물었다. “이 할머니는 왜 휴업보상을 지급하지 않고 이전비만 보상하나요?”
박 이사님은, “할머니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서 휴업보상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이전비만 지급하게 되었다.”라고 대답했다. 확인이 필요한 내용 같았지만, 피수용자들 편에서 일을 하는 박 이사님이 어쩔
수 없다고 하니 일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망연한 눈길을 뒤로하고 다음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만약 사업자등록을 했다 하더라도 평소에 수익이 적어서 세금 낼 것도 거의 없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이전비만 주고 내보내는 게 정당보상인가? 휴업보상을 지급하지 않아서 절감된 보상비가 세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재개발조합의 경비 절감과 조합원 이익으로만 귀결되고 말 텐데 이것이 사리에 맞는가?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최대한 휴업보상이 되도록 검토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현장조사를 하는 것은, 감정평가 의뢰인이 제시한 목록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의뢰인에게 목록을 수정해 주도록 요청하는 것이 취지이다. 그러므로 휴업보상의 필요성을 검토해 달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해서 파트너 감정평가사님에게 의논했다. 파트너 감정평가사님은 “협의-재결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관되게 이전비 대상으로 판단되어 온 건을 휴업보상으로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확인해 보는 것은 좋겠다.”라고 호응해 주었다.
현장조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가까이 있는 영등포구청을 찾아갔다. 담당 부서가 어딘지 여기저기 물어본 끝에 식품위생과로 찾아갔다.
“시장에서 코다리 판매하는 가게인데 사업자등록을 안 했습니다. 이게 불법 영업인가요? 아닌가요?”
담당 주무관은 “코다리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그대로 파는가요? 아니면 요리를 해서 파는가요?”라고 물었다.
“그냥 몇 마리씩 봉투에 담아서 판매합니다.”라고 답하자 곧바로 기다리던 대답이 돌아왔다.
“불법이 아닙니다. 조리를 수반하지 않는 단순 판매는 식품위생법 적용대상이 아니라서 자유업에 해당합니다. 사업자등록을 안 한 것은 부가세와 관련된 문제로 알고 있는데 여하튼 코다리 단순 판매는 자유업입니다.”
구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코다리 가게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5조(영업손실의 보상대상인 영업)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실수하면 안 되기 때문에 보상 감정평가의
전문가이신 K선배 감정평가사님께 전화했다. K선배님은 그 점포가 불법 건물이 아니라면 사업자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영업 보상대상이 된다고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다.
다음날 박 이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코다리 점포는 영업 보상대상이 되니 조합과 중토위에 이야기하셔서 감정평가의뢰 목록에 휴업보상을 추가해 주도록 요청하는 게 좋겠다.”라고 안내하고 정리한 자료를 보냈다. 그 후
조합 보상업무를 대리하는 담당 변호사님에게도 전화해서 코다리 판매 점포는 휴업보상 대상이 된다고 설명하고 자료를 보냈다. 다음날 조합 측 변호사님이 전화를 해왔다.
“검토해 보니 휴업보상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되어 조합 측과 협의해서 휴업보상을 하기로 했고 중토위에도 요청하겠습니다.”
중토위는 이번에는 일단 이전비로 감정평가하라고 하면서 휴업보상은 추후 다시 의뢰하겠다고 통지해 왔다. 나는 감정평가 의견란에 코다리 할머니의 영업이 휴업보상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영업보상액은 얼마인지
추산액을 기재해서 제출했다.
그해 10월, 중토위에서 협회를 거쳐 코다리 할머니 휴업 손실 보상액 감정평가가 의뢰되었다. 할머니는 그사이에 이미 가게 문을 닫은 상태였다. 매출이나 이익에 대해서 다시 조사하려 했지만, 할머니는 제대로 된
설명이나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셨다. 영업이익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어서 도시근로자 3인 가족의 월평균 가계지출비를 적용해서 휴업보상액을 결정한 감정평가서를 제출했다.
이 이야기는 보상 법규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주신 파트너 감정평가사님과 명쾌하게 교통정리를 해 주신 K선배 감정평가사님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