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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단소리 쓴소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글. 홍국기 기자(연합뉴스 산업부)

“스페셜 미팅 저 싼 거고, 비싸게 하는 사람 훨씬 더 많아요.
대체 왜 그러십니까. 왜 포퓰리즘적으로 액면만 얘기하시냐고요, 기자님.
저도 바쁜데 저한테 한 번 와 주시겠어요?”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잠입 취재한 게 정당한 건가요.
관련 사진과 기사 다 들어내 주세요.”

두 달 넘게 기획한 ‘부동산을 흔드는 손’의 첫 번째 기사가 출고된 직후 온종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행여 치르게 될지 모를 송사에 대비해 기사에 등장한 당사자들을 모두 익명·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자신인 줄 어떻게(?) 알고서 회사와 제 개인 이메일로 아침부터 당사자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뒷모습이 영락없는 자신이니 사진을 내려달라는 요구에서부터 기사 정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민·형사상 조처를 하겠다는 간담 서늘한 통보까지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연합뉴스는 2월 14∼17일 나흘에 걸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스타강사들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집중 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또 젊은 층까지 부동산에 빠진 실태와 일각에서 제기되는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도 짚었습니다.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발단은 SNS상에 차고 넘쳐나는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였습니다. 현재 네이버와 다음 카페의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는 각각 5만3천개, 4천700개를 넘어섰고, 수많은 유튜브 채널에서 스타강사나 투자 고수 등의 부동산 관련 영상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단체 카카오톡 오픈 대화방에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 모여 실시간 매물·투자 정보를 교류합니다. 이런 활동의 중심에는 소위 부동산 스타강사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부동산 불패론자’인 그들은 카페·블로그·단톡방·유튜브 등 SNS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강의와 임장(臨場·부동산 업계에서 현장 조사·답사를 이르는 말)으로 돈을 법니다. 비용은 강사의 인지도 등에 따라 수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천차만별입니다. 이들은 정부 규제를 비웃으며 가격이 오를 특정 지역을 찍어줍니다. 표면적으로는 입지 분석과 가치 투자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 무주택자나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 심리를 바탕으로 한 영업 활동입니다.

SNS와 스타강사들의 위세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동산 시장이 왜곡되는 부작용도 더욱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수천 명, 수만 명의 회원이나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강사들이 SNS에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물건은 곧바로 단체 임장, 매물 품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스타강사가 찍어주는 아파트 단지는 곧 '성지'(聖地)가 되고, 개인이나 단체가 해당 아파트를 매입하거나 매물을 찾으러 다니며 중개업소를 들쑤시죠. 이 경우 시장은 금세 매도자 우위 시장으로 변합니다. 요즘처럼 부동산 규제 정책의 영향으로 매물이 거의 없는 곳에서 특정 세력이 이따금 나오는 물건을 매입하거나 싹쓸이하면 매물 품귀로 호가와 실거래가가 상승하게 됩니다. 조선업 침체와 공급과잉으로 집값 하락 폭이 컸던 경남 거제와 울산, 창원, 부산 등지에 지난해 서울 거주자들의 원정투자가 크게 늘었던 것도, 작년 12·16 대책으로 서울 지역에 규제가 쏠리면서 최근 경기도 남부에 있는 수원·용인·성남(수·용·성)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두드러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부동산 스타강사와 유튜버들의 영향력이 대학생, 사회 초년생과 같은 20·30세대는 물론, 10대들에게까지 파고들고 있습니다. 부동산을 배우고 싶다고 유명 유튜버를 찾아가는 10대부터, 유튜버와 투자 상담을 받고 갭투자(전세를 끼고 적은 초기 투자금으로 집을 산 뒤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시세차익을 얻는 투자 방법)를 하는 대학생도 수두룩합니다. 부동산 말고는 돈 벌 곳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대학에서는 부동산 투자관련 학회·동아리가 잇달아 생기고 있습니다. 젊은 층의 부동산 투자 열풍이 과거 우리나라를 휩쓴 비트코인 광풍과 닮았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올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은퇴자의 고시’, ‘퇴직자들의 전유물’이라고 불리던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험에는 대학생을 포함한 20∼30대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1차 시험 응시자(12만 9천 694명) 가운데 30대 이하는 전체의 37.6%(4만 8천 841명)를 차지했습니다. 10대도 368명이나 응시했다니 놀랄 따름입니다. 과거 공인중개사는 특별한 자격 기준이 없어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정년도 없어 은퇴자들의 생업으로 인기를 끌곤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집값 상승과 취업난의 여파로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갖는 청년층의 진출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연일 고공행진 하는 집값 상승의 이유를 초저금리에 따른 과잉 유동성이나 수급 논리만으로 설명할 순 없습니다. 물론 스마트폰 보급에 따른 SNS 사용과 부동산 투자의 대중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는 일종의 경제활동으로, 그것을 말리거나 제어할 법적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부동산 불패의 믿음으로 연결된 순환구조가 부동산 가격 하락과 비관적 전망의 순환구조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07년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믿음이 단기간에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내린 믿음이 무너질 정도면 그 조정 과정이 혹독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동산 소비자들이 현명해져야 한다는 말 한마디로 끝낼 일은 결코 아닙니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SNS를 통해 퍼지는 부동산 불패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기존 시장 참여자들을 결속시키고, 새로운 투자자들을 유입시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나름의 견고한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규제만 하면 집값이 뛰는 ‘규제의 역설’과 ‘학습효과’를 부동산 스타강사들이 영리하게 이용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정부 대책보다는 이들의 달콤한 유혹을 더 믿고 따르게 되는 것이죠.

16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그레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는 ‘그레셤의 법칙’을 주창했습니다. 이 학설은 그레셤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영국 은화였던 실링(shilling)의 유통에 대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는 편지에서 유래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아버지였던 헨리 8세는 세금을 올리지 않고 정부의 재정 수입을 늘리려 통화의 40%를 은이 아닌 일반 금속으로 대체해 제조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순은화폐(양화)를 집에 쌓아 두고, 은의 함량이 낮은 화폐(악화)만을 사용했죠. 결국 시장에서 가치가 낮은 통화가 가치가 높은 통화를 몰아내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그레셤의 법칙은 악화와 양화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유통될 경우, 가치가 낮은 화폐만 유통되고 가치가 높은 화폐는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궁극적으로 시장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이론을 부동산 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부동산 불패론자들의 주장으로만 채워진다면 집값은 계속 오르고, 내 집 마련이 불안한 20∼30대를 비롯해 부채 상환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계층의 부동산 구매도 점점 증가할 것입니다. 실제 이런 현상은 이미 먼 미래가 아닌 작금의 현실이 됐습니다. 투기를 부추기는 ‘악화’의 난립이 무주택자들이나 집을 넓혀 가려는 실수요자들의 '양화'를 구축하는 꼴입니다.

그레셤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악화와 양화가 같은 가치로 유통되도록 정책을 유지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은 정부가 악화와 양화에 대한 가치를 식별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시장 참여자들에게 제공하고, 악화의 난립을 차단할 수 있는 체계적인 모니터링이 시급해 보입니다. 부동산경영학회가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부동산 매물 홍보나 추천이 포함되는 강의를 할 경우, 부동산 전문가나 강사들의 경력과 이력, 강사료 등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고 관련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허위 정보로 손해를 끼친 전문가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 제도를 도입할 필요도 역설했습니다. 이 밖에 많은 전문가가 SNS상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시장 교란 행위를 우려하면서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일정 부분의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이 부동산 정보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의 기획 기사가 나간 직후 정부는 부동산 스타강사들의 무등록 부동산 중개나 탈세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한 본격적인 단속에 들어갔습니다. 부동산 스타강사들은 영리 목적이 포함된 SNS 활동을 속속 중단·축소하거나, 특정 단지의 시세를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자정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정부가 부동산이 본연의 기능과 순수한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시장질서의 확립과 기반 조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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