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Vol.146 SUMMER 2022

쉼표 교양 인사이트

조각투자, 휴지조각 피하려면

글. 노유선 기자(포브스코리아)

매년 세계 곳곳에서는 합리적 가격대의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어포더블 아트 페어(Affor dable Art Fair·AAF)’가 열린다. 이름 그대로 감당할 만한 수준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어포더블 아트 페어는 한때 ‘귀가 아니라 눈으로 사세요(Buy with your eyes, not your ears)’라는 문구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적이 있다. 문구는 작품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 판단, 평가보다 전문가의 해설, 작품 판매이력, 작가 정보를 우선시하는 의존적 태도를 지적한다.

어포더블 아트 페어가 떠오른 건 최근 미술품 조각투자 열풍 때문이다. 신(新) 재테크 수단인 조각투자는 아직 소비자 보호장치가 불충분하고 투자 위험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미술품 투자자들의 의존적 태도가 조각투자에도 반영된다면 그들의 투자는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각투자 플랫폼 사업자가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 여부, 미술품 조각투자에 대한 법령 부재, 신종 증권 해당 여부 등을 살펴본다.

“정보의 정확성? 저희 소관 아닙니다”

조각투자는 미술품, 부동산, 음악 저작권 등의 자산을 지분 형태로 쪼갠 뒤 다수의 투자자가 공동으로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소액으로도 고가 자산을 분할해 보유하고 거래를 통해 차익을 얻을 수 있어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초기 단계인 만큼 투자 위험성도 높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운용구조나 투자위험에 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거나, 투자자가 오인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가 있다”며 조각투자에 대해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또 “정보가 사실과 다를 수 있으며 과장 광고로 인해 투자자의 오인을 유발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웹, 앱 포함)들은 동일·유사 작품 연평균 가치 상승률을 비롯해 작가의 최근 3년간 평균 경매 횟수, 경매 총 거래 금액 추이, 경매 총 거래량 추이, 장르별 거래비율 등 상당히 다양한 정보를 이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특히 판매 작품의 호당 가격을 제시하며 투자 가치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플랫폼들의 약관 및 유의사항을 보면, 작품 정보의 사실 여부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조치들을 확인할 수 있다. A사는 공동구매 약관에서 ‘회사가 제시하는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는, 회사가 아는 한, 사실에 부합하거나 그러한 사실을 근거로 한 의견이나, 회사가 그 정확성에 대하여 진술 및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B사는 유의사항에서 ‘본 투자 보고서의 기초가 되는 미술품 판매 데이터는 제3자로부터 제공된 것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정확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해 플랫폼 이용자의 투자를 유도했을 뿐만 아니라, 사측에 정보를 줬다는 제3자가 누구인지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또 다른 플랫폼 C사는 작품 설명 시 작가의 여러 작품 중 가격상승추이가 급격한 것만 추려서 안내하는 등 선택적 정보를 이용해 투자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작품 판매를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허위·과장 정보에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 일부 조각투자 플랫폼의 입장이다.

조각투자가 실물자산의 소유권을 분할해 취득하는 방식이면, 다시 말해 증권이 아닐 경우 투자자는 민·상법의 적용을 받아 조각투자 사업자의 사업 성패와 무관하게 재산권 등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술품 조각투자

미술품 조각투자 관련 법령이 없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재경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미술품 분할소유권 거래의 법률적 성질(2021)’이란 논문에서 “조각투자에 대한 법령 또는 선행 판례 등 규율 체계가 전무한 실정”이라며 “기존 민법이나 상법으로 규율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실무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우선 미술품의 분할소유권(공동소유권)을 명확히 규정한 법령이 없다. 따라서 조각투자 플랫폼이 제공하는 권리증이나 소유권 계약서가 법적 효력을 가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회계장부의 위·변조를 방지한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법적 효력 여부가 뚜렷하지 못하다. 금융감독원은 “유통시장 감시장치가 없어 가격조작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미술품 조각투자가 ‘신종증권’인지 여부도 투자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조각투자 상품의 경우 권리 구조, 세부 계약내용 등 개별 상품의 실질에 따라 증권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투자자들이 막연히 조각투자대상 실물자산 등을 직접 소유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각투자 등 신종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금융위원회는 조각투자 플랫폼 사업자조차 자사 상품이 증권에 해당하는지 검토하지 않은 채 증권 발행 및 유통 관련 규제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각투자가 실물자산의 소유권을 분할해 취득하는 방식이면, 다시 말해 증권이 아닐 경우 투자자는 민·상법의 적용을 받아 조각투자 사업자의 사업 성패와 무관하게 재산권 등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반면 조각투자가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지분만큼 청구권을 가지는 경우라면 증권성이 인정돼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현재 미술품 조각투자의 증권 여부에 대해 금융당국은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증권으로 인정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A사의 경우 작품 소유권에 따른 ‘매각수익’과 ‘거래수익’ 외에 ‘운영수익’이라는 또 다른 수익구조가 있다.

A사는 공동구매 약관에 ‘외부 임대 및 이벤트에 활용하는 방식 등으로 운영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조각권자는 작품의 보관, 관리 및 운영 위탁의 대가로서, 작품의 운영으로 발생한 수익금을 회사에 수수료로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일각에서는 자산에서 발생한 운영수익을 ‘작품 보관 및 관리 수수료’로 활용한다면 증권성의 근거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플랫폼 사업자의 노력에 따라 작품을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다는 점도 조각투자가 증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B사의 경우 국내외 갤러리, 아트 딜러, 개인 소장자 등이 구매 의사를 밝히면 작품 매각 여부에 대해 소유권을 가진 이용자들의 투표가 진행된다. 여기에서 잠재적 작품 구매자를 확보하는 일은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이다. 사업자의 미술 시장 네트워크가 얼마나 견고한지에 따라 작품 매각 속도가 달라지는 셈이다.

조각투자 플랫폼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엔 아직 성급해 보인다. 플랫폼에 의존하기보다 양질의 정보를 찾아 스스로 발품을 팔아 보자. 작품 투자에 확신이 없다면 걸음을 조금 천천히 내딛어보자. 전문가들은 작품 보는 ‘안목’이 있어야 작품 가격을 내다보는 ‘촉’이 뒤따른다고 말한다.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면 안전한 투자와 동시에 안정적인 수익 창출 모두 가능해질 것이다.

구독하기
TOP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