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도 상관없잖아?”
고물가 시대에 순풍 탄 못난이 식품
요즘 같은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는 ‘못난이’도 상품이 된다. 다소 투박하지만 맛과 품질은 전혀 문제가 없는 못난이 식품이 낮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영역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는 것.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핍박 받아온 미운오리새끼에서 실속만점 효도상품으로 신분상승된 ‘못난이 식품’을 살펴본다.
요즘 같은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는 ‘못난이’도 상품이 된다. 다소 투박하지만 맛과 품질은 전혀 문제가 없는 못난이 식품이 낮은 가격을 경쟁력으로 영역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는 것.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핍박 받아온 미운오리새끼에서 실속만점 효도상품으로 신분상승된 ‘못난이 식품’을 살펴본다.
글.이다연 기자(국민일보 산업부)
크기가 작거나, 외관이 고르지 않은 등 못생긴 생김새 때문에 버려지는 농작물을 새로운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푸드 리퍼브’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푸드 리퍼브’는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와
재공급품을 뜻하는 리퍼브(Refurb)의 합성어다. 본래 공장에서 출고될 때 흠이 있거나 반품된 가전 전자제품을 의미했던 단어가 식품 영역으로 확장된 셈이다.
‘푸드 리퍼브’는 프랑스 슈퍼마켓 엥테르마르셰에서 2014년 ‘부끄러운 과일과 채소’ 캠페인을 통해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라는 슬로건으로 못난이 당근을 판매한 것이 시초다. 당시 가격은
시세보다 30~50% 낮게 결정됐다. 이후 네덜란드, 미국, 덴마크 등의 유통업체나 시민단체에서도 못난이 상품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에 나섰다. 네덜란드의 크롬코마(Kromkommer, ‘휘어진 오이’라는 뜻)라는
작은 기업은 2014년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못난이 농산물로 수프를 만들었고, 2020년엔 못난이 농산물 인식 개선을 위해 이상한 형태의 과일과 채소 모양의 장난감을 개발했다. 미국에서는 월마트, 크로커 등 대형
유통업체가 못난이 농산물을 저렴하게 팔아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도 최근 ‘못난이 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롯데마트는 올해 1~5월 못난이 제품인 ‘상생 농산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50% 증가했으며, 이랜드킴스클럽은 ‘쓸어담는 실속채소’ 매출이 올해
1~4월 전년 대비 40% 성장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업계 최초로 ‘못난이 사과’를 선보인 NS홈쇼핑은 지난해 못난이 식품 취급액 100억 원을 돌파했다. 올해 역시 인기가 이어져 1분기 못난이 시리즈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35% 증가했다.
‘못난이 식품’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협업한 2019년 ‘못난이 감자’ 프로젝트가 있다. 당시 마땅한 판로를 찾지 못한 못난이 감자 30t을 900g당 780원으로
저렴하게 팔아 인기를 끌었다. 신세계는 지난 6월에도 생김새 때문에 버려지는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언프리티 프레시’ 행사에서 10종의 과일·채소를 최대 70% 할인된 가격에 선보이기도 했다.
어글리어스, 에스앤이컴퍼니, 언리미트 등 못난이 식품을 활용한 기업 사례도 늘고 있다. 친환경 채소박스 정기구독 서비스 업체 ‘어글리어스’는 판로가 부족한 친환경 농산물을 구출하고, 이를 조금씩 다양하게 소포장해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배송한다. 못난이 농축수산물 정보 거래 플랫폼 및 농축산물 B2B 거래 플랫폼 운영사인 ‘에스앤이컴퍼니’는 ‘불완전함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다’라는 모토로 농축수산물의
생육·작황·가격을 예측하는 AI(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해 외식업체에 직거래 방식으로 못난이 농축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식물성 고기의 국내 선두주자인 ‘지구인컴퍼니’는 원가절감을 위해 못난이 농산물을 접한 것을 계기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재고 농산물을 이용해 식물성 고기를 비롯해 분말스프, 과일즙 등 가공식품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에 이어 못난이 수산물도 인기다. 특히 지난해 공영홈쇼핑의 모바일 라이브 커머스 ‘공영라방’은 ‘못난이 명란’을 1억 2,000만 원 넘게 판매했으며 지난해 가을부터 올봄까지 판매한 ‘못난이 굴비’도
주문액이 약 5억 원에 달했다. SSG닷컴은 지난해 4월 과일과 채소만 있던 ‘못난이 신선식품 기획전’ 품목에 못난이 오징어와 붉은 새우살을 처음 추가하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못난이 식품의 인기는 고물가에 있다. 고물가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다. 현재 주요 농산물은 연일 오름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채소 가격이 평년에 비해 크게 올랐다. 8월 14일 기준 배추 1포기의 소매 가격은 6,159원으로 전월보다 27.57% 올랐다. 평년보다 8.07% 높은 수준이다. 무 1개의 가격도 3,021원으로 지난달보다
20.02% 올랐고 평년에 비해 19.74% 뛰었다. 시금치 100g 기준 가격도 2,079원으로 지난달보다 37.41% 상승했다. 폭염과 장마의 장기화로 기상 여건이 좋지 못했던 탓이다.
가치소비 트렌드 역시 못난이 식품 시장 성장의 주요 요인이다. 폐기되는 농산물을 줄이고, 어려운 농가에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못난이 식품은 가치소비에 부합한다. 농산물이 썩으면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와 탄소배출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전 세계적으로 농산물의 3분의 1 정도가 판매되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가성비에 가치소비까지 할 수 있는 못난이 식품 시장이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충분히 소비될 수 있음에도 버려졌던 상품들이 고물가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며 “못난이 상품에 대한
긍정적 인식 변화로 소비자의 가격 혜택, 농가의 수익향상, 자원 선순환 등의 다양한 효과가 창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