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 「일의 기쁨과 슬픔」 , 알랭 드 보통 -
“형님, 협회에서 감정평가 경력증명서를 발급받는데 우리가 벌써 17년이나 이 일을 했다는 거야. 정말 이렇게나 많이 시간이 지났네요.”
“그래. 2004년이지? 협회 3층에서 연수받을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었네.”
어제 다른 회사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어느새 돌아보니 정년퇴임의 자리에 와 있다는 선배들의 말을 무심코 흘려보냈는데 뒤돌아보니 정말 맞는 말이더라고요. 참 시간이 빨리 지나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숱한 현장에서 만났던 물건들과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기억에 남는 물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공간, 소중한 인연으로 남은 사람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감사한 시간, 불쾌한 순간들, 다가서게 하는 말들과 물리치게 하는 말들과 함께였습니다. 감정평가 현장에서 만난 물건과 사람, 시간과 말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지금의 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일하며 슬픔보다는 기쁨을 보려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설정하고 도달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늘 부족했습니다.
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종로4가 세운상가를 다녀왔습니다.
<다시세운광장> 앞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죠.
“이곳에 원래 어마어마하게 큰 상가와 아파트가 있었어. 아빠가 너희들 태어나기 전에 이 건물 구석구석을 돌며 일을 했거든.
서현이도 태어나기 전에 말이야. 재현이 네가 서 있는 곳이 세계에서 정말 유명한 곳이었어. 미국에 우주 비행선을 만드는 NASA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도 찾아와서 우주 비행선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곳이야.”
“에이. 거짓말. 말도 안 돼. 미국에서 여길 왜 와. 여기 공원이고 저기 로봇인 세봇 밖에 없는데 뭐”
아이들은 아빠 말을 믿지 않네요. 2008년 서울시는 종묘부터 남산까지 세운상가를 허물고 공원을 조성해 녹지 축으로 연결하는 남북 녹지 축 조성 1단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부터 계획된 세운 재정비촉진구역의 정비사업과 연계해서 말입니다. <다시세운광장>이 있는 자리는 세운상가 총 8개 동 중 첫 번째인 현대상가였습니다.
세운상가의 ‘세운’은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입니다.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 작품이며, 1960년대 후반 당시 파격적인 주상복합건축물로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서기 전까지 도심 속의 메카 역할을 했습니다. 그중 종묘 맞은편에 위치한 현대상가는 1층부터 4층은 전자상가, 5층부터 13층까지는 아파트였습니다. 누구나 종로를 가면 이곳을 지나게 되었죠.
그해 여름부터 겨울, 세운상가 1층부터 4층까지 영업 보상평가를 수행했습니다. 처음에는 각 층의 임차인 대표님들, 전체 임차인 대표님들은 감정평가 현장조사를 거부했습니다. 두어 달은 대표님들에게 밀려서 현장조사도 못 하고 그냥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감정이 격해진 사장님들에게 욕도 얻어먹어야 했었죠. 이유도 없이 말입니다.
임차인들은 보상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증명 상의 매출과 실제 매출의 차이를 입증할 길이 없었습니다.
“사장님 매출장부 있으시죠? 저희 믿고 그거 주세요. 일일이 정리하실 수 없으시잖아요. 저희가 할게요. 저희가 정리한 거 보시고 확인만 해주세요”
저희의 진심이 통했는지 매출전표, 매출장부 몇 년 치를 몇 박스 씩 가온감정평가법인 사무실로 보내주셨습니다. 지금은 변호사도 겸업하고 있는 나라감정평가법인의 서덕인 감정평가사와 자료 정리만 하는데 20여 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내가 감정평가사인지 경리직원인지 분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30년 넘게 영업해온 이분들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정리를 도와드린 겁니다.
“선배님.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죠?”
“할 필요는 없지.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하니까. 그런데 말이야. 이분들이 법적인 전문가들도 아니고 언제 보상받을지 알아서 따로 정리를 해 놨겠어? 70~80년대에는 영광의 시절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고 말이야. 지금이 마지막이잖아. 다들 연세도 있으시고 대체사업장에서 영업을 재개한다는 보장도 없어 보여. 우리라도 도와주자. 그게 일의 기쁨이지 않을까?”
새벽 3시
밤새 자료 정리를 하며 감정평가사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잘 따라준 후배들이 고마웠던 시절이었죠. 그 소중한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일을 밤새가며 자료 정리를 한 후에야 평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2008년 12월 평가가 완료되고 다음 해 건물은 철거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세운초록띠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남북 녹지 축 조성사업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결국, 현대상가만 철거되었습니다.
‘서울의 역사적인 공간, 세계의 역사적인 공간일 수 있는 이곳을 굳이 철거해야 할까’라는 의문은 계속 있었습니다. 건물은 물리적인 콘크리트 덩어리에만 머물지 않거든요.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건물의 역사, 도시의 역사를 만드는 겁니다. 수십 년간의 세월 동안 공간이 지녀온 가치는 충분했고 그 역사를 시대적 흐름에 맞게 다시 되살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는데 말이죠.
지난 주말 아이들과 찾은 세운상가는 도심 재생의 방법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다시 세운 프로젝트>로 다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거대자본의 씀씀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소소한 움직임과 공공의 지원으로 건물과 사람, 도시의 역사를 잇고 있었죠. 곳곳에는 조그마한 미술관, 책방, 카페, 음식점 등이 기존의 공간을 대체해 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나아진다면 다시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공을 들여 평가했던 공간을 다시 찾은 소감은 남달랐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 공존했던 자리여서 그러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도 생소한 공간이지만 세운상가를 좋아했습니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일의 기쁨과 슬픔이 함께할 겁니다. 기쁨만 있는 일, 슬픔과 힘든 일만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항시 둘은 같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고 슬픔보다는 기쁨을 찾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또 쌓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