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動産, 특히 土地에 묻어놓으면 도깨비도 장난을 못친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지에 대한 애착이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것은 어쩌면 먼 옛날부터 끊임없이 당해왔던 外侵 속에서 살아나오면서 우리의 것, 특히 우리의 모든 생활의 根幹인 토지 만큼은 지켜야한다는 强迫觀念으로부터 연유되는 역사적 산물인 것 같기도하고, 현실적으로 인구는 많은데 가용 토지는 적어서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富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실지로 토지가 富 자체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토지에 대한 執着이 남다른 것 만은 분명하다.
나 또한 토종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논리적인 이해를 따질 것도 없이 다른 무엇보다도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마음 든든함을 맛보는 속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 내가 '부동산 로드쇼'라는 용어를 실제로 접했을 때 무척 낯설고 추상적인 느낌이었다. 부동산 로드쇼가 전에 일본에서도 열렸던 적이 있었고 지상에도 比重있게 보도 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바는 아니나 그 때는 그 의미를 특별하게 吟味해보지 않았고 별 생각없이 지나쳤었는데 이번의 경우는 나 자신이 그 행사에 직접 참여하게 되고 보니 그 의미를 다시 깊이있게 새겨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점잖게 말해서, 해외 투자가들에게 우리들의 국내 부동산을 소개하여 投資를 誘致한다는 것인데 그것 은 한마디로 외국인들에게 우리 땅을 팔아먹겠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런 생각은 나에게 엄청난 쇼크를 주었다. 나라를 팔아먹겠다고 나서는 매국노라도 된 듯한 묘한 기분을 정리하는데 만도 한참이 걸렸다. 결국 모든 사회체제가 世界化, 國際化 되어가는 속에서 내 것 만을 움켜쥐고 있으려고 고집하는 것은 孤立, 閉鎖를 의미하고 더 이상의 成長, 發展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쪽으로 이해하기로 했 다. 그러나 그보다는 '외국인에게 우리 땅을 판다고 그들이 그것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며 또 가져갈 수 도 없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실제로는 더욱 마음 든든하게 한지도 모른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여행, 그것도 해외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어서 평소에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대감으로 은근한 가슴 설렘이 있어야 마땅했지만 이번 경우는 전혀 달랐다. 국제화, 세계화로의 발돋움을 위한 感覺을 익히고, 가깝든 멀든 장래에 우리 법인의 이익이 될 만한 어떤 것을 건져와야 한다는 使命感 같은 것에 짓눌려 즐거운 기분 같은 것은 거의 느껴볼 수 없었고 부담스럽기만 했다.
먼저 해외 시장에 내놓을 우리 '동국'의 상품을 준비해야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어차피 具體的인 상품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머리속만 복잡하고 마음만 심난할 뿐 뭘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해외투자자들을 위해 우리 평가사들의 役割은 다른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 못지 않게 중요할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情報가 부족한 해외투자자들이 투자하려는 부동산의 실질적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把握해서 투자에 따른 意思決定을 할 것인가? 그것은 전문가인 우리 평가사들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봐도 過言이 아닐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나가다보니 우리 평가사들의 역할을 충분히 알릴 수 있고 우리 '동국'의 능력을 최대한 浮刻시킬 수 있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결국은 우리 '동국'의 업무와 조직을 간단히 소개하고 매 장마다 '동국이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다'는 문구를 커다랗게 집어넣은 세 쪽짜리 팜플렛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드디어 출발의 날이 왔고 우리는 아침 일찍 '매경(매일경제신문)T.V'의 깃발 아래 공항에 집결했다. 이번 행사의 참석자들 단체를 통칭해서 '해외 투자 유치단'이라고 불렀으니 우리는 말하자면 그 단원인 셈이었다. 평가사는 협회의 김상윤 기획이사와 나라의 정균 평가사, 제일의 최호근, 김명철 평가사가 참석하게 되어 당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모두해서 다섯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단장 이윤수 국회의원이 매경 T.V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인터뷰를 마치자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보궐 선거 유세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이 의원이 자당 선거 운동의 핵심 참모 역할을 맡고 있다면서도 이번 행사에 단장으로 참석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가 국가적으로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럽까지도 7-8시간이면 가는데, 지도를 보면 바로 코앞에 위치해 있는 홍콩까지 네시간 씩이나 걸리고, 시차도 한 시간이 난다는데 의아한 생각을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낸 끝에 우리는 홍콩에 도착했다. 영국령으로부터 풀려나 중국 본토화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성룡과 주윤발의 깡패영화가 얼른 聯想되고 '애수'에서 '제니퍼 존스'가 사랑을 속삭이던 언덕 장면이 떠오르는 이곳 홍콩에 우리는 도착한 것이다. 우뚝우뚝 솟아있는 빌딩숲과 커다란 배들, 적재된 수많은 콘테이너 박스들이 국제자유무역항이라는 이 름에 걸맞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관광이나 풍경으로서는 전혀 새롭거나 멋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어마어마하게 큰 規模를 자랑하는 항구들이 수없이 이어진 그리스의 아테네와 낭만적인 情趣를 한껏 내뿜는 크로아티아의 스플릿 항,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베스트 셀러 '노르웨이의 숲' 을 썼다던 폭풍의 섬 미코노 항을 먼저 봐버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浪漫을 찾는 그런 바람같은 여행도 아니고 한가한 시간 죽이기 여행도 아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우중충한 날씨 속에 별 흥미를 끌지 못하는 간단한 시내 관광이 이어진 후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방 배정이 끝나 각자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협회 김상윤 이사와 한 방을 쓰게 되었고 이후 여행이 끝날 때 까지 계속 그와 함께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나는 룸메이트나 파트너라는 관계의 因緣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그것은 어렸을 때는 가족들과, 성인이 되어서는 부부간에 한 방을 쓰게 되는 외에 남과 한 방을 쓰게 되는 일이 그리 흔치 않다는 이유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의 활달하고 거침없는 태도나 행동이 明快해서 시원했고, 多血質인 것 같으면서면서도 유머를 유머로 매끄럽게 주고 받을줄 아는 화통한 성격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나보다도 훨씬 더 국제화, 세계화에 切實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그에 따른 유창한 영어 驅使의 필요성을 누누히 강조하곤 했다. 우리는 업계의 懸案들, 법인들 간의 분위기 등을 주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잿빛 어스름 속에 다음 날이 밝아왔다. 메인 이벤트는 오후에 있었다. 그 시간을 위해 '매경T.V'와 스폰서인 국제적 부동산 컨설팅회사 '바이거스 코리아(VIGERS KOREA)' 그리고 일부 단원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홍콩에서 최상급으로 꼽히는 '콘래드 인터네셔널(CONRAD INTERNATIONAL)'이고 행사는 지하 일층에서 있었다.
행사장 입구에 서너명의 안내자가 配置되고 안 쪽 벽면을 따라 책상들을 가지런히 이어 붙여 우리들의 자리가 마련 되었다. 부산광역시와 수원시를 비롯한 몇몇 지방자치단체, 경기도 지방공사, 성업공사 등 정부투자기관을 비롯하여 각종 부동산 관련 協會와 컨설팅회사, (주)대우 등 企業體들이 그들의 所屬을 밝힌 팻말 아래 일렬로 줄을 이어 명함과 홍보물들을 올려놓고 손님들을 맞을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 평가사들은 좌석 열의 후미 쯤에 법인별로 자리가 배정 되었다. 앞쪽으로는 스크린을 중심으로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설치되고 중앙으로는 찾아온 손님들을 위하여 메모지와 필기구가 놓인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다양한 인종의 외국 손님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입구에서부터 들어오면서 우리들과 좌석 배치 순서대로 인사를 나누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리허설을 가지면서 주최측이 提案한 것은 찾아오는 손님들과 그냥 單純히 인사만 나눌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서 弘報도 하고 사업과 관련해서 대화가 잘 진행 되면 그것을 구체화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는 것이었다.
나 또한 '동국인'의 한 사람으로 참석한 만큼 우리 '동국'을 위해, 평가사로서 열심히 뛸 覺悟가 되어있었다. 다양한 손님들 가운데는 주로 중국계가 많았고 백인들의 숫자도 꽤 되었는데 여성들의 숫자도 상당한 것이 특기할 만 했다. 나는 혼자 마음 속으로 계획한 바 대로 아무한테나 다짜고짜 접근하여 말을 걸어 인사를 나누고 우리 법인의 홍보 팜플렛을 주며 우리의 업무 내용과 組織 등을 소개할 생각이었다. 손님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나는 적당한 손님들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명함을 끼운 홍보물을 내주며
"저는 감정평가사입니다. 당신이 우리나라에 뭔가 투자를 하려고할 때 우리 '동국감정평가법인'이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겁니다."
무덤덤한 표정을 보이며 儀禮的으로
"아, 그래요?"
한참 머뭇거리다가 뭔가 할 말을 찾은 듯 말을 잇는다.
"당신네 회사는 주로 평가(우리 고유의 appraise 보다는 단어의 뉘앙스가 調査, 測量의 의미로 좁혀진 survey라는 용어를 썼음) 중심의 업무를 합니까?"
"꼭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다양한 컨설팅 업무도 하죠."
"업무 提携關係에 있는국제적인 컨설팅 회사가 있나요?"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그럴 계획입니다."
"오 케이, 어떻든..."
기분 나쁘지 않을 만 하게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나는 이미 대화가 더 이상 계속 되기는 글렀음을 느끼며 물러설 수 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이야기 즐거웠어요."
"Bye."
잠시 후, 또 다른 사람과.
인사말이 끝나고.
"저는 감정평가가입니다. 감정평가에 흥미가 있으신가요?"
웃는 낯을 보이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표정이다. 나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차마 그런 말을 못하고 있음을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냥 물러서는 것은 더욱 쪽 팔리는 일이다.
"우리나라에 뭔가 투자를 하려면 감정평가가 필요할 텐데요. 그 때 우리 '동국'이 당신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는 새삼스럽게 생각난 듯
"당신네 회사는 미국식 평가 방식에 의해 보고서를 만드나요?"
수익환원법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대답이 약간 窮塞해진다.
"그렇게 만들 수도 있지요."
"한국에서는 평가사들이 표준지 공시지가만을 기준으로 토지가격을 결정한다고 들었는데..."
대답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런 내용까지 알고 있다는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평가 目的에 따라서 다른 方式으로 가격 결정을 할 수도 있지요."
홍보물을 다시 만지작거리며 관심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여러가지로 고마워요."
"저도 고마워요. 언제라도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여러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보지만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된다. 앞에서 보인 대화는 그래도 그 중 이야기가 꽤 진전 된 경우를 예로 든 것이다. 손님 중 대부분이, 아니 거의 전부가 감정평가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떤 경우에는 홍보물을 주며 말을 걸면 여기 저기서 받은 한아름의 홍보물들을 무겁다는 듯 들어올려보이며 더 이상은 받을 수가 없다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서 말을 붙이기조차 힘들었다. 또 어떤 경우, 자기는 무슨 행사를 하고있나 궁금해서 그냥 둘러보러 온 사람이라면서 더 이상 말을 붙일까봐 허둥지둥 꽁무니를 뺐다.
지하철 입구에서 때국물이 흐르는 하얀 가운을 걸친 아줌마들이 애써 피해 달아나려고하는 행인들의 팔을 붙들고 헌혈을 하라고 달겨드는 광경이 왜 그 순간에 떠오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평가사들의 水準이 국제 시장에서 이마만큼 밖에 인정을 못받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단편적인 대화 내용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결정한 평가가격에 대해 관심조차 없을 정도로 信賴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혹시 관심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미국식 평가보고서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부동산에 관한 한 최고의 專門知識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받고 있고 또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있는 우리 평가사들이 왜 그들로부터 이런 초라한 待接을 받고 있는가? 투자를 위해서는 실질가치를 판단해야하는 평가 과정이 필수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그들이 왜 이렇게 이야기조차 듣고싶어하지 않고 관심없이 外面까지 하는 것일까? 悲慘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면 그들이 평가 쪽에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긴 있었다. 자신의 상품을 직접 선보이는 기업체나 투자 업무를 대행하는 컨설팅 회사에서 상품 소개를 할 때 평가와 관련된 부분으로는 단지 예상 평가수수료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가 수수료는 원가분석 사항 중 하나의 費用 요소로만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투자자들에게 투자물에 대한 보유기간 동안의 연간 이익률을 제시하고 투자자는 그 이익률 만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외국의 투자자들의 사고가 투자물을 保有함으로써 보유 기간 동안 가격 上昇으로 얻을지도 모르는 不透明한 이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평가가격이 얼마냐 하는 것을 자기들이 직접 알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러길래 그들이 평가가격에 관심을 가져봤자 수익환원법에 의한 가격 정도인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들의 평가가격이 투자를 위한 의사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직접 介入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만 이런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투자 대상 물건을 보유하여 직접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외관상 꾀죄죄하고 볼품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막상 행사가 시작되니 물 만난 고기처럼 생기있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자신의 상품을 선전하고 있었다.
북적거리던 시간이 흘러가고 새로운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지자 모두들 자리에 앉았고 공식 행사로 들어갔다. 단장과 홍콩 주재 영사관의 인사말에 이어 홍보영화가 상영 되었다. 우리는 경제 위기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고 국내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開放되었으며 여러 가지 투자환경여건이 좋아져서 지금이 투자를 하는데 가장 좋은 시점이라는 내용의 영화다. 간단하지만 짜임새있게 잘 만들어져서 영화를 보는 동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어떤 自負心 같은 것이 가슴 속에서 뭉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자 스폰서인 바이거스 코리아에서 자기들이 개인적으로 준비한 슬라이드 필름을 가지고 설명회(presentation)를 시작했다. 국내 부동산을 地域別 種類別로 구분해서 현재의 價格水準과 賃貸水準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고 IMF 구제금융체제로 접어들기 이전과 그 이후 지금까지의 부동산 시장의 변화와 가격 변동 推移를 낱낱이 비교하고 앞으로의 展望 까지도 깔끔하게 分析 整理한 후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투자 적기라는 결론을 導出해 내고 있었다.
그들의 조사 분석 내용이 정확한지 어떤지, 또 그 자료를 바탕으로 이끌어낸 결론이 신뢰도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차치하고 별로 큰 규모도 아닌 하나의 개인 회사에서 그렇게 緻密하게 여러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분석 정리해서 외국인투자자들의 입맛에 똑 떨어지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게 놀라울 뿐이었다.
부동산시장과 가격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집단이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尨大한 자료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우리 평가사 집단이 그런 식으로 준비했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우리의 豊富한 능력도 인정 받고 깊은 신뢰감도 줄 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준비된 자료가 너무도 貧弱하고 皮相的이어서 어디다 내 보이기조차도 창피할 정도인 우리네 준비물들을 바라보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한숨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행사가 세부적으로 진행될수록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순서대로 업체별 개별 presentation으로 들어가자 행사에 참가한 업체들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들의 상품에 대하여 컴퓨터로 슬라이드 화면에 준비된 자료들을 비쳐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유창한 영어로 열심히 설명들을 했다. 또 다시 뭔가 뒤쳐진 듯한 느낌, 疎外感 같은 것을 깊이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현상에 만족하고 安易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올 수 있었던 우리들의 풍토가 이런 국제화, 세계화의 물결 앞에서 맥을 못추고 기가 죽어 주눅이 들어있는 모습을 지금 보고있는 것이다. 뭔가 새롭게 시작되어야 했다. 국제적인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감각도 더 익히고 영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쇼크와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행사는 끝났다.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 행사장은 쇼가 끝난 후의 객석처럼 쓸쓸한 靜寂이 감돌았다.
晩餐場에서는 식사와 함께 오늘 있었던 행사에 대한 성과 분석과 진행상의 문제점, 개선방안에 대하여 간단한 토론과 반성이 있었다. 손님들을 맞는데 너무 散漫했던 것 같다는 중평과 각 업체별 개별 설명회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순서가 뒤에 배정된 업체의 경우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다음 싱가폴 행사 때는 그 점이 改善되어야 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오늘 행사에서 몇몇 업체는 거의 계약 직전까지 진전되는 可視的 성과를 얻어냈다는 보고와 함께 그들이 앞으로 나가 오늘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발표하기도 했다.

새벽같이 피곤한 몸을 일으켜 준비를 서둘러 마친 후 비행장으로 향했고 싱가폴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쪽으로 서너 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싱가폴은 비행장에서부터 가로에 야자수와 꽃들이 어우러지며 남국의 情趣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비슷한 열대지방이지만 괌처럼 습기가 많아 끈적거리지는 않아 그렇게 심하게 덥다는 느낌은 없었다.
담배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면 꽤 많은 벌금을 물어야하고 껌을 씹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껌의 제조도 수입도 없는 이상한 나라, 태형을 직접 집행하고 일정량 이상의 마약 소지자를 곧바로 사형에 처하는 嚴格한 나라라는 사전 지식 때문에 담배를 어디서 피워야할지, 어떤 행동이 혹시라도 공중질서에 違反되지는 않는지에 대해 도착하자마자 부터 신경이 쓰였다.
외관 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철저히 깨끗한 나라라는 이미지 때문에 기대가 커서였던지 나로서는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기대에 못미쳤다. 이탈리아의 피렌체나 밀라노, 스위스의 샤모니, 파리나 런던 시내에서는 담배 꽁초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차가 지나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아무데서고 길을 건너지만 이곳 싱가폴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질서가 있었던 것 같다. 統制에 의해 지켜지는 깔끔함 보다는 自由奔放한 가운데서도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淸潔과 秩序가 훨씬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중심가인 오차드 거리는 노상 카페나 쇼핑몰 등이 들어선 모양이나 오가는 행인들의 활기차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가 유럽의 어는 대도시에 와 있는 것 같다는 錯覺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홍콩에서처럼 주최측이 준비에 열중인 동안 나머지 인원들은 간단한 시내 관광에 들어갔고 저녁 식사 는 대사관저에서 있었다. 삼십여명이나 되는 우리들을 초대한 만찬을 위해 대사 사모님이 손수 준비했 다는 요리들은 푸짐했고 精誠이 깃들여져서인지 맛갈스러웠다. 집을 떠나온지 불과 며칠 밖에 되지 않 았는데도 제맛이 나는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특별히 입맛을 돋궈주었다.
디저트 시간에 우연히 정기옥 대사가 옆자리에 앉게 되어 꽤 긴 시간을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경제 위기를 맞은 후 약간은 沈滯 局面을 벗어나고 있는 듯한 우리 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과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대하여 물었다. 그는 정부 관료로서가 아닌, 외국에 살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견해라는 점을 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선은 상당히 好意的이며 경제 위기를 성공적으로 克服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장 큰 이유가 금모으기 운동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의 단합된 底力과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 개방화에 대한 강력한 意志, 민주화에 대한 熱情으로 오랜 옛날부터 쌓아온 그의 명성에서 비롯되는 신뢰 때문이라고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모으기에 대하여 외국인들은 우리 국민들이 나라를 위하여 금을 거저 내놓은 것으로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그는 기분좋게 웃었다. 투자 환경과 관련해서 그는 지금 그나마 좋아지고 있는 호의적인 시선이 구조 조정에 따른 고용불안과 실업문제, 노사분규 등으로 이어지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表明하기도 했다. 화염병, 장갑차, 핼맷을 쓴 경찰들의 모습이 T.V화면에 비치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급속히 冷却되어 투자 측면에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후텁지근한 날씨지만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흥미있었다. 그 동안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안면을 넓힌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의 행사는 홍콩에서의 문제점들을 개선해서 좀 더 개방적으로 좌석 배치가 되었고 presentation 시간의 배정 등이 훨씬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 전 번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고 단장과 대사의 인사말과 홍보 영화의 상영으로 공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홍콩 때 보다 손님은 더 적었다. 뭔가를 직접 건져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나의 개인적 열정은 어느덧 사그러든지 오래여서 순전히 傍觀者的인 입장에서 행사장 분위기의 흐름과 많은 사람들의 행태를 면밀하게 觀察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는 팔아야할 구체적인 물건도 없고 상품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서비스는 이미 상품가치가 없는 것으로 증명된 마당에 애써 허둥대는 것은 꼴만 사납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곳 저곳 설명회장을 기웃거리는 가운데 행사는 끝났다. 이번 행사가 그럭저럭 성공적이었음을 만찬석상에서 단장의 최종 정리 인사말로 알았고 공식행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행사를 마친 다음 있은 야간 시내 관광이 끝나고 자정이 가까워왔을 때에야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룸메이트 김상윤 이사는 관광 때 나와 함께 움직이질 않았었는데 아직 호텔에 돌아오질 않았다. 뭔가 허전하고 아쉬운 기분으로 홀로 거리로 나섰다. 서양인과 동양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거리에 물결치고, 주말이라 그런지 아직 초저녁 같은 들뜬 분위기가 거리를 감싸고 있었지만 별로 큰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카를교와 바츨라프 광장을 중심으로 낭만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프라하의 거리 풍경과 아테네 뒷골목의 훈훈한 카페 풍경 위에다 이곳 오차드의 거리를 덧 입힌다는 것이 나에게는 不可能했다. 여러 가지 생각에 젖어 씁쓸한 기분으로 한참 동안을 거리를 헤매다 방으로 돌아왔다. 김상윤 이사도 그 때는 이미 방에 돌아와 있었다. 이번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개인적 身邊 雜談으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늦은 시간이지만 평가사들끼리 여행의 마지막 밤을 위한 쫑파티라도 갖자는데 의견이 合致되 어 각 방으로 전화 연락을 했다. 처음에는 바깥으로 나가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었 지만 이미 새벽 한 시가 가까운 시각이라 그 생각은 접어졌고 그냥 방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는 걸로 대신하게 되었다.
평가업무의 국제화, 세계화와 관련하여 우리 평가의 국제적 信賴度 提高 문제, 영어 공부의 필요성 및 수익환원법의 시행 등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의견들을 주고 받던 주제는 업계의 懸案 문제인 법인의 構圖 改編과 공시지가의 평가에 대한 외부의 일부 批判的 시각 등에 대한 내용으로 옮겨지면서 열띤 토론으로 번져갔다. 단 다섯 명의 평가사가 모여서 나누는 대화인데도 세부적인 의견들은 多樣했고 뚜렷하게 주장하는 각자의 의견들은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었다. 쉽게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다소 激昻된 분위기 속에서 두 시간 여의 열띤 토론이 계속된 끝에 결국은 몇 가닥의 의견 調律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평가사들의 중의라고 판단하여 협회에서도 그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는 내용 쪽으로 였다.
항상 생각해온 바지만 어떤 집단 내에서 하나의 意思決定이 이루어지면 개인의 의사가 그와는 좀 다르더라도 그 결정에 따르고 힘을 보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전 까지는 자신의 비판적 의견을 强力하게 주장할 수 있고 또 그 집단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만 이미 결정되고 난 후에는 묵묵히 따르는 것이 집단에 利益이 되고 결국은 그 집단에 소속된 개인에게도 有益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쓴 커피로 목을 축여가며 세시 까지 벌인 마라톤식 토론으로 몸은 피곤해서 파김치처럼 늘어졌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해 필요했었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기분좋게 이야기를 마쳤다.
잠시 후에는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우리도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무척 길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되는 빠듯한 일정으로 몸도 피곤했지만 자극을 받아 날카로와진 머리속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여 마음은 더 피곤했다.
우리 법인, 나아가 협회 차원에서도 우리 평가업무의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해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나 자신도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더 열심히 실력을 쌓아나가야 되겠다는 決意를 다지는 동안 정신은 점점 또렷해져가기만 했다. 커튼 사이로 열대의 부풀은 새벽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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