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5일간('99. 4. 6∼4. 10) 개최되는 ARES(미국부동산학회, American Real Estate Society) 세미나 참석이라는, 언뜻 생각하면 가슴 들뜨는 첫 해외 여행이었다. 그런데, 동행하게 된 새한감정평가법인의 조덕근 평가사와 업계의 어려운 여건에서 세미나에 파견하게 된 배경을 논의하면서 또한 주변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국가예산을 절감하고 감정평가업 분야에 시장논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듣기에 생소한 외국계 부동산회사들이 한국 부동산업계의 우수한 엘리트라고 자부해 온 평가사를 우스운 집단으로 취급해 위축된 상태였다
외환유동성 위기로 인한 구제금융체제하에서 외국자본의 국내투자를 위해 정부 및 대기업을 상대로 하여 자본을 투자하니 마니 하며 신문방송에 오르내리던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국내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했다. 그들이 투자를 위해 국내의 평가자료를 요구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우리가 제공하는 부동산정보의 값을 흥정하지는 못했다.
MBS, REITs, 자산유동화 등 논의가 분분한 데 이것이 금융권 이야기인지, 부동산쪽 이야기인지 구 분도 잘 안된다. 평가사와 연결이 되긴 될텐데 어떻게 연결되는지 쉽게 정리가 되지않고 이런 저런 말 만 무성하다.

한국감정평가협회 국제컨설팅위원회에서는 빠르게 진행되는 평가업계의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국제협력관계를 확대하는 일환으로 ARES(American Real Estate Society)에 새한감정평가법인의 조덕근 평가사와 필자를 참석시켰다. ARES는 미국과 전세계의 부동산관련 비즈니스와 학계의 전문가 또는 이들 단체에 의해 결성되어 정보교환, 조사연구, 교육을 수행하는 단체이다.
이 단체에서는 매년 부동산업 및 학계의 각 분야별로 관심이 집중되는 주제에 대하여 사업적으로 성 공했거나 진행중인 것 또는 학계에서 연구된 사항들에 대하여 토론하는 기회를 갖는다. 금년 정기세 미나는 미국남부의 플로리다주 템파에서 개최되었다.
미국을 향하며 이런 저런 생각으로 피곤한 가운데 조덕근 평가사와 필자는 템파에 이르렀다. 큰 도 화지에 누군가 줄자로 선을 그어 놓고 크레파스로 색칠을 해 놓은 듯한 정연한 소도시가 비행기의 좁 은 창을 통하여 시야로 들어왔다.
반듯한 도로, 구획된 토지, 가로수 및 정원수, 다운타운의 고층빌딩 등 이러한 부동산을 다루는 미국 의 전문가들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우리가 겪고 있는 변 화의 소용돌이를 이해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ARES의 정기세미나는 호텔 2층에 있는 5개의 소회의실에서 각 분과별로 개최되었다. 4月 7日부터 4月10日까지 4일간 오전2회, 오후 1회 각 2시간씩 주제발표자의 발표후 질문과 답변 의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다. 필자의 서투른 영어 실력으로 토론내용을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 다. 토론회 직전에 배포하는 소논문을 미리 검토하고, 토론회 중에 나오는 친숙한 부동산 용 어를 연결시켜 개략적인 토론회의 요지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주제발표자는 크게 두 부류인데 대학에서 도시경제학, 도시계획학, 재무관리 등을 전공한 교수들과 다른 하나는 부동산 투자, 관리, 개발회사 등에서 경험을 쌓은 실무자로 구분된다.
대학의 교수들은 각 분야 실무가들이 소홀하기 쉬운 경험적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계량화하여, 각자의 전공분야에서의 이론화를 위해 검증을 받으려는 듯 했다. 조사과정에서 정리했던 각종 자료에 대한 요구에 대하여 즉석에서 나누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실무가들은 자기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개발 컨셉이 정반대인 질문자의 까다로운 질문에 답하거나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부동산 평가나 컨설 팅 관련 자료를 쉽게 구하지 못해 결국 개별적으로 반복하는 관행과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평가업계도 분야가 다양한 만큼 각 분야별로 평가사례나 정보를 공유하고 실무적인 경험들이 이론화 되는 연례행사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세미나에서 취급된 내용은 마지막 부분에 정리 하였으며 관련 소논문은 협회 자료실에 원 본이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조덕근 평가사와 필자가 국제적 망신을 무릅쓰고 5 개의 세미나실을 오가며 수집해온 자료이므로 많은 사람이 이용했으면 한다.
다만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은 분석도구나 이론적 틀이 도시 경제학, 재무관리 등 자신의 전 공분야에서 사용하는 것을 직접 적용했기 때문에 관련 전공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하 는 어려움이 있다. 실무가의 발표는 미국의 각주, 남미, 호주 등 구체적 지역에서의 사례이므 로 실무 관행과 지역에 대하여 낯선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결론 부분이나 실 증적 자료는 도움이 될 것이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참석자와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특히 조덕근 평가사의 적극적인 사교영어와 열성 덕분으로 미국의 평가업과 부동산업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Cleveland State University의 도시경제학 교수와의 대화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 는 우선 한국 감정평가사가 미국에서 개최되는 학술적 성격의 세미나에 참석한 사실에 대하 여 의아하게 생각했고 한국에서의 평가사의 지위와 소득수준에 대하여 놀라는 듯했다.
미국에서는 각종 부동산 거래정보, 수익정보 등이 상업적 목적이나 연구집단에 의해 체계적 으로 수집되고 유통된다고 한다. 또한 중개제도 및 정보화의 발달로 고전적 의미의 감정평가 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평가사에 대해 주택거래시에 저당 대출에 필요한 금융관행상의 서류(감정평가서)를 발급해주는 업자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도 지역의 중개사를 상대로 업무 유치를 위해 중개사무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감정평가 자체로서는 부가가치가 높지 않고, 부동산의 각종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부동산의 개발, 금융, 투자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동산의 분석가로서 활 동할 때 부가가치가 높다고 한다.

5일간 세미나에 참석해서 출발했을 때 염두해 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는 힘겨운 것이고 오히려 해결해야 할 숙제들만 떠안고 온 것 같다. 감정평가업을 지탱해온 법과 제도의 변화가 예상되고, 평가업을 둘러싼 내외적 환경이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화'하면 '아! 영어를 배워야 겠구나!', '정보화'하면 '아!컴퓨터를 배워야 하는구 나!', MBS 또는 Reits하면 '아! 부동산 Financing을 배워야 하는데‥‥', 하는 식의 반응을 보 인다. 그런데 시간이 없고 정신없이 바쁜데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곤 한다.
하지만 필자는 감정평가업계의 산적한 과제는 영어 몇마디와 컴퓨터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부동산업 - 구체적으로 부동산의 공적·사적 경영관리, 부동산 투자, 부동산 개발, 부동산 금융 - 이 진행되는 업무흐름(system)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러한 활동 에 우리의 평가정보가 의사결정에 필수불가결 하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 각한다.
우리는 한국의 부동산 Local 정보를 국내의 어느 조직보다 체계적이고 전체적으로 보유하 고 있는 우수한 전문가조직이다. 이러한 정보를 요구하는 측이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일 수 도 있고, 이러한 정보가 감정평가서가 아닌 컴퓨터의 지원을 받는 그래프나 다양한 형태의 숫 자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막연한 '준비론'을 주장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처 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최근 평가업계의 상황에서 능력이 있는 평가사의 노력을 바탕으로 전문적 역량을 공동으로 키워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제공하는 평가정보의 필요성과 우리의 전문역량이 사회적으로 승인되면 개별적인 법인이나 평가사의 이익도 증가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협회는 시대흐름에 맡게 평가사에게 각종의 전문교육을 제공하여야 한다.
또한 역량있는 젊은 평가사가 평가업계에 진입하는 것을 걱정하면서 수습을 마치고, 평가 업계에 진입한 후 냉소적 경쟁자로 돌변하는 악순환도 극복하여야 한다. 이들이 업계 진입을 걱정하지 않고 수습기간 동안 국제화 및 정보화된 환경에서 평가업의 동량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젊은 평가사의 평가업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능력 발휘는 평가업계로 환원되 어 전체적으로 평가 업계의 이익이 커질 것이고 개별적인 이익도 증대될 것이다.
끝으로 공시지가제도가 변화될지도 모른다는 심란한 이야기가 돌고 있는 가운데, 전국 각 지방의 면사무소 숙직실과 썰렁한 3층 회의실에서 짧은 個別지가 검증기간 동안 지가도면과 산정조서와 씨름하며 고생하신 회원들에게, 조덕근 평가사와 필자는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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