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용기가 없다면 ‘그 안’에서 탈출하자”
글. 장한이(작가)
1990년대 한 언론사에서 ‘신세대의 직장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을 자아실현의 장으로 여긴다’가 1위를 차지했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서 결혼해 자녀를 낳아 가르치고 키워 출가시킬 때까지의 책임감으로 완성되는 삶. 20세기의 직장인들은 이러한 인생을 자아실현의 완성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도서 <오늘 일은 끝!>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 책의 부제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 한다는 거짓말’이다. 요즘 세대의 직장인 마인드를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시대가
바뀌고 또 바뀌었다. 직장인들은 회사를 그저 입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그런 곳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직장인의 삶도 늘 불쌍하고 안쓰럽기 그지없다. 직장은 자아실현은커녕 자아시련의 장이 되었다. 떠나고 싶지만 쉽게 발을 뗄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서글픈
직장인의 삶이다. 그렇다고 불쌍함과 안쓰러움을 인정하고 불만을 머금은 채 한탄하며 살아야 할까.
프랑스 극작가 앙리 드 몽테를랑(Henri de Monterlant)의 명언이다. 직장인을 염두하고 만든 문장이 아닌가 싶다. 불평불만 없는 직장인은 없으니 말이다.
매 순간 ‘떠나고 싶다!’라고 외치지만 정작 떠날 용기가 없는 직장인이라면, ‘그 안’에서 탈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20세기 직장인처럼 직장을 자아실현의
장으로 여길 수 없다. 그렇다고 자아실현의 욕구조차 포기해야 할까.
사전적 정의의 ‘자아실현 욕구’는 개인의 능력과 기술,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이자, 매슬로우 욕구 단계설 가운데 가장 상위의 욕구이다. 거창하게 매슬로우의
욕구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인생의 활력을 위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직장생활을 위한 자아실현은 필요하다. 직장에서의 자아실현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소소한
목표부터 겹겹이 실천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단계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직장에서의 자아실현 방법 중 하나는 동우회 등 회사에서의 모임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일단 말이 잘 통하는 동료를 만날 확률이 높다.
업무를 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동질감은 직장생활의 또 다른 활력이 된다.
요즘 동우회는 적당히 즐기고 술 한잔하는 친목 도모의 장이 아니다. 필자는 과거 회사에서 문화, 볼링, 사진, 댄스, 와인 동우회 등 주로 즐거움을 찾는 활동을 했다. 최근
사내 게시판에서 학습 동아리,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멤버를 모집하는 글을 발견했다.
시대는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이다. 이는 회사에서 억지로 선배 등쌀에 못 이겨 가입하던 동우회와는 180도 다른 모임이다.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할 수도 있고, 독서 갈증을
사내 모임을 통해 해소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각광받는 글쓰기 모임도 자기계발을 통한 자아실현의 방법 중 하나다.
실제로 직장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익명의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는 연령대별, 지역별, 주제별 온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을 추진하는 글 수십 개가 올라와 있다. 자격증, 외국어,
주식 등 자기계발 스터디 모집도 활발하다. 회사 내에서의 활동이 어렵다면 이처럼 직장인이라는 울타리 안의 동지가 모인 커뮤니티 활용 방법도 있다.
현대판 직장인 동우회는 소속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운운하는 강제 모임이 아닌 개인의 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모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하는 모임이나 동우회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 판을 키우는 방법을 추천한다. 모임의 리더를 맡으면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동우회뿐만 아니라 회사의 교육 제도, 학습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인재 육성 시스템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어학 인텐시브 과정이나 사내 교육(의무 교육이
아닌 선택하는 교육), 학위 취득 등의 제도나 혜택 활용을 통해 자아실현 준비를 할 수 있다.
현재 다니는 회사의 교육 사이트에서 책을 신청하면 무료로 보내준다. 매달 3권의 책을 공짜로 받아 읽는다. 다 읽고 객관식 시험(70점 이상)을 통과해야 교육비가 월급에서
공제되지 않기 때문에 재미 반 강제 반 독서를 한다. 책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좋은 기회라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처럼 책을 읽고 시험에 임한다.
틈틈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온라인 강의도 신청한다. 재무회계, 주식 공부, 초단편 소설 쓰기, 뇌과학으로 알아보는 자기계발 등 업무에 도움이 되거나 일상에 활력을 주는
강의를 주로 듣는다. 강의 한 편당 10~15분 정도로 구성돼 있어 점심시간이나 출퇴근 길에 학습하기 안성맞춤이다. 당장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기보다 차곡차곡 관심사를
배우며 발전하는 과정이다.
회사 지원을 받아 해외 MBA를 마친 선후배도 있고, 무급휴직을 내고 대학원이나 국내 MBA에 도전한 직원도 있다. 남들이 멈춰 있을 때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
자아실현의 기반을 마련한 이들이다.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천하기 힘든 과정이다. 이러한 성취감은 스스로를 인정하는 기회가 되고, 직장생활의 롱런을 위한 충분한
동기부여도 되지 않을까.
요즘 직장인 중 업무에 진심인 사람은 별로 없다. 요즘 직장 선택의 우선순위는 사내복지나 ‘워라밸’이다. 그렇지만 이를 꼼꼼하게 체크해 입사해도 직장에서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많은 직장인이 힘들고 짜증나고 그만두고 싶다는 불평불만을 남발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다.
앙리 드 몽테를랑의 말처럼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잘 이용해야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개척할 수 있다. 필자는 직장에서의 불평불만이 극에 달하였을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십여
년 넘는 힘든 상황을 발판으로 6권의 책을 출간했다.
이 시대의 자아실현은 자기계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꾸준한 배움을 통해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업그레이드하는 삶, 직장인의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이다. 직장인이 자아실현
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저 매일 회사를 외면하느라, 고개 숙이고 푸념하느라 바빠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여기저기서 남발하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는 달콤한 유혹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쓰디쓴 거짓말이다. 현재 직장인이고 앞으로도 직장인일 가능성이 크다면 ‘그 안’에서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한다. 직장에서 자기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면서 능력과 기술을 발휘할 기회를 매 순간 고민하고 스스로 만들어 개척해 보자. 직장생활에 의미를 담아 롱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