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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두고10년 전세살이’

3선 의원과 주거 사다리

글. 박종화 기자(이투데이 부동산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논란이 한 달 내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는 선의마저 의심받는다. 출범 직후부터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왔지만 정작 ‘내부의 적’은 잡아내지 못했다. 급기야 부동산 담당 기자까지 그 유탄을 맞았다. 부동산 취재를 맡은 후 1년 반 동안 아홉 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치렀지만 이렇게 정신없는 때는 처음이다. LH 직원들 투기 행태를 파는 것에 더해 또 다른 투기 의심 지역은 없는지 매일 살펴야 했다. 신도시 예정지 토지·건축물 대장을 들춰보고 고위공직자들은 어디에 집과 땅을 가졌는지 찾아보는 일이 일상이 됐다.

3선 의원의 이유 있는 10년 ‘전세 존버(끝까지 버틴다)’

A 의원은 이런 난리 통에 알게 됐다. A 의원은 몇 년째 전세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3선인 A 의원은 초선 때부터 지역구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다. A 의원이 돈이나 집이 없어서 전세살이를 하는 건 아니다. A 의원이 올해 신고한 재산은 10억원이 넘는다. A 의원 지역구에서 아파트를 사기에 적은 돈은 아니다. 사실 A 의원은 10년 전 지역구 또 다른 동네에 B 빌라 한 채를 장만했다. 구매 후 한 번도 그 집에 산 적이 없을 뿐이다.

B 빌라에 관심이 생겼다. 포털 지도에서 검색을 해보니 국회의원 집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벽은 검누렇게 변색해 있고 땜질한 흔적도 여럿이었다.

알아보니 B 빌라는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낡은 집이었다. 한때는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면서 기대를 받던 때도 있었다. A 의원도 재개발 조합이 출범한 이듬해 B 빌라를 샀다. 이후 주민 이견이 생기면서 재개발 사업이 무산됐고 B 빌라는 대책 없이 낡아가는 실정이다.

선배 기자들과 B 빌라를 직접 찾았다. 사진보다 더 열악했다. 벽엔 금이 가 있고 동(棟)과 동 사이엔 쓰레기가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주민들 말로는 빈집이 반이라고 했다. 남은 집들도 주택보다는 점집으로 꾸며지는 일이 많았다. A 의원이 자기 집을 두고 전세살이를 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B 빌라 사람들은 자신들 이웃이 A 의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A 의원 옆집 세입자는 “A 의원이 집을 세주다가 지금은 비워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B 빌라에서 가로주택 사업을 추진하는 관계자는 “A 의원 측에서 수시로 사업 상황을 물어본다”라며 “‘자신은 가장 마지막에 (사업) 동의서를 낼 것’이라고 말하더라”라고 전했다.

A 의원에게 B 빌라에 관해 물었다. 그는 “재건축하면 아파트라도 하나 얻어볼까 해서 샀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 수 없어서 전세를 살고 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A 의원 행태는 투자일까, 투기일까. 취재기자들 생각은 ‘투기’ 쪽에 기울었다. 자기 집을 놀리면서 재건축을 기다리는 세입자가 되기란 서민으로선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그는 지역 사업에 입김을 끼칠 수 있는 국회의원 아닌가.

이런 생각을 우려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2주택자도 아니고 1주택을 유지하면서 재건축을 기다리는 걸 투기로 봐야 하느냐는 생각이었다. ‘실패한 투기’까지 들출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누군가는 A 의원의 ‘딱한’ ‘투자’ ‘안목’에 혀를 찼다. 곡절 끝에 A 의원 얘기는 기사화하지 않고 무용담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내 집 두고 전세살이’ 투기일까, 투자일까

A 의원 일을 기사화하지 못한 건 아직도 아쉽다. 그가 B 빌라를 산 게 투자인지 투기인지 헷갈리는 것도 여전하다. 아쉬울 때마다 지금 정부 잣대론 A 의원 일을 어떻게 처결했을지 헤아려본다.

A 의원에게 ‘투기 꼬리표’를 붙이는 걸 걱정했던 분들 생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A 의원 같은 극단적인 행태는 아니더라도 세입자로 계속 지내면서 본인 집도 세를 끼고 사거나 전세 놓는 일은 얼마 전까지 흔했다. 우선 임대보증금으로 주택 구입 자금을 보충하고 임대 기간 동안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전세 레버리지’는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 장만을 서두르려는 젊은 층이 애용했던 방법이다.

그런 전세 레버리지가 지난해부터는 사실상 막혔다. 갭 투기를 잡는다며 정부가 대출 문을 조여놨기 때문이다.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주택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6개월 안에 그 집에 입주해야 한다. 투기과열지구에선 전세 대출을 받은 사람이 3억원 넘는 집을 구매하면 대출금을 반환해야 한다. 집을 샀으면 계속 전세를 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지 말고 바로 입주하라는 뜻이다. 그러잖아도 대출 한도가 줄어든 상황에서 전세와 자가 마련 사이 중간 사다리까지 사라졌다.

‘전세 레버리지’ 대체할 건전한 주거 사다리 마련해야

실수요자를 강조하는 지금 정부라면 A 의원의 10년 전세살이를 곱게 보지 못했을 것 같다. 아니, 이제까지 정부가 해왔던 말들이라면 그래야만 맞다. A 의원 같은 ‘전세 존버’조차 우리 세대엔 대출 없이 현금 부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플렉스’가 됐다.

서른에 가까워지면서 또래와 모일 때마다 부동산 얘기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십중팔구 한숨으로 마무리된다. 한두 살씩 먹으면서 내 집 마련에 관한 고민은 커지는데 실현할 방도가 깜깜해서다. 약빠르게 일찍 집을 마련한 녀석도 있지만, 눈치 없이 집값 얘기를 꺼냈다간 의 상하기 십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대 이하의 서울 아파트 PIR(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2016년 12년에서 지난해 16년으로 늘었다. 전에는 20대가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2년을 모아야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었다면 이젠 4년을 더 모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월급 쌓이는 속도보다 더 빨리 집값이 올라서다. 청약 가점을 쌓아 분양을 받아보자니 그 역시 만만찮다. 15년 무주택자도 부양가족이 부족하면 미끄러지는 게 요새 청약시장이다.

지금 20대 태반은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생으로 전세살이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같은 세입자라도 현금 수억원과 재건축 추진 빌라를 쥐고 있는 A 의원과는 처지가 다르다. 청년층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주식이나 코인이 열심히 불어 전세를 면할 수 있는 날이 조금이라도 앞당겨지길 바라는 것뿐이다.

청년층이 A 의원을 따라 할 수 있도록 갭투자 길을 다시 열어달라는 게 아니다. 그의 유주택 전세살이가 투기인지, 투자인지는 애매하지만 정도(正道)가 아닌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세를 껴 적은 돈으로 집을 여러 채 사는 투기세력 행태에 느슨했던 대출 제도가 한몫 거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전세 레버리지’라는 주거 사다리를 치웠으면 다른 번듯한 사다리를 내놔야 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는 점이다.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나 지금껏 정부는 투기 틈새가 드러날 때마다 부지런히 대책을 내놨다. 그런 정부가 주거 사다리를 보완하는 데는 굼뜬 게 현실이다.

현 정부도 생애 첫 주택을 마련하려는 청년에게 청약시장에서 특별공급 물량을 배정하고 취득세를 감면해주긴 했다. 그러나 물량은 여전히 적고 취득세 감면을 받을 수 있는 집은 서울에선 극소수 저가·노후 주택뿐이다. 청년층이 단순히 고위층 투기와 까다로운 규제를 보고 분노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이 화내는 건 윗세대가 사다리를 걷어차면서 자신의 주거 여건을 상향할 기회가 줄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포더블 하우징(Affordable Housing: 부담 가능한 주택)’이란 말이 있다. 경제적 약자도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저렴한 집을 말한다. 여기엔 싼값에 집을 공급하는 건 물론이고 주택 구매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금융상품 개발까지 포함된다. 충분한 물량이 정부가 원하는 형태가 아닌 수요자가 원하는 형태로 공급된다면 금상첨화다.

집값 급등에 이어 벌어진 LH 사태로 너무 많은 청년이 상처를 받았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 하는 건 그것이 집이란 다른 사람의 소망을 제 돈벌이로 이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무너진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기에 문재인 정부의 남은 1년이 너무 촉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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