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알코올이 지나간 자리엔 진한 향이 남는다. 오크통의 달큰함, 사과의 청량함, 바닐라의 부드러움이 온몸을 휘감는 그때. 위스키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마시는 것을 넘어 존재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위스키. 그 인기가 재테크시장까지 뻗어나가는 중이다. 바야흐로 위스키 재테크의 시대가 열렸다.
글. 차은서(편집실)
요즘 위스키는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다. 입문용 중저가 위스키부터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까지, 이름난 위스키 브랜드는 수요가 대폭 늘어났다. 고급 싱글몰트의 대명사 격인 ‘맥캘란’을 포함해 ‘발베니’와 ‘글렌피딕’은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구경도 못 할 정도다. 최근에는 이를 빗대 ‘위스키런’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위스키의 인기는 주류 판매점, 마트, 도매 상가를 가리지 않는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위스키류 수입액은 2억 4,711만 달러, 한화로 약 3,084억 원이다. 2008년 이후 최대치다. 주류 업체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까지 위스키를 찾고 있다는 증거다.
위스키 열풍은 코로나19로 인한 홈술 트렌드에서 비롯된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족은 ‘이왕이면 나를 위한 작은 사치’의 개념으로 맛있고 질 좋은 술을 찾는다. 와인과 위스키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최근 하이볼(위스키에 토닉워터를 섞은 칵테일의 한 종류)이 MZ세대 사이에서 ‘힙한 술’로 떠오르면서 위스키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실제로 유통업체 이마트는 지난해 위스키 구매 고객 중 2030세대의 비율이 46.1%로 집계됐다고 밝힌 바 있다. GS25 편의점에서는 최근 3년간 위스키 구매 소비층 가운데 2030세대 비율이 70%를 넘겼다.
위스키의 인기와 함께 위스키 재테크도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위스키는 투자가치가 높은 술로 손꼽힌다. 해마다 품질이 달라지고 오래 묵어야 가격이 오르는 와인과 달리 위스키는 이미 숙성된 원액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판매 첫해부터 가치가 오르기 시작한다. 한정 생산되는 위스키라면 희소성까지 더해져 그 몸값은 천정부지로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는 한 증류소에서 오랜 시간 숙성시킨 원액을 넣어 만들기 때문에 생산성에 한계가 있다. 위스키 원액은 오크통에서 매년 2%씩 증발하는데, 숙성기간이 길수록 남은 원액이 더욱 진귀해져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출시 첫해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위스키가 새로운 재테크 트렌드로 떠오른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영국 나이트프랭크가 발표한 지난해 4분기 ‘럭셔리 인베스트먼트 인덱스(Luxury Investment Index 2022)’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희귀 위스키의 가치는 428% 상승하며 최고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런 현상은 경매 현장에서 더욱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영국 런던 경매장에 나온 ‘1926 맥캘란 파인 앤 레어’ 60년산은 당시 한화 약 23억 원에 낙찰됐다. 10년 전인 2009년 미국 뉴욕 경매장에서는 약 6,600만 원에 낙찰된 상품이다. 10년 만에 가치가 수십 배 이상 오른 것이다. 위스키 시장에서는 말 그대로 시간이 금인 셈이다.
국내에서 일반인이 경매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높은 가격과 접근성 때문에 공병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들도 많다. 고가의 위스키 대신 공병을 구하는 이들은 중고 거래 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맥켈란 21년산은 최근 공병 가격이 10만 원까지도 오르며 그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위스키 투자 방법은 이 밖에도 다양하다. 위스키든 공병이든 직접 사고팔지 않더라도 위스키 재테크족을 위한 다양한 금융 상품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 해외에서는 위스키 투자를 위한 펀드 상품이 출시됐는데 세계 최초의 위스키 사모펀드는 평균 17%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2021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어 싱가포르, 홍콩, 유럽 등지에서도 다양한 펀드 상품이 출시됐다. NFT 시장에서도 위스키의 인기는 이어진다. 글렌피딕, 달모어 같은 위스키 브랜드가 디지털화 판매를 통해 위스키 구매 접근성을 확대한 상품이다. 소비자는 위스키를 실물로 소유할 수도, NFT로 보유할 수도 있다. NFT로만 보유하면 위스키 보관에 따른 부담이 적고 이후 거래가 편하다는 이점이 있다.
이처럼 위스키는 꽤 훌륭한 투자 방법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전문가들 또한 위스키 시장이 향후 10년간 약 7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물가 인상과 고금리로 인한 불황 속, 위스키의 매력이 한층 진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