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대사태가 던진 교훈 이 광 회｜조선일보 경제과학부 부동산팀장 현대건설 사태로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현대건설뿐만 아니다. 현대전자, 현대투신 등 현대그룹의 부실계열사들이 언론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고,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건설은 매출이 7조원이 넘고, 부채만 5조원을 상회하기 때문에 경제에 주는 악(惡)영향이 이만저만 아니다. 현대전자 등 다른 현대 계열사들도 더하면 더했지 그저 쉽게 넘길 사안들이 아니다. 어찌됐든 현대문제가 올 한해 국가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 확실하고, 국민들 모두 현대사태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 같다. 현대문제가 미치는 파장은 그야말로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건설업계와 부동산경기회복의 걸림돌이라는 점에서 봐도 그렇다. 건설업계와 부동산경기는 바늘과 실의 관계라 할만큼 밀접하다. 건설업계는 최근 수년간 바닥을 기며(?) 고전에 고전을 면치 못해 왔다. 회복될 만하면 악재(惡材)가 터져 나왔다. IMF 이후 바닥을 그리던 부동산경기가 지난 해 초 의욕적으로(?) 출발, 잠시 회복되는 가 싶더니 수도권 난(亂)개발이라는 돌발 변수에 결정타를 맞고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경기 사이클 상으로 분명 회복기에 접어들었어야 했을 부동산경기였다. 98년도 한해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활황세(活況勢)에 놓여 있었고, 그에 다소 후행(後行)하는 부동산경기는 IMF 이후 바닥을 찍고 본격 상승기에 접어들어야 했지만 국토난(亂)개발, 용인 마구잡이 개발 등의 여론에 밀리고 말았다. 수도권 도시 주변에 엄청난 준(準)농림지를 사모았던 건설업체들로서는 손실을 피할 수 없었고, 해당 주변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분양계약자들도 본전은커녕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모두가 부동산시장에는 악재로 작용, 경기의 악순환은 거듭되기만 했다. 올해도 똑 같은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비록 지난 해 말부터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연초부터 발생한 현대사태의 심화는 부동산경기의 회복가능성마저 잠재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영원한 1위 현대건설의 휘청거림은 국민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47년 현대건설이 출범한 이후, 60년대 도급한도액이라는 제도가 생긴 이후 단 한번도 국내 건설업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현대건설이 끝내는 무너지면서 국민들이 느꼈던 충격은 너무나 컸다. 이 때문에 "과연 어느 건설업체를 믿을 것인가?"하는 자조(自嘲)가 국민들 사이에서 팽배해 있고, 그야말로 "현금 쥐고 있는 게 최고"라는 비아냥마저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대로 주저앉아야만 하는가.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은 현대건설 사태가 주는 교훈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건설업체로서도, 그렇고 위축될 대로 위축된 부동산업계로서도 실패의 교훈을 찾아볼 때다. 우선 신뢰와 투명성의 문제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해 내내 어느 정도의 자금지원만 있으면 회사가 회생할 수가 있다고 강변해 왔다. 국민들은 그 말을 믿었다. 채권단이나 정부도 현대건설에 대한 제대로 된 실사(實査) 한번 없이 수조원의 자금을 지원해 줬다. 현대건설을 포함한 현대그룹 계열사에 퍼준 자금지원액수만 그 동안 무려 12조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현대는 불과 1년만에 주인을 바꾸지 않고서는 회사마저 망할 지경에 처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현대는 신뢰를 잃었다. 수 차례 자구노력을 한다고 해 놓고, 막상 된 것은 거의 없다. 국민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부동산업계나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부동산시장이 되살아나기가 힘들 것이다. 시장은 신뢰가 바탕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 동안 불평등한 시장에서 수없이 속고 당해 왔다. 선(先)분양제도라는 회사입장에서 보면 땅만 잘 사면 떼돈 벌 수 있는 제도에 부동산 시장의 소비자들은 골탕을 먹어 온 것이다. 소득 수준이 1만 달러에 육박한 선진국 경제모델인 상황에서도 부동산시장의 공급제도는 반(反)소비자 시장이었다. 현대마저 무너진 이상 이를 악물로 소비자의 신뢰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시장은 되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작지만 기업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소비자를 왕으로 아는 소비자제일정신을 실천하는 업체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거품은 언젠가 빠지기 마련이다. 지난 해 왜 난개발 파문에 부동산시장이 쓰러졌는가를 따져 보자. 난개발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예상됐던 터였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이고 건설업체들은 정직하지 못했다. 입주 때 마구잡이 개발의 피해를 뻔히 알면서도 멋드러진 모델하우스로 소비자들의 눈과 마음을 속였고, 소비자들은 뒤늦게 속은 것을 알고 시장을 외면한 것일 뿐이다. 부동산 감정평가업계도 고쳐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감정평가를 의뢰한 이의 입장을 봐주는 평가사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회계감사를 제대로 해야 할 회계법인이 기업체 입장을 봐주기 위해 분식결산에 앞장서는 것이나 매 한가지 경우라는 것인데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안(內)을 보지말고 밖(外)을 보는 안목의 국제화도 절실하다. 현대건설은 늘상 국내 1위 업체에 분명했지만 세계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매출이나 규모 면에서는 세계 5~6위에 달했는지는 몰라도 기술력으로는 최고 대열에 끼지 못했다. 고부가가치 플랜트나 설계기술 능력 면에서 여전히 뒤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국내 1위'라는 간판에 지나치게 안주했던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보니 대마불사(大馬不死)의 트랩에 스스로 말려버린 것이다. 바깥의 1등을 지향하고, 이익을 기술력 배양에 쏟아 부었다면 오늘의 상황은 면했을 것이다. 부동산 업계도 마찬가지다. 올해부터 각종 선진 부동산금융기법들이 밀려 들어온다. 외환자유화의 빗장이 풀렸고, 모든 서비스나 재화의 교환도 자유로운 시장이 만들어졌다. 이럴 때 종래의 주먹구구식 부동산기법에, 부동산서비스에 안주한다면 어느 새 국내 시장의 주인은 바뀌게 될 지 모른다. 국내 부동산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집계치는 없다. 그러나 공시지가로 따진 국토 땅값 규모 등을 미뤄 볼 때 3000조 이상이 되지 않을 까 짐작할 뿐이다.(본인의 저서인 '부동산시장에는 블랙먼데이가 없다'(21세기북스 刊) 참조) 국내 증시규모가 고작 400조원 남짓하다. 비교가 되지 않은 정도로 규모가 큰 부동산시장이지만 제도적인 정비가 뒷받침되지 못하고, 투명한 룰이 정착되지 못한게 사실이기 때문에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한 채 걷돌기만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국내 부동산경기는 한차례 상승기에 접어들 소지가 다분하다. 95년 이후 멈춰서 있는 집값도 들먹거려 불안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인프라(infra)망의 구축이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 판교 신도시 불가피론에서도 알 수 있듯 수도권의 부동산시장의 수급(需給)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서울의 대단위 재건축단지들이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할 경우 서울의 전월세난(難)은 더 심화될 전망이다. 지금 어렵게 오피스텔이나 다가구, 다세대 주택으로 수요를 흡수하고 있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국부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이상 대경기상승의 다음에는 부동산시장의 대세상승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기회가 오면 잡는 것인데 투명성과 제도정비, 시장참여자들의 페어(Fair) 게임 룰(Rule)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또 놓치기가 십상이다. 현대사태는 부동산시장, 건설업계에 어려가지 교훈을 남겼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자만이 미래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