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아파트 공급 위해 ‘재건축·재개발촉진법’ 만든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정부 발표 직후에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다. 8월 둘째 주(12일 기준)에는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 폭이 거의 6년 만에 최대 폭(0.32%)으로 뛰기도 했다. 이후 상승 폭이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서울 집값은 8월 말까지 23주 연속 오르는 상황이다. 정부의 노력에도 과연 정책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장 8.8 대책으로 나온 정책 과제 중 상당수가 법
개정 사항이다.
특히 서울 도심에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선 재건축·재개발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8.8 대책에 포함된 재건축·재개발 관련 정책 과제 10개 가운데 8개는 새로 법을 만들거나 기존 법을 개정해야만 실현 가능하다.
대표적인 게 가칭 ‘재건축·재개발촉진법(이하 촉진법)’을 제정하겠다는 발표다. 서울에서 추진 중인 37만 가구 규모 정비사업을 가속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촉진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정비사업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것이다. 초기 계획인 기본계획과 정비계획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했다. 또 조합을 만든 후 단계적으로 작성해야 했던 사업 시행계획과 관리 처분계획도
같이 수립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러면 현재 ‘기본계획→정비계획→조합 설립→사업 시행계획→관리 처분계획→이주·착공→준공’으로 크게 7단계인 정비사업 절차를 5단계로 줄일 수 있다. 재건축 조합을 설립하기 위한 동의
요건도 종전 조합원 75% 이상에서 70% 이상으로, 동별 동의 요건은 2분의 1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낮춘다.
인허가 과정에서 지자체가 발목을 잡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넣는다. 관계 기관 이견에 따른 사업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지자체 합동 조정회의’를 신설하도록 했다. 회의를 해도 협의가 잘 안될 경우 국토부가 직접 중재에
나설 방침이다. 공사비 분쟁에도 적극 개입한다. 1,000가구 이상 사업장에 공사비 갈등이 생기면 이를 조율할 전문가를 의무적으로 파견한다. 한국부동산원에는 가칭 ‘공사비 검증지원단’도 신설한다.
사업성 높일 수 있게 3년간 한시적 용적률 인센티브
촉진법에는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담긴다.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정비사업 최대 용적률을 지금보다 30%포인트 더 올려주는 내용이다. 용적률이 높아진다는 건 쉽게 말해 팔 수 있는 집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한 역세권 정비사업장이면 최대 용적률을 360%가 아닌 390%까지 올릴 수 있게 된다. 역세권이 아닌 일반 사업장이면 300%가 아닌 330%까지 용적률을 허용한다.
다만 규제 지역(강남·서초·송파·용산구)은 용적률 수혜 대상에서 제외했다. 분양가가 높아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뛰어난 곳들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용적률 혜택을 노려 사업을 되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8.8 대책
발표일 전에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신청한 곳도 적용 대상에서 뺐다. 사업성이 낮은 곳은 용적률 완화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임대주택 비율도 차등적으로 줄여준다.
건축 규제를 완화 받을 가능성도 열렸다. 비록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었지만, 건축물 높이 제한이나 공동주택 간 거리를 완화하는 것을 허용한다. 공원녹지 확보 기준 역시 풀겠다고 했다.
현행법상 재건축 용지면적이 5만㎡ 이상인 곳은 1가구당 공원 면적을 3㎡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촉진법이 시행되면 용지면적 최소 기준이 5만㎡가 아닌 10만㎡로 상향된다. 1980~1990년대 택지지구로 개발된
강남구 개포동, 양천구 목동, 노원구 상계동 일대가 수혜를 볼 것으로 보인다. 이곳 주요 단지의 용지면적이 5만~10만㎡ 사이이기 때문이다. 이미 공원이 넉넉한데 재건축 과정에서 녹지를 꼭 확보해야 해서 용적률을
최대치까지 올리지 못하는 사례도 줄어들 전망이다.
임대주택 인수가격 높여준다지만···
도정법 개정해야
공공기여 부담을 줄여주는 대책도 나왔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개정이 동반돼야 한다. 그간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정부가 조합에서 사들이는 임대주택 가격을 더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
정부가 매입 기준으로 삼는 표준형 건축비는 건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기간 동결돼 지속적인 물가 상승분을 담아내지 못한다.
8.8 대책에는 도정법을 바꿔 임대주택 인수가격을 현행 대비 40% 이상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애초에 법 개정이 언제 될지도 미지수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논란의
발단은 지하층 공사비다. 지자체가 임대주택 인수가격을 계산할 때 지하층은 대상에서 제외하는데, 이게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 임대주택 입주민들도 지하주차장을 쓰는 건 같지 않으냐는
불만이다.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공급 의무 비율을 폐지하는 것도 도정법을 고쳐야만 가능하다. 현재 과밀억제권역의 재건축 사업은 전용 85㎡ 이하를 건축 가구 수의 60% 이상, 재개발 사업은 80% 이상 건설해야 하게 돼
있다. 앞으로 이 비율이 폐지되면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은 대형 평형을 늘리는 방향으로 고급화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수 정책 국회 문턱 넘어야 실현···
거대 야당 ‘변수’
또한 국토부는 이번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국토부 측은 “주택시장 안정이란 제도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주민 부담과 주택공급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제도
폐지를 추진하겠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이익을 개인에게 100% 부여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진통이 상당할 전망이다. 재초환제도가 작년에 한차례 완화된 것도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방안 말고도 국회가 키를 잡고 있는 대책은 더 많다. 8.8 대책의 전체 정책 과제는 49개인데, 이 중 16개가 법 제·개정 사안이다. 빌라 등 비아파트 지원책은 8개 중 5개가 그렇다. 현재
국회는 여소야대 형국이다. 190석가량 되는 범야권의 동의 없이는 구호에 그칠 뿐인 정책이다.
당장 정부가 올해 1월 내놓은 정책 과제인 재건축 안전진단 시기 조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도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떨어진단 평가를 받는 강북권 일부 조합들은 이에 법
개정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상황이다.
정부, 12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 해제···
1만 가구 공급
물론 국토부 차원에서 서울 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나왔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서울 그린벨트를 풀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2년 이후 12년 만에 다시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냈다. 이를
통해 서울에서만 1만 가구 이상을 공급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대상지는 오는 11월 발표한다.
아울러 국토부는 “서울과 서울 근교 그린벨트 해제 지역 중에는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곳이 상당 부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권 그린벨트를 위주로 풀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자곡·수서동 일대가 유력 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8.8 대책이 나온 당일 국토부가 관보에 송파구 방이·오금·마천동과 경기 하남시 감일·감북·초이·감이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공고를 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도 힌트를 줬다. 그린벨트 중에서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훼손 지역을 위주로 해제를 검토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린벨트라 해서 모두 산림이나 숲인 것은 아니다.”며, “농경지나 경작지, 창고 밀집지
등 보존성이 낮은 훼손지도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전원주택이 모인 집단 취락지역은 가급적 그린벨트 해제를 하지 않을 방침이다.
“그린벨트 해제는 중장기 대책···
당장 집값 잡긴 역부족”
하지만 그린벨트를 풀고 대규모 주택을 짓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우려도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신규 택지 후보지를 지정하고, 기존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하고, 지구 계획을 짜고, 주택을 착공하고 분양하는
데 족히 10년은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그린벨트 해제와 신규 택지 확보는 중장기 대책”이라며 “현재 오르는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강남권 일부 그린벨트를 풀어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 1~2개 규모 아파트를 짓는다고 서울 집값이 안정되긴 어렵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