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진실

정말 가을 하늘은 더 높고 파랄까?

애국가 3절은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라는 소절과 함께 시작한다. 가을은 정말 다른 계절과 다른 하늘을 보여주는 걸까? 무더위를 물리치고 마침내 맞은 가을, 선선해진 기온처럼 높이도 색도 달라지는지 알아본다.

글.김현정 과학문화칼럼니스트

가을엔 하늘이 정말 더 높아지고 색도 진해지는 걸까?

사계절 중 가을은 가장 높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계절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을하늘은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펄벅(Pearl S. Buck)이 “조선의 가을 하늘을 네모, 다섯 모로 접어 편지에 넣어 보내고 싶다.”라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왜 가을이 되면 유독 하늘이 높고 푸르른 걸까.

하늘은 기본적으로 파란색을 띤다. 빛의 산란 현상 때문이다. 산란(scattering)은 직진하는 성질을 가진 빛이나 소리가 중간에 어떤 매질을 만나 여러 방향으로 퍼지는 현상을 뜻한다. 태양빛 역시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며 질소, 산소분자 등에 부딪히며 부서진다. 이때 산란 정도는 빛의 파장에 따라 달라지는데, 파동의 마루(가장 높은 부분) 사이의 거리가 짧을수록 많이 산란된다. 사람의 눈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영역을 예로 들면 가장 적게 산란되는 색은 붉은색, 반대로 가장 많이 산란되는 색은 보라색이다. 하지만 사람의 눈이 보라색보다 파란색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빛의 산란 현상은 매질, 즉 대기에 속한 미세입자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습한 여름에는 대기 중에 수증기 입자가 햇빛을 흡수하고 빛의 산란을 방해해서 파란빛의 양이 많지 않다. 반면 가을은 공기가 건조하고 상대적으로 수증기 입자가 적다 보니 파장이 짧은 파란빛이 더 잘 산란돼 하늘을 가득 채운다. 가을 하늘이 유독 더 파랗게 보이는 이유다.

또한 가을 하늘이 높아 보이는 이유는 기압의 영향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보통 건조한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다. 고기압은 하강 기류를 발생시켜 더운 공기를 대기권 상층부로 밀어 올리고 무거운 찬공기는 내려와 안정적인 대기 구조를 만든다. 이렇게 되면 대기 중에 수증기와 먼지 입자는 현저히 줄어들고 구름이 상대적으로 적게 만들어져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완성한다.

장맛비가 그친 하늘은 왜 더 파랄까

여름에도 가을처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후텁지근한 장마를 견딘 후에나 가능하다. 장마는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를 이르는 말이다. 기상학자는 ‘중국 쪽에서 발생한 온대 저기압이 한반도를 통과하는 동안 내리는 많은 양의 비’라고 정의한다. 주로 6월 중순에 시작해 7월 중하순 무렵까지 약 30~35일간 이어진다. 이때 대기 중 습도가 최대 90%까지 높아지고, 기습폭우를 동반하기도 해 사실 달갑지 않은 자연현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장맛비가 그친 직후에는 가을이 왔나 싶을 만큼 높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보통 여름철 장마가 끝나면 지표면이 열을 방출해 온도가 낮아지는 반면, 하늘은 높은 기온을 유지하면서 대기가 안정된다. 이런 대기층은 대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상의 먼지가 상승하지 못해 일 년 중 가장 먼지가 적고, 장마전선이 이동하면서 수증기를 걷어가 버려서 건조한 대기가 조성된다. 이러한 현상으로 빛의 산란이 강하게 나타난 하늘은 진하고 뚜렷한 파란색을 띤다. 또한 일몰 시에는 고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파장이 짧은 파란색 대신 긴 파장의 붉은색과 주황색이 대기를 길게 통과하게 되어 더 짙고 뚜렷한 노을을 볼 수 있다.

총천연색을 담은 하늘, 기후변화의 영향은?

이처럼 하늘은 총천연색을 담고 있다. 하지만 대기오염에 의한 기후변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그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우리는 맑고 파란 하늘 대신 뿌연 회색빛 하늘을 더 자주 본다. 대기가 깨끗한 가을에는 가시거리가 20㎞ 이상 되기도 하지만, 미세먼지 농도(PM10)가 200µg/m³ 이상일 때는 가시거리가 1㎞ 이하로 줄어들 정도다. 햇빛이 대기 중에 부유하는 미세먼지에 의해 흡수되어 하늘을 흐릿하고 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많은 대기오염 물질들이 인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기후변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 대기현황 보고서와 여러 관련 기구들이 이러한 위기를 냉정하게 상기시키면서 인류의 행동 변화를 권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취지에서 UN 총회가 9월 7일을 ‘푸른 하늘을 위한 세계 청정 대기의 날(International Day of Clean Air for Blue Skies)’로 지정했다. 우리의 노력만이 파란 하늘을 지킬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가지기를, 그래서 매년 돌아오는 가을에 더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