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열린

마당

친 구

조 경 숙
나라감정평가법인 사원

나는 가끔 비슷한 여행지였음에도 특별히 어떤 곳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함께한 이에 대한 내 느낌이 얼마나 괜찮은가 하는 것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날의 새벽시장이 좋았다 고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그 친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별일 아닌것에 자꾸 우울해 진다고 하자 친구 는 대뜸, 내게 새벽시장 가지않을래? 하고 물어왔다. 특별히 사야할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 벽에 다닐 수 있다는 것에 왠지 마음이 끌렸다. 지하철을 타고 그곳에 가는 동안도 친구는 다른 이 들과 달리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네가 말하고 싶을 때, 그때하면 돼” 라고 했을뿐. 향기가 있는 친구라 느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새벽1시가 조금 못된 시각이었다. 평소 같으면 한참 단잠에 빠져있을 그 시각. 어깨가 부딪히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만큼 좁은 시장통엔 우리가 시간을 착각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엔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들은 때로 가격을 깍느라 미숙한 우리말로 상점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고,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여러 가지 풍경들이 있었다. 이미 필요한 물건을 다 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쇼핑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둘, 셋씩 짝을 이뤄 투명한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였다. 또 그런가하면 손님 하나를 두고 양쪽에서 서로 내손님이니 네손님이니 하며 거친 말다툼을 하는 모습도 보였고, 길게 늘어선 리어커에는 입맛 을 당기는 먹거리들이 손님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친구와 나는 청바지 좌판앞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정품가격보다 절반이나 저렴한 가격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나는 거기서 값을 더 깎아내느라 상점 주인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였다. 새벽시장에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 는 것은 역시 물건값을 깎는 재미가 첫째일 것이다. 급기야 아저씨는 “참! 요새 아가씨들 같지 않게 되게 끈질기네. 에이, 기분이다” 하며 2천원을 내어 주셨다. 그곳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잔뜩 풀이 죽어 있던 나는 값을 흥정하는 동안 어느새 기운이 났다. 나는 곁에선 친구에게 “진희야! 우리 이 2천원으로 뭐, 맛있는거 한잔(?!)할까?” 했고 그녀의 O.K싸인으로 즐비한 포장마차 중 한곳을 택했 다. 새벽시장에 오는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며 “무슨 사람들이 잠두 안자고 이렇게 많이 다닐까?”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친구는 맞장 구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이젠 좀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니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너 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말야” 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알코올 때문이었 을까? 그녀의 발그레한 양볼이 더 없이 예뻐보였던 것은.
새벽 3시쯤 우리는 우동국물을 끝으로 그곳 을 빠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난 설풋 잠이 들었다. 내 고개가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 었는지 친구는 가만히 자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게 했다.
나는 눈을 감은채 친구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행복통장이라는 것이 있었음 좋겠어. 지금처럼 많이 행복할 때 차곡차곡 저축해 두었다가, 조금 덜 행복할 때 필요한 만큼만 찾아서 부족한 부분을 메울수 있게…".
나는 눈을 뜨고 확인하진 않았지만 친구의 표정을 짐작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