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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뒤를 따르는
한국의 미디어 산업

글. 남승표 기자(연합인포맥스 기업금융부 부장대우)

뉴스, 새로운 소식이란 뜻이다. 정보통신 혁명 이후 여러 산업 분야가 혁신을 화두로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정작 이런 소식을 퍼다 나르는 미디어 기업에서는 혁신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국내 미디어 기업에서 혁신의 성공사례를 찾기란 더욱 어렵다.

신문의 예를 살펴보자. 독자들이 기사를 접하는 창구가 지면에서 컴퓨터 모니터, 휴대폰으로 바뀌어 갔다. 하지만 신문은 편집 판형을 줄이거나 지면 편집을 기사 가치에 반영하여 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사를 노출하는 등 형식적인 변화마저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인터넷을 통해 독자와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으나, 미디어 기업이 생산한 기사를 독자들이 소비한다는 과거의 생산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인터넷 화면에 덕지덕지 발린 광고들은 독자들의 열독을 방해하는 요소이나, 미디어 기업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팝업 광고 등으로 기사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인터넷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모바일로의 환경 변화는 신문 혹은 인쇄 매체에 있어 악몽과 다름없었다. 지면을 가득히 채웠던 글자를 모바일 환경에서 소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140자 제한을 두는 트위터의 등장은 모바일에서 글 읽기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국내 미디어 기업의 기사작성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여러 가지 시도가 도입됐다. 글자가 아닌 데이터와 그래픽으로 채운 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트위터 환경에 맞춘 기사까지 나왔다. 최근 가장 성공을 거둔 매체로 평가받는 악시오스는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기사를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굵직굵직한 특종을 통해 매체로서의 위상도 널리 알렸다.

뉴욕타임스의 변신은 또 어떤가. 뉴욕타임스는 구독 서비스에 집중하면서 독자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영역을 가리지 않고 도전했다. 요리, 온라인게임, 각종 상품 리뷰 등등. 그렇게 해서 뉴욕타임스는 가장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 사례를 이뤄냈다.

20세기 들어 가장 성공한 미디어 비즈니스 사례로 꼽히는 블룸버그 역시 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채권 딜러 출신이었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채권 딜러들이 각종 데이터 정리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점에 착안해 이를 대신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렇게 해서 블룸버그는 구독료가 연간 2만 달러가 넘는 초고가 정책에도 전 세계에서 구독자를 확보해 2018년 기준 1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한국 미디어 시장은 거꾸로 갔다.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구독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라지고 사실상 모든 미디어가 광고 수입에 매달리면서 최소한의 신뢰마저 거꾸러졌다. 뉴스를 접하는 창구마저 포털로 넘어가면서 한국의 미디어 산업은 최소한의 자립할 수 있는 기반마저 상실했다.

한국 미디어에서도 혁신 시도는 있었다. 탐사보도, 뉴미디어 제작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할 만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탐사보도의 사례를 살펴보자.

한때 바람이 불었던 탐사보도는 출입처 중심의 취재 관행에서 벗어난 영역이었다. 신문·방송은 정부, 기업 등을 중심으로 출입처를 나눠 운영하고 있는데, 탐사보도는 매체 자체적으로 이슈를 발굴하고 생산하는 형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탐사보도는 미디어 회사가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탐사보도 부서는 어떻게 운영됐는가. 편집국장 혹은 보도본부장의 지시로 각 부서에서 일정 수의 인원이 차출된다. 이때 각 부서의 이른바 ‘에이스’는 부서장들이 놓아주지 않는 관계로 차출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탐사보도 부서장의 경우 국장 혹은 본부장의 체면을 고려해 에이스급 인재가 차출된다. 이렇게 해서 탐사보도팀은 각 부서에서 애물단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인력과 회사의 체면치레를 위해 차출된 리더 한 명으로 구성된다.

이같이 구성된 탐사보도팀은 방송의 경우 방송시간을, 지면의 경우 게재 지면을 확보하기 위한 내부 투쟁에 들어간다. 탐사보도팀의 아이템이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면 주요 방송시간과 지면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기존 매출을 확보한 다른 부서에 밀린다. 미디어 회사는 한두 차례는 실험적으로 방송시간과 지면을 탐사보도팀에 제공해 줄 수 있지만, 지속적인 성과 창출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매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후순위로 밀어내게 된다. 여러 매체에서 탐사보도팀 운영을 시도했지만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이유다.

이렇게 해서 한국 미디어 시장에서 이용자들은 비슷비슷한 매체만 접하게 됐다. 게다가 구독료가 매체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면서 독자 반응은 단순한 클릭 수로 치환됐다. 결국 클릭 수는 광고주와의 협상에서 미디어 회사가 제출하는 지표의 하나가 되었다.

한국 미디어 산업은 왜 혁신에 실패했을까?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미디어 산업의 실패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의 성공사례가 오히려 희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혁신은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조직 내에서 혁신의 권한은 최상위층에 주어졌다. 기업으로 치자면 임원이다. 임원들의 평균 재직 기간이 3년 이하의 단기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은 장기적인 변화보다는 단기적인 성과, 예를 들어 매출과 이익의 극대화에 매달린다. 아울러 이들은 기존의 방식이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이 서툴 수밖에 없는 혁신에는 눈 감고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또 하나 생각해 볼 부분은 한국 미디어의 혁신 시도는 독자 변화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디어 기업들의 각종 혁신 시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자. 탐사보도, 그래픽 중심의 기사 제작 등은 모두 생산방식의 변화를 겨냥하고 있다.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원하고 있고 얼마만큼의 지불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지면 뉴스와 방송 뉴스의 통합을 지향하는 이른바 통합 뉴스룸 체제도 생산방식의 혁신에 대한 접근이지 수요를 확장하거나 자극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다. 게다가 일부 미디어 그룹의 통합뉴스룸 실패 사례에서 보듯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조차도 지면 뉴스와 방송 뉴스 등 각자의 특징에 대해 이해도가 낮았다.

그리고 유튜브의 시대가 열렸다. 유튜브 시대의 특징은 독자들의 선호가 강화된다는 데에 있다. 한번 독자들의 선택지에서 벗어난 콘텐츠가 다시 독자의 선호 범위 내로 포착되기는 어렵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전 영역의 뉴스를 다루는 종합 미디어 기업은 독자 선호 중심의 시장에서는 생존이 어렵다. 성공한 유튜브 채널마저도 세분화된 독자 선호에 대응하기 위해 하위 채널을 만드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미디어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좀 더 독자 선호를 파고들 수 있는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독자 기반을 잃어버린 한국 미디어 산업이 독자에 대한 연구, 개발 등에 투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근 미디어 기업들의 동향을 보면 정부 중심의 출입처 문화를 통해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기업의 광고비 지출을 극대화하려는 퇴행적인 모습만 간간이 목격될 뿐, 혁신이라고 할 만한 업적은 보기 힘들다.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던 공룡이 빙하기라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듯, 한국 미디어는 변화에 대한 적응을 거부하고 사라져가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디어의 공백은 누가 채울까?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서 다양한 개성을 바탕으로 구독자를 끌어당기는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다양한 형태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기성 미디어를 능가하는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밖에 없는 것 같다.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던 공룡이
빙하기라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듯,
한국 미디어는 변화에 대한 적응을 거부하고
사라져가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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