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Vol.146 SUMMER 2022

쉼표 교양 여행의 발견

계절의 선물,

담양의 여름을 걷다

봄꽃을 즐길 새도 없이 바빴던 봄을 마무리하며 기말고사를 앞둔 학생처럼 수없이 되뇌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담양에 가야지.” “바쁜 것만 정리되면 담양에 가서 자전거를 타야지.”
어지러운 마음을 담양으로 달래가며 바쁜 일들을 해결하고 담양으로 가는 버스에 비로소 몸을 실었다.
서울에서 꼬박 네 시간 반이 걸리는 먼 곳이지만, 가는 내내 담양의 여름 바람이 마음을 간지럽혔으므로 지루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빌려 바람을 맞으며 담양을 누빌 생각에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고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아 더없이 설레었다.
댓잎의 초록이 선명해지고, 관방제림의 숲길엔 짙푸른 녹음이 우거지며, 메타세쿼이아 길의 청량함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
댓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마음속 근심마저 시원하게 날려주는 계절, 여름.
담양의 여름은 고된 시간을 잘 견디었노라고 나에게 건네는 선물과도 같았다.
초록으로 가득한 담양 곳곳을 누빈 후, 국수거리의 시원한 국수 한 그릇을 마주하면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글, 사진. 장은정 여행작가

걸으며 치유하는 길, 담양 죽녹원

초록이 가득한 담양 죽녹원의 대나무숲길을 걸으면 마음에 싱그러운 대나무 바람이 분다. 일상을 괴롭히던 마음의 소란은 대나무 사이를 유영하는 바람과 함께 흘려보내고, 초록빛 싱그러움으로 다시 마음을 채운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시키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피톤치드 가득한 대나무숲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치유의 길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살짝 흔들리기만 할 뿐, 바람이 걷히고 나면 금세 본래의 올곧은 모습을 회복하는 대나무숲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단단해진다. 속은 비었으나 쓰러지거나 꺾이지 않게 지탱하는 굳센 마디를 가진 대나무. 우리의 삶도 필요 없는 것들을 비워내고 마디를 굳세게 다지며 살아가면 대나무처럼 강건하고 유연해질까. 걸으며 사색하고 사색하며 비워내다 보면 조금은 더 건강해진 나를 만난다.

담양의 죽녹원 대나무숲은 2003년 5월에 문을 열었다. 31만㎡의 울창한 대나무숲에는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 길, 철학자의 길, 추억의 샛길 등 총 8개의 산책로가 2.4km에 걸쳐 조성되어있다. 죽녹원을 가득 채운 대나무는 소나무의 4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자랑한다. 대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스트레스 해소, 신체 이완 등 몸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고 행복감과 편안함을 증대시켜 뇌 기능을 활발하게 만든다. 또 대나무와 댓잎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산하는 천연 항균물질로,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길을 걸으면 몸속에서 스스로 살균작용이 일어나 머리가 맑아지고 심폐기능이 강화된다. 걷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치유의 길이다. 죽림욕을 즐기며 걷는 산책로 끝에는 담양을 대표하는 정자들을 재현해놓은 시가문화촌과 한옥 카페, 숙박이 가능한 한옥체험장이 있다.


걷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죽녹원의 길.

Tip

  • 뚜벅이 여행자라면 담양 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담양읍사무소를 먼저 찾을 것.
    신분증을 맡기면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짐보관이 가능한 사물함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터미널에서 도보 10분.

  • 주소

    전남 담양군 담양읍 중앙로 83

걷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죽녹원의 길.

담양을 대표하는 아름다움, 메타세쿼이아 길

1972년 담양읍과 순창을 잇는 약 8km 구간에 약 2,000여 그루의 가로수를 심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울창한 가로수길이다. 조성 당시에 심은 3~4년생 정도의 어린 메타세쿼이아 묘목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20~30m 내외의 키다리 나무가 되어 울창한 가로수 터널을 만들었다. 2011년에는 메타세쿼이아 길 중 일부 구간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흙길을 조성해 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쿼이아로 이어지는 생태숲길을 복원했다. 바로 옆에 새로운 국도가 뚫리면서 기존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호수와 공원, 체험장, 지질공원센터 등을 갖춘 ‘메타세쿼이아 랜드’라는 이름의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봄에는 연둣빛으로 가득한 봄의 향기를, 여름에는 울창한 숲 아래의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단풍잎이 만들어낸 단풍 터널을, 겨울에는 눈 덮인 가로수길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곳이다.

나무 사이사이에 넉넉하게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쉬어가기에 좋다.

눈이 맑아지는 메타세쿼이아 길.

국수거리의 국수는 야외에서 즐겨야 제맛이다.

강바람이 머무는 숲길, 관방제림

1648년 영산강의 범람으로 인한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그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만들어진 숲이다. 제방의 이름은 ‘관방제’, 제방을 따라 만들어진 숲의 이름은 ‘관방제림’이다. 약 370여 년 전에 심은 나무는 아름드리 숲을 이뤄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걷기 좋은 산책로가 되었다. 숲을 이루는 나무는 대부분이 푸조나무다. 푸조나무는 바람과 병충해에 강한 편이라 보호수로 매우 적합한 성질을 갖고 있는 반면, 추위와 공해에 약해 도시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관방제림의 푸조나무숲은 담양의 공기가 그만큼 따뜻하고 깨끗하다는 것의 상징이다. 푸조나무 외에도 느티나무와 팽나무, 벚나무, 은단풍 등 여러 종류의 활엽수들이 섞여 아름답고 다채로운 숲을 이룬다. 숲길을 따라 걸으면 따뜻한 강바람을 타고 온 숲 향기가 코끝에 머문다.

영산강을 중심으로 산책하기 좋은 숲길이 조성된 관방제림.

관방제림의 산책로는 걷기에도,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다.

추억 한 그릇, 담양 국수거리

1970~1980년대 죽세공품을 만들어 팔던 죽물竹物 시장을 찾은 상인들과 서민들이 자주 찾으면서 만들어진 먹자골목이다. 전라도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와 채반, 소반, 소쿠리 등 담양의 다양한 죽세공품을 사기 위해 모여들었고, 저렴하고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은 상인들과 서민들에게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먹거리였다. 세월이 흘러 죽물시장은 사라졌지만, 시장터가 있던 자리엔 자연스럽게 국수거리가 생겨났다. 팽나무 그늘이 드리운 야외 식탁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을 바라보며 먹어야 제맛이다.

구독하기
TOP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