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부동산가격공시제도와
감정평가사의 존재 이유
글. 이선영 감정평가사(태평양감정평가법인 부산경남지사, 법학박사)
<본 기고문은 독자께서 기고해주신 글이며, 게재되는 글은 협회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부동산가격의 공시 목적은
적정가격 100의 공시 그 자체이며,
현실화율로써 공시가격을 조정하려고 하면 안 돼
지난해 12월 17일 정부는 「2020년 부동산가격공시 및 공시가격 신뢰성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2020년 가격공시를 통한 부동산 유형별 현실화율은 2019년도 대비 표준지 0.7%P, 표준 단독주택 0.6%P, 공동주택 1.0%P 수준 제고될 전망’, ‘2005년부터 주택에만 적용한 공시비율 80%를 2020년 공시부터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80% 공시비율을 폐지하더라도 공시가격이 상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Q&A도 붙임자료로 공개됐다. 여기에서 법률로 규정된 「적정가격」이 거래가격 수준, 즉 시세(時勢)나 시가(時價)로 공시돼 제도가 운영되고 있음이 엿보인다.
거래가격 수준의 공시는 부동산가격공시제도 도입과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공시가격이 거래가격을 유도하지 않고 거래가격이 공시가격을 유도하게 되어 부동산가격의 불안정은 물론 가격공시제도의 신뢰성 제고를 요원(遼遠)하게 할 뿐이다. 공시가격이 거래가격 수준이라면 투기가격이나 개발이익가격 등 높은 부동산가격으로 거래해도 조세나 개발이익환수 부담만 하면 법적으로 이를 비난할 수 없고, 가격공시제도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된다. 이러한 취지에서 공시가격은 거래가격 수준, 즉 시세(時勢)나 시가(時價)를 공시하는 시장·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거래가격의 높고낮음의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법적 개념’이며, 「적정가격 100」의 공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나 국민은 이를 필요한 목적에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부동산의 「적정가격」 공시는 재산권의 가치보장과 사회적 시장경제 추구라는 헌법정신을 배경으로 한다. 이를 정당한 가치로 추정하여 일반 토지거래의 지표, 감정평가 기준, 보상평가 기준, 각종 조세 또는 부담금 부과기준 등에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공시가격을 일정한 목적에 활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개별 법률의 엄격한 근거를 필요로 한다. 공시가격의 활용은 적정가격 10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이미 거래가격의 적정성과 표준부동산의 최적이용가치(最適利用價値)를 판단하여 공시가격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이 현실과 괴리(乖離)된다고 하여 이를 미리 현실화율(現實化率)로써 그 적정성을 부인하고 조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공시가격이 현실과 괴리(乖離)되는 원인은 결국 「적정가격」 개념과 거래가격의 적정화 기준을 명확하게 확립하지 못한 탓이다. 이를 명확하게 확립한 후 공시가격을 감정평가 기준으로 엄격하게 적용 한다면 공시가격은 자연스럽게 「일반적 토지거래의 지표」로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공시가격은 그 적정성이 추정되지 아니하면 법적 안정성을 기대 할 수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 추구라는 헌법정신 하에서 사회적으로 시인(是認)할 수 없는 투기가격·개발이익가격 등과 같은 불로소득이나 불합리한 거래가격의 존재를 동의하지 않는다면,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추상적인 현실화율에 공시가격이 미달하거나 초과한다고 하여 이를 비난하거나 부정할 성질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공시지가는 그 평가의 기준이나 절차로 미루어 대상토지가 대상지역 공고일 당시 갖는 객관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적정성을 갖고 있다고 볼 것이다. (다만,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보상금액이 사실상 실제의 거래가격보다 지나치게 적은 사례가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이러한 사례는 제도의 적정한 운영으로 방지할 수 있다 할 것이므로 이 점만으로 제도의 부적정성(不適正性)을 탓할 수는 없다.”(헌재 1995.4.20. 선고, 93헌바20, 66. 95헌바6) 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보면 공시지가는 항상 부적정한 것이 아니라 일단 그 적정성의 추정력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공시가격 수준과 다른 거래가격 형성은 자유나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할 의무도 수반한다.
표준공동주택가격 공시제도를 도입해야!
표준지·표준단독주택·공동주택(아파트) 등의 공시가격은 모두 「적정가격」이지만 그중에서 표준지가격 공시에만 일반적 토지거래의 지표 및 감정평가 기준의 효력이 있고 나머지는 이러한 효력규정이 없다. 표준지가격 공시에서 일반적 토지거래의 지표 및 감정평가 기준의 효력이란 거래가격 결정의 자유를 제한함이 없이 가급적 공시지가 수준대로 하도록 하는 권고적 성질이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에는 감정평가액이나 그로 인한 법적 규제를 감수할 의무를 내포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즉, 표준지가 공시의 효력규정은 사실상 공시지가 수준대로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부동산등기를 강제하지 않아도 등기를 하지 아니하면 소유권 변동의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하므로 그 효력 규정은 등기강제의 효과가 있는 것과 같다.
표준지공시지가는 나지(裸地)를 상정한 토지 1필지 중 1㎡ 단가(單價)로 공시되며,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은 1동의 단독주택과 그 주택이 소재하는 토지를 포함한 가격 총액으로 공시된다. 공동주택(아파트) 공시가격은 집합건축물로서 구분소유권의 전유면적·공유면적 및 토지 지분권을 일체로 한 1개 호의 가격 총액으로 공시된다. 일반건축물인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은 토지와 건축물을 일체로 한 총액으로서 4가지 부동산 거래유형을 기준으로 산정한 컴퓨터 가격이다. 실제 거래가격도 아니고 검증되지도 않은 4가지 거래 유형을 상정하여 산정한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에서 토지가격은 표준지공시지가와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표준지가공시제도와 유사하므로 양 제도를 개선하여 통합해야 할 것으로 본다.
주거문화가 아파트 중심으로 바뀌면서 종전 토지가격이 유도하던 부동산가격 상승은 오늘날 아파트 가격이 부동산가격을 유도하는 경향이다. 부동산가격공시법은 공동주택(아파트, 연립주택, 빌라 등)가격 공시제도를 두고 있으나 표준공동주택가격 공시와 그 효력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구분건물소유권과 그 토지 지분을 일체로 하는 공동주택은 1개의 물건(物件)으로 거래단위가 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전국의 모든 공동주택을 감정평가 기능이 없는 「한국감정원」이 평가한 가격으로 공시하고 있는데 그 평가 주체와 공시가격의 정당성이 문제가 된다. 특히 요즘처럼 공동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불안정한 시기에는 표준지가 공시제도와 같은 표준공동주택가격 공시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토지거래가격이 급등하고 불안정한 경우에 표준지공시지가는 거래가격의 적부 판단 기준으로서 법적 장치가 될 수 있으나, 공동주택가격이 급등하고 불안정한 경우에는 이러한 장치가 없다. 표준공동주택 공시가격은 공동주택 거래가격의 적부 판단 기준으로서 법적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표준공동주택가격 공시제도 도입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감정평가사는 부동산가격 공개념 실현에
존재감을 갖고 앞장서야 한다.
칼춤을 추고 있는 아파트 가격을
구경만 하고 바라보고 있어야 하나
부동산가격공시제도의 요체(要諦)는 표준지·표준단독주택·표준공동주택 등의 「적정가격」 공시, 공시가격의 적정성 추정, 일반적 거래의 지표, 감정평가 기준·방법 및 절차 등이다. 표준부동산가격이 적정가격으로 공시되고 공시가격의 적정성이 추정되면, 거래당사자는 공시가격을 표준으로 삼아 거래가격을 결정하게 될 것이며, 감정평가사는 그 거래가격을 참작하여 표준부동산의 「적정가격 100」을 평가하게 된다. 적정가격 100으로 평가된 표준부동산 공시가격은 다른 부동산의 감정평가 기준이 될 수 있어서 적정한 거래가격을 대신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거래당사자가 만약 표준공시가격을 무시하고 별개로 부동산 거래가격을 형성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 제한과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에의 적합 의무를 규정한 헌법정신을 근거로 거래당사자는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할 의무도 수반하게 된다. 부동산공시가격은 다양한 부동산 거래가격의 고저(高低)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부동산가격의 급등(急騰)과 빈부격차의 심화(深化)를 방지하려는 공공 필요성이 그 본질이며 존재 이유이다. 법률이 공시가격을 국가·지방자치단체가 행정 목적에 필요한 가격의 산정기준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이 공시제도의 본질을 떠나서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그렇게 달리 해석할 수 있다면 그 공시제도의 본질이 왜곡될 수 있을 것이다.
감정평가사에게는 부동산공시가격뿐만 아니라 감정평가 제도를 통하여 모든 국민의 재산권 가치 보호를 위해 적정가격 100을 평가하고 재산 가치 평등을 실현하는 법적 지위가 부여되어 있다. 이에 감정평가사는 감정평가 제도를 중심으로 부동산 거래가격 공시와 표준부동산가격 공시제도 운영에서 존재감을 가져야 한다. 능력껏 자신의 지식을 국가에 기부하고, 부동산공시가격이 실질적으로 부동산 거래의 지표와 감정평가 기준이 되어 부동산가격 공개념이 실현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2006년 부동산가격 안정을 위해 부동산거래신고제도가 도입된 후 일각에서 감정평가에 의한 부동산가격공시제도 무용론이 주장되거나 공시가격은 시장가치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의 특성, 사회적 시장경제의 법리 및 부동산가격공시제도의 본질을 법적 측면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이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2·16 부동산대책 발표 후 2개월가량 지나면서 서울 비(非)강남권에서 9억 원 안팎의 집값이 더 오르는 ‘풍선효과’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언론 기사가 나왔다. 시중 유동자금이 대출·세금 규제를 피해 경기 ‘수용성(수원·용인·성남)’으로 몰리면서 이 지역 집값이 오르자, 9억 원 미만 아파트가 몰린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나 ‘금관구(금천·관악·구로)’에서는 전용면적 84㎡ 아파트 값이 새 아파트를 중심으로 10억 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9억~15억 원 아파트가 몰려있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서도 최고가격을 경신하는 아파트가 속속 나오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은 지방 대도시에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마디로 아파트 가격이 칼춤을 추고 있다. 표준공동주택 공시가격도 없이 감정평가 기능이 없는 「한국감정원」이 평가한 공동주택(아파트)가격공시에 대해 그 적정성을 추정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부동산 가격공시제도와 감정평가사는 언제까지 이러한 칼춤을 구경만 하고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