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진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를까?

어느덧 연말, 2024년도 눈 깜짝할 새 지나간 듯하다. 10대 때는 시속 10km, 50대 때는 시속 50km로 세월이 간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어릴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막상 나이가 들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 느낌이 든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글.강은영 뇌교육칼럼리스트

시간의 두 가지 개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크로노스’와 경험 중심으로 시간을 표현한 ‘카이로스’ 두 가지로 해석했다. 현대 과학에서 크로노스는 물리학 개념이고 카이로스는 뇌과학 개념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객관적 시간과 개인에 따라 다른 주관적 시간으로 볼 수 있다. 물리적으로 1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뇌가 느끼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뇌과학에서는 시간 개념을 착시 현상 중의 하나라고 본다. 달리기를 예로 들면 초보자에겐 1km가 10km처럼 느껴지지만, 고수에겐 10km가 1km처럼 느껴질 것이다. 즉 새로운 경험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뇌가 느끼는 시간이 달라진다. 이처럼 물리적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뇌과학에서 찾을 수 있다.

뇌과학으로 보는 시간의 속도

나이대에 따라 세월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뇌의 정보처리 속도 차이 때문이다. 미 듀크대 Adrian Bejan 교수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물리적 시간, 마음의 시간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의 뇌에 있다.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의 신경세포가 처리하는데 어릴 때는 정보처리 속도가 빨라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릴 때는 1년을 300만 장의 이미지로 기억하지만, 나이가 들면 100만 장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되는 사건이 적고 1년이 짧게 느껴진다. 영상으로 치면 어릴 때는 기억에 저장되는 정보가 많아서 세상이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보인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도파민이 많이 분비될수록 신경회로를 자극해 강한 기억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반복되는 경험이 많아지면서 외부 자극에 둔해지고 도파민 분비가 감소한다. 따라서 강한 기억이 줄어들어 지나간 일에 기억이 흐릿해져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것이다. 즉 나이가 들수록 외부 자극에 둔해지기 때문에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서 개별적인 기억이 하나의 기억으로 뭉뚱그려져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경험한 것들을 하나하나 개별적인 사건으로 기억하는데 점차 학창 시절, 연애, 결혼, 일 등 하나의 큰 기억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해를 돌아봤을 때도 ‘하는 거 없이 시간이 지났다.’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나만의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방법

그렇다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경험적 시간, 카이로스를 느리게 보내는 방법이 있을까? 물론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커피인데 카페인이 신경세포의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효과가 5분으로 매우 짧고 물처럼 자주 음용하기 어렵다. 건강상 못 마시는 사람도 있어서 추천하진 않는다.

다음으로 집중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빠르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일상에서 수시로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3초 호흡법’을 소개한다. 편안하게 앉거나 서서 허리를 곧게 편다. 눈을 감으면 집중이 더 잘된다.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데에 집중하면서 3초간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신다. 잠시 숨을 멈췄다가 입으로 3초 이상 길게 내쉰다. 들이마실 때 긍정적인 에너지가 들어오고 내쉴 때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간다고 상상하면 더 좋다.

마지막으로 뇌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퇴근길에 새로운 길로 가보거나 못 먹던 음식을 먹어보는 등 사소한 변화라도 좋다. 뇌가 느끼는 시간은 경험의 변화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틀에 박힌 삶에서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통해 행복한 순간에 집중해 오랫동안 기억에 남긴다면, 누구보다 길고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