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PA의 여행 PICK!

겨울 정경의 심장으로

정경(情景)이라는 말이 있다. 고유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경치라는 뜻이다. 연말 분주한 크리스마스 마켓의 풍경과 눈이 멀도록 희고 서정적인 설경은 정경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지 않는가 싶다. 축복과 행복으로 서로를 잇는 인간의 정경. 압도적인 순백으로 고요를 자아내는 자연의 정경. 어찌 보면 정반대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두 정경이 우리를 겨울의 심장에 닿게 한다.

글. 양정훈 에세이스트

사진. 양정훈 外

CHRISTMAS MARKET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Covent Garden

런던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마켓을 꼽으라면 코벤트 가든이 아닐까. 코벤트(Covent)의 어원은 수녀원. 800여 년 전 런던 수녀원에 농산물을 공급하던 거대한 농지가 1600년대 후반 영국 최대 청과물 시장이 되었다. 그 후 청과물 시장은 템즈강 남쪽으로 이전하고, 대신 그 자리에 핸드메이드 작품부터 디자인 상품, 생필품과 이색 식음료까지 판매하는 다양한 마켓에 더해 문화예술 공연이 상시 열리는 광장이 들어섰다. 영국 홀리데이 시즌을 만끽하기에 코벤트 가든에서 트라팔가 광장으로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마켓만 한 곳이 없다.

에스토니아 탈린 시청 광장
Raekoja Plats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 순위에 에스토니아 탈린 시청 광장은 매년 빼놓지 않고 이름을 올려왔다. 마치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탈린 구시가지 한복판에서 무려 6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 달 동안 전 세계 여행자를 맞는다. 산타가 건네주는 따뜻한 뱅쇼 한 잔을 손에 들고 잠시 몸을 녹이면 무대에서는 캐럴이 울려 퍼지고 유서 깊은 발트해의 정통 크리스마스 축제가 정점을 향한다.

SNOWSCAPE

노르웨이 센야 Senja

수만 년 전 빙하가 조각한 협만(峽灣)이 아찔하게 이어지는 센야는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조금 작은 노르웨이 북서부의 섬이다. 본토와 육로로 이어진 덕에 접근이 어렵지 않아 매년 북극권 설경의 진면목을 마주하려는 관광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북극해를 건너온 바람이 장엄한 피오르 산머리에서 일 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을 훔쳐다 파도에 뿌리는 땅. 한편, 센야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전설 속 거인족 트롤의 고향이기도 하다. 겨울왕국의 신화가 기원한 곳.

스웨덴 오레 Åre

스웨덴 중서부의 오레 산맥 안쪽에 자리 잡은 오지 마을 ‘오레’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유럽 최대 규모의 스키 리조트가 위치한 겨울 레포츠의 성지다. 알파인 스키의 심장이라 불리며 무려 30여 개의 리프트를 운행 중이다. 기차역에서 내리는 순간 거대한 평원처럼 펼쳐지는 꽁꽁 언 호수부터 마을을 지나 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흰 눈이 세상을 온통 뒤덮는다. 모든 시간, 모든 곳이 티끌 없는 순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