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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소통
100m 달리기식 소통이 만드는
불통의 시대

글. 천동환 차장(신아일보 건설부동산부)

‘탕’

총성이 울리자 출발선에 서 있던 선수들이 내달린다. 10초 안팎 시간 동안 전력 질주한 선수들이 가쁜 숨을 내쉰다. 100m 달리기는 목표 지점까지 가장 빠른 속도로 도달하기 위해 모든 신경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경기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소통(疏通)의 신호탄이 쏘아지고,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한 사람은 열심히 말하고, 한 사람은 열심히 듣는다. 대화가 끝난 후 말한 사람과 들은 사람 모두 답답함을 느끼며 가쁜 숨을 내쉰다. 100m 달리기 같은 소통으로 두 사람의 거리는 100m 더 멀어졌다.
소통이 인간관계의 핵심 키워드가 된 지 오래지만, 우 리는 여전히 이 과정에서 숨을 헐떡인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것이 소통이 가진 의미인데, 이상하게 우리는 이 행위 뒤에 더 답답함을 느낀다.
왜일까? 수많은 리더십 교육과 책이 소통의 기술을 얘기하고 있음에도 왜 우리는 계속 소통에 목말라 할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마음, 이기적인 목적에서 소통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원하는 답을 얻으려는데 더 애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얻고자 하는 것이 클수록 소통을 어렵게 생각하고, 얻고자 하는 것이 작을수록 쉽게 생각한다. 얻고자 하는 것이 없는 사이면 부담 없이 웃고 떠들기도 쉽다.
부모와 자식 또는 부부, 직장 선·후배 간 소통이 어려운 것은 각각의 관계 사이에 존재하는 기대치가 다른 관계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일수록 단시간에 목적을 달성하려는 ‘100m 달리기식 소통’의 실수를 범할 때가 많다.

part 1 왜 우는지 알아내라

“응애~”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소통을 시도한다. 자신이 세상에 왔음을 알아달라며 울음을 터트린다. 이때부터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까지는 밥을 달라거나 안아달라거나 용변을 봤으니 치워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울음을 활용한다.
아이가 울면 부모에게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는 요구가 발생한다. 이때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울음 자체에 집중해 아이를 달래려고만 하거나 혼내는 방법으로는 울음을 완전히 멈추게 할 수 없다.
울음에 집중해 실패하는 소통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공통으로 발생한다. 운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울 때 울음 자체보다 이유에 집중한다.
아이의 울음은 어른이 돼가면서 짜증이나 분노, 침묵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바뀌어 표출된다.
사춘기 자녀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거나 직장 동료가 험악한 표정으로 숨 막히는 사무실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모두 아이가 우는 것과 같은 소통 방식이다. 이럴 때 방문을 두드리며 자녀를 방에서 나오도록 하거나 숨 막히는 사무실에서 탈출할 방법을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자녀와 직장 동료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과 소통하려면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이들은 우는 아이와 같은 상태다.

part 2 정말 답 없는 ‘답정너

부모가 자녀와의 소통에 실패하거나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과 소통에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대답만해)'식 접근에 있다.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의 대부분은 마음속에 원하는 답을 정하고 대화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공부 열심히 할게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부모는 대화 과정에서 온갖 그럴싸한 말을 동원한다. 표면적으로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라거나 “사람은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만 놀고 공부해라”라는 말을 꽈배기 꼬듯 꼬는 것이다.
자녀가 “놀 때 가장 행복해요”라고 말하면 “놀면 지금 당장은 행복해도 나중에는 행복할 수 없다”라고 받아치거나 “저는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하면 “그럼 영어도 잘해야 한다”면서 공부를 강요하기도 한다.
자녀의 말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도 그 말에 담긴 의미와 생각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모는 자기 생각으로 아이의 생각을 덮으려 한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면 소통이 단절되고, 부모는 어느새 자녀에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된다.
직장 내에서도 이런 식의 대화를 종종 본다. 상사가 아래 직원과 대화할 때도 원하는 답에 집중한 나머지 소통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소통에 서툰 직장 상사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래 직원의 생각을 바꾸려 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를 함께 마시며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언과 자기 자랑, 핀잔으로 두 사람 사이를 채운다.
이런 식의 화법에 익숙한 사람은 자신의 얘기를 상대방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제대로 소통했다고 믿는다. 이는 소통과 설득의 혼동에서 비롯된 참사일 수도 있다. 소통은 상대방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내 요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설득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소통 자체를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 과정으로 오해하면 관계는 오히려 악화한다.

part 3 가는 손님 붙잡고 오는 손님 내치기

우리는 간혹 눈앞에 찾아온 기회보다 저 멀리 떨어진 기회에 더 집중하곤 한다. 이는 소통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경우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가게 주인이 광고 전단을 배포하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손님과 소통할 기회를 잡으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손님 스스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경우는 소통의 기회가 바로 눈앞에 온 상황이다.
그런데 가끔 어떤 가게 주인은 불친절한 서비스로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광고를 통해 어렵게 손님을 모으는 가게가 단골을 만들 수 있는 소통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이처럼 비용을 들여서까지 성공 가능성이 낮은 소통을 시도하면서도 정작 손쉬운 소통 기회가 왔을 때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경험한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선물을 사주거나 함께 여행할 것을 권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동네 놀이터에서 놀아달라는 자녀의 요구에는 “바쁜 일이 있다”라거나 “미세먼지가 많다”는 등 온갖 핑계를 대며 귀찮아한다.
직장에서도 선배는 후배가 겪는 어려움을 물어보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영웅처럼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작정하고 후배의 어려움과 고민을 들으려 한다. 명확하게 얘기하지 못할 때는 몇 번씩 되물으면서 솔직한 답을 끌어내려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후배가 먼저 다가와 어려움을 얘기할 때는 “나 때는 더 어려웠다”며 정신력을 탓하고, 업무 성과가 좋지 않을 때는 “책임감이 없다”며 질책을 앞세우면서 불통의 길로 걸어가기 일쑤다. “준비 땅”을 외치고 소통하는 방식은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힘들다.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 일방적인 에너지 소비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게에 찾아온 손님을 주인이 극진히 대접하듯 상대방이 필요로 할 때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는 것이 차라리 효과적이다.

맺는 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감정평가사들도 소통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지난해 11월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열고 △국민 행복을 실현하는 협회 △국민 재산을 지키고 국가의 가치를 더하는 협회 △사회적 역할을 하는 협회라는 미래비전을 선포했다.
협회의 비전은 국민과 사회를 향한 소통 의지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감정평가업계가 국민으로부터 인정받고, 이를 바탕으로 감정평가사의 권익이 향상되길 바랄 것이다.
국민과 사회를 소통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람직하다. 감정평가업계에 가장 크고 견고한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도가 일방적이거나 강요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업계가 아무리 소리를 높여도 국민적 관심을 이끌고, 동의와 사랑을 얻기는 쉽지 않다.
부모와 자녀, 직장 동료 간 소통이 보여주듯 감정평가사 한 명 한 명도 보편적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 데 집중된 소통이 아닌 국민과 우리 사회가 업계에 요구하는 바람을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키려는 소통을 해야 한다. 협회의 비전 선포는 100미터 달리기를 위한 총성이 아니라 귓속 마개를 빼내고서야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 국민들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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