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시장의 변화와 감정평가업의 새로운 도전
송 태 영
97년 한일 양국의 교류증진 및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체결한 일본부동산감정협회와의 협정에 의거 지난 4월 20일 제2차 한일감정평가협력회의가 일본 동경에서 개최되었다. 이에 본고는 금번 회의 한국측 기조연설문을 게재한다.
Ⅰ. 머리말
친애하는 한일 감정평가사 여러분,
한국감정평가협회 회장으로서 한일 감정평가업계의 협력과 미래를 열어 가는 이 자리에 여러 분과 함께 서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한일 양국의 감정평가업계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의 진전과 더불어 지난 반세기 이상 한일 양국의 부동산시장을 지배하여온 패러다임들이 물러가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그 변화의 양상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소유에서 효율적 이용으로, 단순한 투자에서 유동성 확보와 위험관리'의 형태로 바뀌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부동산 가격의 형성과 거래관행, 투자와 관리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정평가를 비롯한 부동산서비스업 또한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비단 한국, 일본 두 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속화하는 경제활동의 글로벌화에서 볼 수 있듯이 부동산 시장환경의 변화가 어느 한 나라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지난 세기 오늘날 한일 양국이 경험하고 있은 부동산 패러다임의 변화를 경험하였으며, 그 패러다임은 이미 정착단계에 있습니다.
반면에 한일 양국은 오랫동안 부동산시장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부동산신화'의 거품경제체제에 의존하여 왔으며, '부동산신화'의 붕괴와 더불어 이제 경제체제 전반의 구조조정의 초입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부동산분야도 예외는 아니며, 그 변화의 중심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일 양국의 감정평가업계는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으며, 도전과 응전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와 같은 도전과 응전의 시대를 맞이하여 예견되는 변화의 눈으로 한일의 감정평가업계가 협력하여 나가야 할 몇 가지 과제들에 대하여 여러분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그 방향을 모색하여 보고자 합니다.
Ⅱ. 변화의 의미와 위기에 대한 인식
저는 먼저 감정평가시장의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동산 패러다임의 전환은 감정평가의 전통적인 시장영역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특히 급속한 지식정보화의 추세는 시장정보의 비대칭성에 의존하는 부동산서비스업에 가장 큰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부동산서비스업에 미치는 지식정보화의 부정적 효과는 단지 예견이 아니라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도 있습니다. 부동산분야가 고도로 발달했다는 미국에서조차 감정평가시장은 위축되는 상황에 있으며, 많은 감정평가사들이 위기라고까지 인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 새 천년이 시작되었지만 감정평가업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전통적 시장영역의 관점에서 보면 감정평가업은 이제 성장산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기를 단지 위기로 인식하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와 각오입니다. 21세기 벽두 한일의 감정평가업계에 닥쳐오는 험난한 파도를 넘어 다시 한번 전진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안이한 사고를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더욱이 이제는 변화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조차 별로 많지 않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위기감만 가질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동시에 새로운 감정평가업계의 모습을 창출하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부동산 패러다임의 변화가 감정평가업에 부정적 효과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 시장영역이 줄어든다면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장영역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일감정평가협력회의의 주제인 기업가치평가나 부동산증권화는 바로 그러한 새로운 시장영역의 대표적인 경우가 될 것입니다.
Ⅲ 기업가치평가와 감정평가사의 역할
감정평가시장에서 기업가치평가가 전혀 새로운 영역은 아닙니다. 이미 미국, 영국 등 구미의 다른 나라에서는 기업가치평가가 감정평가시장의 주요한 영역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국이나 일본의 감정평가업계가 그와 같은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의 예에서 보듯이 기업의 구조조정, 파산, 인수·합병(M&A) 등이 증가하고 있고 지적재산권의 국제적 보호 추세로 기업 및 무형자산의 가치평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80년대 거품경제의 붕괴 이후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파산과 관련된 기업가치평가의 파생수요가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기업가치평가가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파산과 관련된 것만은 아닙니다. 신규 기업공기(IPO), 종업원지주제(ESOP), 기업연금제도의 민간화 등 기업평가의 필요성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또한 보다 근본적으로 변동성이 날로 커지는 오늘날의 시장환경에서 성공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투·융자지원은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를 절대적으로 요구합니다. 이제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파산, 인수·합병(M&A) 등은 과거와 달리 일상적인 것이 될 것이며 그에 따른 기업가치평가의 수요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업무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 감정평가시장에서는 기업가치평가시장이 신규 유망시장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미국감정평사가회(ASA, American Society of Apprisers), 기업감정평가협회(IBA, Institute of Business Appraisers) 등 관련 협회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가치평가분야에서 공인회계사와 함께 감정평가사가 시장의 양대축을 형성하고 있음은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대목입니다.
기업의 가치는 재무제표로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습니다. 기업의 성격이나 가치창출의 원천, 자산과 부채, 경쟁업체와 비교한 우위와 열위요소, 환경요인과 규제요인, 미래이익에 대한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기업가치평가 시장은 회계사 등 전통적인 전문가뿐만 아니라 감정평가사도 적극 개입하기 위하여 도전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기업가치평가도 부동산평가와 마찬가지로 평가 3방식이 적용될 뿐만 아니라 각 종 자산에 대한 평가경험을 가진 감정평가사는 기업가치평가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우수한 전문가적 식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동산 등 고정자산의 비중이 큰 기업이나 소기업의 경우에는 감정평가사 고유의 전문성이 크게 요구됩니다.
Ⅳ. 부동산증권화와 감정평가사의 역할
부동산증권화와 관련한 업무는 이러한 기업가치평가와 더불어 부동산시장의 패러다임 변화가 가져온 중대한 새로운 시장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증권화를 통한 이른바 부통산간접투자가 새로운 평가수요를 유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다른 오늘날 부동산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이 결합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다양한 형태를 가진 부동산증권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증권화 형식으로 부동산 관련자산을 금융상품화하여 자산의 유동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동산증권화는 긍극적으로 부동산시장에 대한 금융자본의 역할과 영향력을 증대시키면서 부동산간접투자라고 하는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과 함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투자분석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부동산증권화는 부동산에 대한 소규모 간접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투자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부동산 관련자산의 유동성을 촉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됩니다. 이처럼 부동산증권화가 유동성의 촉진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미국 등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부동산투자신탁(REITs) 등 관련제도가 도입되어 시행되어 왔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90년대 초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REITs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부동산 관련자산의 유동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부동산증권화의 시대가 한국과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열릴 즈음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98년, 9월 16일)', '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법(99년 1월 29일)' 등이 제정된데 이어 최근에는 '부동산투자회사법(일명, REITs 법)'이 제정됨으로써 2001년 7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사정도 한국과 유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동산증권화제도의 도입은 부동산시장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감정평가업무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시장환경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MBS는 주택담보대출을 활성화함으로써 담보평가시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ABS의 발행에 있어서도 자산가치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므로 ABS의 발행이 활성화될수록 평가업무도 늘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조만간 시행을 앞두고 있는 REITs는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감정평가사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REITs는 해당 부동산의 현금흐름을 담보로 시행되는 상품이기 때문에 부동산의 수익성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감정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REITs와 관련해서 감정평가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를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현물출자 또는 양수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의 평가나 주식의 발행가격 결정, 상장 등을 위한 감정평가서비스입니다. 시장참여자들이 알고자 하는 부동산투자회사의 시장가치나 자산가치, 수익가치의 평가에 있어서 감정평가사의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실사보고서나 투자보고서와 같은 전문보고서의 작성과 관련된 업무입니다. REITs 상품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투자설명서, 실사보고서, 사업계획서, 분기별 투자보고서 등 다양한 보고서들이 작성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보고서들에는 기본적으로 투자부동산의 현금흐름에 대한 예측과 수익, 가치 등에 관한 분석이 포함됩니다. 이 또한 감정평가사의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일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부동산분야의 전문가로서 부동산투자자문업이나 투자정보업 내지 부동산관리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호주 REITs의 경우 자산관리, 임대, 구입, 금융 등 부동산 관리 및 운영을 위한 조직과 건설, 엔지니어링, 회계, 법률 및 정보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감정평가사는 그 업무의 성격상 이러한 조직 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이 부여되며 분석된 정교한 시장정보를 축적함으로써 투자자문, 정보제공, 투자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Ⅴ. 맺음말 : 전문성의 제고
이와 같이 부동산시장의 패러다임 변화가 감정평가업계의 미래를 불투명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여부에 따라서는 새로운 시장영역들이 열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가치평가이든 부동산증권화와 관련된 업무든 새롭게 열리고 있는 감정평가 시장은 고도의 전문성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부동산증권화의 경우 부동산의 운영으로부터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이라는 점에서 수익성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시장분석기법에 대한 이해와 함께 금융에 관한 고도의 전문적 지식 등을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평가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감정평가사가 스스로 먼저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로운 영역의 시장수요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경우 부동산증권화제도의 도입 초기 감정평가사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감정평가협회(AI)의 월스트리트 대책반은 감정평가협회가 정책주도권을 쥐고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응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예는 부동산증권화의 도입단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의 감정평가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입니다. 이러한 지식기반사회에서 감정평가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부동산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감정평가업 스스로가 보다 전문적인 지식산업화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문성 차원에서 감정평가업이 여타 부동산관련 서비스업과 차별화되어야 하고, 감정평가사 집단 내부적으로도 개개인이 전문적으로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특히 새롭게 등장하는 평가영역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로 시장은 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분명히 가려내게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감정평가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업무의 깊이와 넓이를 확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부동산시장이나 감정평가업이 여러 모로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한일 감정평가협력회의가 양국의 감정평가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안과제들을 협력하여 풀어나가는 귀중한 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끝으로 이번 회의를 주최하여 주신 일본 부동산감정협회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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