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장
결혼 준비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은 일반 소비재 시장과 구조가 다르다. 단적인 예를 들면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가격이 표시된 메뉴판이 있고 옷을 사러 가게에 가면 상품에 대한 가격표가 붙어있지만, 결혼 준비
시장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왜 이런 비용으로 책정됐는지 쉽사리 납득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예비부부들이 제일 당혹감을 느끼는 곳은 ‘결혼 박람회’다. 특히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가격부터 의문투성이다. 대다수의 결혼 준비 대행업체는 스드메 비용을 묶어서 예비부부들에게 제공한다. 각각의
가격이라도 알면 비교라도 할 텐데, 가격을 알려주지 않으니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대행업체가 제공하는 옵션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행업체는 ‘스드메 패키지 상품’을 제공한다. ‘스튜디오 촬영은 A 사진관에서, 드레스는 B 디자이너 숍에서, 메이크업은 C 미용실에서’라는 옵션을 이미 다 정해두고 200만 원대, 300만 원대
등으로 나누어 예비부부들에게 선택하게 한다.
문제는 이 패키지 상품 내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진관만 다른 업체에서, 메이크업만 다른 미용실에서 하고 싶다면 비슷한 가격대의 업체를 비교할 수 있게끔 선택권이라도 주어져야 하는데, 대다수의
업체는 그런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햄버거 가게에 가도 세트 메뉴를 시키면 그대로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만 먹어야 하는 게 아니다. 1,000원을 더 주면 일반 감자튀김을 샐러드로 바꿀 수 있는 등 소비자가 자유롭게 구성을 바꿀 수 있다. 다 해봤자
1만 원이 채 안 되는 햄버거 가게에서도 이렇게 소비자를 위해 선택의 폭을 넓혀뒀는데, 최소 수백만 원이 드는 결혼 준비 시장은 ‘싫으면 말라’는 식이다. 조금이라도 예산을 아껴서 결혼하고 싶은 예비부부들은
대행업체가 정해둔 패키지 상품의 구성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패키지가 싫어 결혼 준비 대행업체를 통하지 않고 예비부부가 직접 스드메를 알아본다면 가격 책정의 기준부터 달라진다. 대행업체를 통해 안내되는 가격은 이른바 ‘도매가’이고, 예비부부 개인이 발품 팔아 알아본
가격은 ‘소매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스드메 업체는 예비부부 개인이 예약하면 응대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유를 알지 못하고 추가되는 비용들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가 어떤 스튜디오 업체를 선택해도 동일하게 듣는 말이 있다. 바로 스튜디오 촬영 후 원본 사진을 받으려면 ‘44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촬영에 대한 비용을 이미 지불했는데 원본
파일을 받기 위해서 또다시 금액을 내야 하는 것이다. 원본 파일을 예비부부에게 넘겨준다고 스튜디오에서 손해를 보거나 추가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이미 여러 벌 옷을 빌리고, 오랜 시간
메이크업까지 받고, 평일 휴가까지 쓴 예비부부가 사진 원본을 포기할 리 없다는 사실을 웨딩업계는 알고 있다. 이러니 원본 사진 제공은 애초 계약 때부터 거절할 수 없는 ‘필수 옵션’으로 들어가 있고 웨딩업계는 ‘부가
서비스’인 것처럼 눈속임해 추가금을 지불하게 만든다.
신부 드레스를 고를 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추가금이 붙는다. 드레스를 입어만 보는 것에 책정되는 이른바 ‘피팅비’는 업체마다 다르지만 평균 5만 원의 추가금이 붙는다. 드레스 사진을 개인이 찍을 수도 없다. 이로
인해 일부 결혼 대행업체에서는 웨딩플래너가 공책을 챙겨 다니며 직접 드레스 사진을 연필로 그려서 보여주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심지어 어떤 대행업체를 끼고 드레스 선택을 진행했는가에 따라서도 드레스 대여 비용이
달라진다. 개인 블로그에 드레스 관련 글을 포스팅하자 비밀 댓글로 ‘제휴 금액이 다르니 드레스 가격에 대해 함구해 달라’는 업체의 부탁을 받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추가금은 또 있다. ‘얼리 스타트(early-start)’ 비용과 ‘이모님’ 비용이다. 스튜디오 촬영이나 본 예식 전 들르는 메이크업 업체의 경우, 오전 일찍 화장을 시작하면 얼리 스타트 비용으로
평균 5만 5천 원을 요구한다. 촬영이나 예식 시간을 늦게 잡으면 해결될 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늦게 시작하면 ‘이모님 추가 비용’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모님은 촬영 중간중간 신랑 신부의
이동을 돕고 메이크업 수정을 돕는 도우미를 부르는 속칭이다. 이모님 고용 비용은 업체마다 다르지만 5시간에 25만 원 정도다. 스드메를 하려면 이모님은 무조건 고용해야 하는 식이다. 미고용 옵션은 아예 없다.
이모님이 저녁까지 일하게 되면 추가금 5만 원을 더 받는다. 평균적으로 스튜디오 촬영에 5~6시간이 소요되는데, 오후 2~3시에만 촬영을 시작해도 추가금을 낼 공산이 크다. 미용실에 얼리 스타트 비용 5만 5천 원을
내든가, 이모님께 추가로 5만 원을 내든가. 완전히 ‘조삼모사’ 구조다. 추가 금액이 들어가지 않는 촬영 시간대는 예비부부 대부분이 원하기 때문에 결혼 1년 전에도 예약이 어렵다.
결혼 준비가 아니라 ‘할부 준비’
선택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추가금이 계속 붙으며 결혼 준비 비용은 처음 예상과 달리 점점 늘어나기 예사다. 간소하게 결혼 준비를 하겠다고 계획하더라도 처음보다 예산을 더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결국, 늘어나는 건 카드 할부 값이다.
결혼정보 회사 듀오가 최근 2년 이내에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혼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예식장 비용은 평균 1,283만 원으로 전년 대비 21% 올랐다. 스드메 패키지 비용 역시
전년도보다 8% 상승해 360만 원에 달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30대의 연평균 통합소득은 4,040만 원이라고 하는데, 한 달에 300만 원 남짓 버는 젊은 세대가 감당하기에 결혼 비용은 부담이다. 이마저도
웨딩업계는 ‘매년 가격 인상’을 내걸고 예비부부들에게 이른 계약을 독촉한다. 대출이나 카드 할부 등을 이용해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 전부터 빚을 지고 시작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모두가 행복한 ‘결혼 준비’ 가능할까?
정부가 깜깜이나 다름없는 결혼 서비스 가격을 공개하고, 내년 1분기까지 결혼 서비스 품목에 대한 표준 약관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결혼 준비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
문제는 도대체 가격이 얼마인지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사이트를 통해 가격 현황을 신규 제공하고, 결혼 준비 시장 소비자 체감 지표를 정기적으로 조사해 공개할 것”이라고 밝힌 내용은
예비부부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어줬다고 생각한다.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결혼 준비 대행업체와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등 결혼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의 ‘담합’이다. 정부의 압박에도 대행업체와 서비스 제공 업체들은 ‘제휴’라는 이름으로 서로 결합하고
표준 가격을 책정할 때부터 높은 가격으로 담합할 가능성이 높다. 또 정부의 표준 가격 책정을 이유로 ‘추가금’이 더 다양해질 수도 있다. 한기정 위원장이 “(웨딩업계의) 가격 담합과 관련해서 과거에도 저희가 제재한
바 있다. (웨딩업계) 가격 담합 혐의가 있으면 철저히 조사해서 엄정하게 법적으로 제재하겠다”고 말했듯, 어제오늘 일이 아닌 웨딩업계의 담합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다.
가까스로 오른 혼인 건수와 출산율이 다시 줄어들게 되면 한국은 저성장이라는 어두운 늪에 또 빠지게 된다. 결혼 준비 비용 외에도 신혼집을 얻느라, 학자금을 갚느라 이미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게 요즘 20, 30대다.
관행이 돼버린 웨딩업계의 불공정한 가격 구조만 사라져도 빚을 덜 지고, 결혼이라는 봄날을 만끽할 수 있는 예비부부들이 늘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