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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옥죄기,

내년 부동산 상승 폭 키울까

글.김현희 기자
(대한경제 금융부)

경기침체 우려에 강도 높은 가계대출 억제책 내놓은 정부

은행권의 가계대출 옥죄기가 올해 연말까지 계속될 모양새다. 강남권은 가끔 상승거래가 이어지고 있지만, 6~8월과 같은 거래량은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어서 당분간 관망세로 돌아서지 않겠냐는 의견도 상당하다. 하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짙어지고 있어, 한국은행은 국내 아파트 가격 때문에 금리 인하를 못 한다는 변명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 인하 시기를 놓치면 아파트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경제 자체를 침체로 유도했다는 책임 부담을 안아야 한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는 올 연말 내에는 불가피하다. 이미 시장금리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미국이 9월 19일(현지 시각) 0.5%p의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경기침체 우려를 선제적으로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대출금리가 지금보다 내려갈 일만 남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시중 은행장 간담회를 가지며 대출금리 인하에 대해 단속하는 모습이지만, 이미 매수자들은 학습효과를 통해 시장 흐름을 익힌 상황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학습효과에 익숙해진 매수세를 꺾기 위해 2021년보다 더 강도 높은 억제책을 내놨다. 2022년에 완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인 만기 40년을 다시 30년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만기 40년이면 DSR 비율 최대 40%까지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이 최대 1억 원(연봉 1억 원 기준)이나 더 늘어난다. 다시 말해 만기 30년으로 줄여버리면 대출한도가 1억 원 줄어드는 셈이다. 대출금리는 시장금리 인하로 인해 막을 수 없는 만큼 만기 축소를 통해 가계대출을 줄여버리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 같은 대책이 은행 자체적으로 ‘한시적’ 운영이라는 점이다. 내년 1월이 되면 은행들은 가계대출 관리목표액을 각자 부여받고 새로 영업을 시작한다. 1분기 이내에 한시적인 억제책은 풀릴 수밖에 없다.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시장은 어떨까. 고금리 기조가 시장금리 인하로 완화되면서 고소득 직장인들이 응축된 에너지를 다시금 뿜어낼 여지도 만만찮다. 내년 서울 입주 물량은 거의 ‘0’ 수준이다. 오는 11월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의 입주가 정리되면 높아진 전셋값에 따른 매맷값 밀어 올리기는 다시금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은행권의 현재 가계대출 억제책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이제 다른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되는 것이 순리였을까. 정책 카드를 꺼낼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올해 초 은행권의 가계대출 전환시스템으로 인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규모가 급증하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증가세, GDP 성장률 넘었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의 이유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들이 투기 과열지역 지정 수준의 고강도 대출 규제를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체 은행권과 금융감독원은 9월 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은행권 가계대출 실무협의회 킥오프(Kick-off)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각 업권과 시중은행, 지방은행 등으로 나누는 등 세밀하게 파악한 결과, 5대 은행이 가계대출의 증가세에 대한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인 1.4%의 절반 수준도 못 미치는 0.5%(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기준 1,235조 1,302억 원인 가계대출은 지난 6월까지 7조 3,340억 원 늘어난 1,242조 4,642억 원을 기록했다. 은행권이 같은 기간 1.82%(16조 8,198억 원) 늘어났는데, 비은행권은 반대로 3%(9조 4,858억 원) 감소세를 기록했다. 비은행권인 2금융권 가계대출이 줄어들면서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가 관리 수준 내로 유지될 수 있었던 셈이다.

반면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2024년 1월 695조 3,143억 원에서 6월 말 708조 5,723억 원으로 1.95%(13조 2,580억 원) 늘어났다. 게다가 주택도시기금과 주택금융공사 등의 정책성 가계대출도 같은 기간 229조 1,627억 원에서 234조 3,314억 원으로 2.3%(5조 1,687억 원) 늘었다. 보금자리론과 신생아 특례대출 등 9억 원 이하의 주택에 대한 대출이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보다 더 증가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올해 GDP 성장률 예상은 2.2%인데,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2% 가까이 근접한 수준인 것이다. 또한 정책성 대출은 이미 올해 예상 GDP 성장률을 넘어섰다.

은행권은 이러한 현상을 올해 초 본격 가동된 가계대출 전환시스템으로 인해 2금융권과 지방은행 고객들이 5대 은행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갈아탄 점이 원인이라고 꼽았다. 여기에 정책성 대출까지 공급되면서 시세 9억 원 이하의 주택에 대한 매수세가 몰렸다는 것이다. 9억 원 이하의 주택 가격이 오르다 보니 10억 원 이상의 주택 가격도 밀려 올라가는 데다,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그동안 응축됐던 대기수요가 6~8월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GDP 성장률 예상은 2.2%인데,
5대 은행의 주택 담보대출 증가세는
2%가까이 근접한 수준인 것이다.
또한 정책성 대출은 이미
올해 예상 GDP 성장률을 넘어섰다.

실수요자 피해에 고개 숙인 금융당국

은행권의 대출 억제책 등으로 올림픽파크포레온 등 입주 수요나 갈아타기 실수요자들이 중도금이나 잔금을 조달할 길이 좁아지면서 불만이 폭증했다.

금융당국은 급속도로 진화에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월 10일, 18곳의 국내은행장들과 ‘은행장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세밀하게 제시하지 못하여 은행권의 대출 규제가 오락가락했던 점에 대해 국민께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이 원장은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상을 지적하고 은행들이 만기 제한 등 규제 강화 등으로 실수요 피해가 이어졌다는 점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의 엄정 관리와 은행의 자율적인 여신심사 운영은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이견이 없다”라며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기조를 꺾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가계대출 취급에 있어 그간 심사 경험을 살려 대출 포트폴리오를 건전하게 조정해나갈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주택 가격 상승에 기대는 투기성 대출을 걸러내기 위해서는 은행들 각자의 자율적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이 원장은 “급격한 가격 상승 기대감에 편승해 자산 쏠림이 있는 형태로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것은 은행 입장에서도 적절한 위험 관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내년에 한시적 억제책이 풀린다고 해도 각 은행마다 전세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등의 한도를 관리하는 기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수요자 구제책 내놓는 은행권

금융당국이 1주택자 등 실수요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며 한발 물러서자 은행들도 얼마 전부터 실수요 구제책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신한은행은 1주택자에 신규 구입 목적 처분조건부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불과 며칠 전 기존 주택 처분조건부 주택담보대출도 불허했던 신한은행이 다시금 예외 조항을 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실행 당일까지 기존 주택소유권을 이전하는 조건으로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일명 ‘갭 투자자’ 외에 진짜 갈아타려는 실수요만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또 생활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에서도 제한을 일부 풀었다. 이전에는 한도를 1억 원으로 제한했지만, 이제는 보유주택의 세입자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이라면 1억 원 이상 대출 가능토록 했다. 최대 연 소득 100%까지만 내주기로 했던 신용대출도 ▲본인 결혼 ▲배우자·직계가족 사망 ▲자녀 출산 ▲수술·입원 등의 사건이 있을 경우, 연 소득의 150%(최대 1억 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은행도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규제의 예외 요건을 발표한 바 있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대상을 무주택자로 한정하기로 했는데, 예비 신혼부부들이 수도권에 주택을 구입하거나 대출 신청 시점에서 2년 이내로 주택을 상속받은 1주택자라도 예외를 두기로 했다. 또한 ▲직장 변경 ▲자녀 교육 ▲질병 치료 ▲부모 봉양 ▲이혼 ▲분양권·입주권 보유 ▲분양권 취득 경우에 한해 1주택자라도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KB국민은행도 수도권 1주택자에는 신규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고,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의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1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출 억제책 풀리는 내년에는?

아파트 매수자들도 이 같은 은행권의 움직임에 일단 대출 억제책이 최대한 풀어질 때까지 매수를 보류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대한 낮은 금리로 최대 많은 한도까지 빌리자는 전략이다. 다만 추석 이후 부동산 시장은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고 시장금리가 계속 낮아진다면 다시금 꿈틀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실수요 갈아타기가 상당했던 만큼 서울 강남으로 진입하려는 수요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분양시장도 서울 신천동의 잠실래미안아이파크와 서울 청담동의 청담르엘 등 1,000여 가구가 일반분양 물량으로 나온다. 하지만 방배5구역 재개발인 디에이치방배에서 미뤄보듯이 청약 당첨 가점이 70점대가 되어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만큼 50~60점대 무주택 청약자들은 매매로 전환할 가능성도 높다.

강남 지역을 포함한 서울 중상급 지에 대한 수요가 상당한 만큼, 최근 이어진 은행권의 대출 억제책이 오히려 시장의 매매수요 에너지를 응축시키는 역할로 변질될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