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를교와 바츨라프 광장, 비에 젖은 몰다우
박 봉 현 | 동국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
나는 흔히 말하는 그런 기행문을 쓰고 싶지는 않다. 어떤 나라의 인구가 몇 명이고 어떤 산의 높이가 얼마이며 어떻게 찾아가야 하고, 몇
년도에 나라가 세워졌는지 등의 이야기는 관광 안내 책자를 보면 훨씬 자세하고 친절하게 나와있어 내가 그런 것을 또 되짚고
상기시키는데 전혀 의미를 느끼지 않는다. 또 나로서는 이런데 대하여 충분한 지식도 없고.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호기심 때문에 길을 떠나 기도하고, 단순히 즐기거나 쉬기 위해 길을 떠나기도
한다. 내 경우 여행의 의미는 마음 속 깊은 곳에 바람처럼 머물고있는 알 수 없는 허전함("something......a little bit missing")을 채워주고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맛보는 것에 둔다.
사람의 삶은 어차피 각자가 자신이 꿈꾸는 어떤 것을 찾아 헤매는 여행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그것을 찾았는지 나는 모르며, 누가
그걸 찾았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어쩌면 그 꿈을 찾아 애쓰는 그 과정을 중요시해야 되는 것은 아닐는지......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고 누구는 말했지만 내 경우는 세상은 넓은데 안 가본 곳이 너무도 많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떠나
흘러간 궤적 위의 어느 일부 지점 밖에 나는 가보지 못했으니 어디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성격상 남들에게는
하찮은 곳에 오랜 동안 머무르기도 하고 아주 유명하다고 알려진 곳을 그냥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니 패키지 여행은 나에게 별로
의미가 없다. 여행은 맘에 맞는 친구 한 두명(한 명이 가장 좋음)과 떠나는 게 가장 홀가분하고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체코슬로바키아라고 말하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엄격히 구분되어있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또 우리는
프라하라고 발음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확실하게 프라그라고 말한다. 어쨌건 나는 프라하라고 쓰겠지만.
내가 프라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프라하가 한 때는 대표적인 동구권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상당한 영화를 누렸던 체코의 수도라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라하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저 유명한 파리나 로마 그리고 런던 같은 데보다 훨씬 개인적인 매력이
느껴졌던 곳이기도 했다.
체코에 대해, 그것도 프라하를 중심으로 보고 느꼈던 것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한 나라의 독특한 분위기는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저절로 감지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선진국일수록 모든 게 간편하고
까다롭지가 않았다. 물론 일본은 제외하고.
프라하 공항의 입국 수속은 시간도 걸리고 꽤 까다로웠다. 사람도 얼마 안되고 특별히 공항 직원과 나누는 대화도 거의 없는데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게 어쩐지 조심스럽고 엄격한 느낌을 주었다. 입국심사대의 직원들도 어쩐지 위압적이고 눈초리가 매섭다. 여권을 돌려주며
건네는 의례적인 인사조차도 매우 딱딱하고 사무적이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통제사회로 길들여져 아직도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한 느낌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다른 서구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별로 편편치가 못한 것 같다. 나라의 경제수준 만큼이나 여러 가지가 후진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북위 50도 정도의 위쪽에 위치한 때문인지 찬바람이 날 때가 아닌 데도 바람결이 서늘하다.
먼저 여행 안내소에 들렀다. 공항의 입국심사대와 구 공산체제의 통제사회만 연상하고 있어서 서비스 산업에 상당히 뒤져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돈벌이와 직결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직원들의 자연스러운 친절이 온 몸으로부터 묻어 나온다. 또
공항에는 그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지 않더라도 호텔에 관한 정보 정도는 아무나 찍어볼 수 있도록 컴퓨터 자동 출력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었다.
호텔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안내에 따라 컴퓨터의 버튼을 누르니 원하는 정보가 프린트되어 좔좔 빠져 나온다. 등급별로 순서에 따라
위치, 요금, 시설 등 필요사항과 그 호텔만의 특이한 사항이 전부 기재되어 있다.
자료에 의해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프라하성'과 '카를교' 에서 아주 가까운 호텔 중에 마음에 들만한 곳을 몇 개 골라 여행사 직원에게
보이니 그 직원은 그 호텔의 외관과 내부를 자세히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호텔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어디가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 중 한 호텔을 결정하고 여행사에서 불러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서울만큼은 복잡하지 않지만 차량도 사람도 굉장히 많다. 한 나라의
수도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동안 '프라하'에 대한 나의 선입관은 완전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며 아우슈비츠나 군수공장을 연상했던 잿빛 공장건물들에 대한 기억은 머리 속에서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넓고 숲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가 대신 자리잡았다.
몰다우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와 그 뒤 언덕빼기에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 거리거리의 오래된 건축양식 등은 파리나 런던 등 유럽의 다른
어느 유명 도시에서의 느낌보다 훨씬 강렬하다.
차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갔다. '포드 베찌'라는 이름의 이 호텔은 등급으로 보아서는 상당히 고급 호텔로 알았는데 실제로 와보니 건물도
낡았고 생각보다 작은 호텔이다. 유럽에서는 낡고 불편하더라도 전통적인 호텔이 인기도 있고 값도 비싸다고 들었는데 보기보다 값이 꽤
비싼 이 호텔도 아마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카를교로 나갔다. 돌다리의 양쪽은 30여 개의 동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다리 입구에는 청바지에 헐렁한 셔츠를 걸친 남녀
대학생이 기타에 봉고를 두드리며 체코의 전통 민요인 듯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꽤 빠른 템포의 노래인데도 쾌활하고 밝은 음색이
아니다. 카를교 위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이곳 저곳에 삼삼오오 모여 서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거나 좌판에 놓고
소품으로 파는 미술품들을 감상했다. 카를교의 가로등 불빛이 안개비에 싸여 동그랗게 가물거린다. 촉촉한 밤 공기가 상큼하다.
다리 가운데 서서 우거진 숲 사이를 폭 넓게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떠 있는 유람선을 보며 '스메타나'의 장엄한 '나의 조국'을 떠올렸다.
소리가 없는 데서도 소리를 연상케 하는 것은 음악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자연의 속삭임과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의 감정을
부드럽게 조화시켜 하나로 빚어낼 수 있는 위대한 작곡가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쎄느강, 다뉴브강, 볼가강 등 정말 아름다운 강들이 많지만 몰다우는 그런 유명한 강들과는 또 아름다움이 있다. 몰다우 강과 카를교
그리고 이를 감싸고 있는 도시의 전체적인 조화는 어떤 다른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단편적인 어떤 경치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도 많을 것이다. 일본의 하꼬네의 호수 같은 경우도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답다,
멋있다 정도였지 더 이상은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프라하의 중심 역인 흘라브니 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대륙을 연결하는 철도나 지하철이 모두 이곳을 통과하는
중요한 곳이라 미리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다. 프라하의 지하철 역도 유럽 대부분의 나라처럼 출입구의 통제가 전혀 없고 모두들 질서를
잘 지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워서 질서의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다. 우리의 지하철역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편치만은
않다. 우리의 질서의식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느낌과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훨씬 뒤쳐져 있는 이곳 체코
사람들조차 일견에 질서의식이나 공중도덕 쪽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흘라브니 역사는 굉장히 크고 넓었다. 여행안내소에서 이곳 저곳으로 가는 기차시간과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 등 좋은 정보를 얻었다.
구 시가지 광장을 중심으로 이 골목 저 골목을 생김새와 언어가 각기 다른 많은 사람들이 흘러 다닌다. 명찰을 달거나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무리들은 주로 동양인이다. 동양인 중 우리 나라 사람들을 오늘은 볼 수가 없고 주로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재잘거렸다.
유럽의 대도시를 걷다보면 이 골목 저 골목을 한가롭게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다 무엇을 해서 벌어먹고 사는지 항상 궁금했다. 공장 굴뚝
하나, 허름한 제조공장 하나 찾아볼 수 없고 카페와 레스토랑 옷가게 등만 즐비하게 늘어선 도시의 풍경을 보며 그런 식으로도 우리보다
훨씬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의 여건이 부러웠었다. 물론 외국인인 내가 보는 곳이라는 게 대부분 관광지라 그런 모습만 보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어쨌건 이곳 프라하도 다른 선진국의 도시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선진국에 와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벽보에는 '일본어 강습' 광고지가 많이 붙어있다. 많은 체코 사람들이 그만큼 일본어를 배워야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일본의
영향력이 이곳에서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국어 강습' 광고가 없음이 아쉽다. 외국에 나와서 우리 상표, 우리 글자를 보면 어쩐지 가슴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두오모 성당 앞
광장의 '삼성'광고판, 런던의 대로변 빌딩에 커다랗게 걸린 '현대' 광고판이나 이곳 도로에서 가끔씩 눈에 띄는 현대자동차를 볼 때면 고향
친구나 만난 듯이 반가웠었다. 우리 나라의 상호가 세계 곳곳에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동구 쪽은 물가가 싸다고 들었는데 호텔 숙박비는 생각보다 싸지 않고, 음식값은 말대로 싸다. 점심값으로 한 사람 당 우리 돈 4천원
정도를 지불하면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상품별로 싸고 비싼 게 우리 나라와는 아주 달라 몹시 헷갈린다.
카를교를 건너 구 시가지 광장으로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골목골목 마다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높은
쌍둥이 첨탑을 자랑하는 화려한 고딕식 틴 성당과 킨스키 궁의 자태를 감상하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무스텍' 지하철역부터
'무제움'(국립박물관) 역 쪽으로 '프라하의 봄'의 저항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바츨라프' 광장이 시원하게 툭 터져있다. 체코 역사의
심장부라는 곳이다. 나도 모르게 광주항쟁의 중심지 금남로를 떠올린다. 우리에게도 그날의 역사를 영원히 기릴 이런 광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많은 행상들이 기념품을 팔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밀려다닌다. 길가의 아무 곳에나 앉아 음료수를 마시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질서가 없어 보기 흉한 것이 아니라 분방한 자유를 느낄 수 있어 가슴이 시원하다. 멀리 무제움 역 쪽으로 끝 부분에
바츨라프 왕의 기마상이 광장을 지키고 있다.
시외버스 터미널은 플로렌스 역과 붙어있어 찾기가 쉬웠다. 이층의 여행사로 올라갔다. 온천 관광도시로 유명하다는 '카를로비 베리'에
대하여 안내를 받았다. 그 곳 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고 온천은 두 시간 간격으로 손님을 받는데 오후 두 시가 마지막 타임이니 그 전에
도착해야 한다고 했다. 온천은 참 좋은데 다른 구경거리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만한 게 없으니까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온천욕을 하고 좀
둘러본 뒤 오후에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이 좋을 거라고도 했다. 프라하에서 가는 차는 오후 네 시가 막차고 그 쪽에서 오는 차는 오후
여섯 시가 막차여서 이미 시간이 늦어있었다. 그곳엔 다음 날 가기로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
바츨라프 광장의 초입인 '무스택' 역에서 내렸다. 근처에는 체코의 명물인 크리스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잉크색, 장미색, 황금색
등으로 눈부시게 화려한 무늬를 한 크고 작은 크리스탈이 진열되어 눈길을 끈다. 항아리나 화병 전등, 여러 가지 동식물 모양 등 형태도
가지가지다. 정말 아름답고 황홀한 색깔이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형태와 색깔들이 나오는지 정말 신기하다. 거리와 사람 구경을 하다
몰다우 강변 노천 카페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시뻘겋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진홍빛 해가 화려하게 마지막 정열을
불사르며 차츰차츰 모습을 감춰가고 있다.
다음날 플로렌스 역에 도착했을 때는 열 시가 조금 못되어있었다. 버스표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열 시에 출발하는 버스 표는
이미 매진이다. 열 시 차표를 사야 '카를로 베리'에 열두 시쯤 도착할거고 그래야 온천욕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음 버스는 열두 시에
출발하니까 그곳에 두 시에 도착하면 온천욕을 못하기가 쉬웠다.
온천을 하든 못하든 카를로 베리로 가기로 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는 도심을 빠져나가 시골길로 접어든다. 도로가 아주 넓지는 않지만
차도 많지 않아 전혀 교통 혼잡 없이 잘 달린다.
버스에 탄 사람들의 부류는 아주 다양한 것 같다. 도시에 다녀가는 것 같은 시골 사람, 온천욕을 하러 관광 차 떠나는 것 같은 외지인,
고향으로 가는 듯한 학생 등이 뒤섞여있는데 빈 좌석이 없어 통로에도 사람들이 꽉꽉 차 있다.
주위에 산 하나 보이지 않는 황량한 벌판을 버스는 쏜살같이 달려간다. 가끔씩 교회의 종탑이 보이는 작은 마을들이 지나가고 중소도시로
보이는 제법 크고 오랜 건물들이 들어선 마을도 어쩌다 보인다.
'카를로.베리'에 거의 도착할 무렵 도로변에 현대 자동차의 커다란 입간판이 보여 은근히 나를 흐뭇하게 한다. 우리의 국력이 이런
곳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내 일처럼 자랑스럽다.
오래 전 먼 옛날 카를 대제가 온천을 발견한 후 그 때부터 유명해져서 관광 명소가 되었다는 이곳은 아주 조그만 마을이지만 건물들이 그
유명도와 역사에 걸맞게 고풍스럽고 화려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부랴부랴 온천욕장을 찾아갔다. 버스가 도착한 시간이 벌써 두 시가 넘어 있어서 들은 대로라면 우리는 온천욕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역시 입욕 시간은 끝나 있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번화가를 거닐다 변두리로 나가 개울가에 다다랐다.
물 위에는 백조와 오리들이 한가롭게 떠있다. 고요한 평화가 흐른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마저 숨을 죽인 듯 정적을 지키는데
조심스럽다.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카메라 렌즈의 높이를 개울물 위에 맞춘다. 자그만 오리새끼들이 호기심 어린 눈을 깜빡이며 카메라
안으로 들어온다. 짧은 오후 한나절이 너무 아쉽게 흘러간다. 시간을 붙잡아 맬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과거는 추억 속에나 살아있는 것.
오늘 오후의 이 고요한 평화도 잠시 후면 추억 속으로 밀려날 것이다. 소리도 없이 천천히 흘러가는 개울물을 바라보며 가슴 속 깊은
한구석 빈 공간의 공허한 울림을 듣는다.
프라하로 돌아와서 그날 밤에 들른 곳은 호텔 지배인이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추천해준 '재즈 바'였다. 어둠침침한 공간에 많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 음악을 전공하는 것으로 보이는 악기를 메고 온 젊은이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음악의 명인들의 거대한 흑백사진으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쎅스폰의 흐느끼는 듯한 블루스 선율이 실내를
흐르고 있다. 잠시 기다렸다가 겨우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많으면서도 수선스럽지 않고 저마다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도 소란스럽지 않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참 좋다. 속삭이는 듯한 흑인 여가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유난히 쓸쓸하게
가슴속에 파고든다. 담배연기 속에 여러 국적의 언어들이 흘러 다닌다. 프라하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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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봉현(동국감정평가법인) 평가사는 기행문 '켈빈과 나, 15일간의 유럽여행', 장편소설 '카투사'(상중하 3권), '야곱의 사다리'
'몬타나' '흑묘기전', 단편소설 '신뢰' '바람이 머무는 곳', '갈증', '해빙', '가을타는 여자'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특히 단편소설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월간 문예지 「문학세계」(2000. 5)에 신인문학상에 당선,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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