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광장
낚시가 좋다
연제역/건설교통부 지가제도과
나는 어둠을 좋아한다. 달빛이 있는 밤보다 깊고 넓은 칠흙 같은 어둠을 좋아한다. 어둠이 주위에 내려앉으면 오히려 더욱 선명히 밝은 별이 가까워서 좋다. 나는 혼자다. 여느 사람 같으면 으스스한 분위기이지만 풀벌레소리와 가끔은 동물 울음소리가 가까운 산 깊은 호숫가에서 혼자를 즐긴다. 낚시는 철저하게 혼자일 수 있기에 좋다. 어둠과 별빛, 소쩍새 울음과 향기로운 바람내음, 담배연기와 나, 이 모든 것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요소이며, 내가 밤새워 가며 고통스러울 만큼이나 낚시를 즐기는 요인들이다.
특히, 혼자서 호수가로 향하는 낯선 길과 풍경은 두렵기도 하지만 매혹적이며, 상쾌한 바람과 신선한 공기, 전혀 낯선 곳으로 달려가 앉아있는 데서 오는 모험(?)과 호기심의 발동은 나로 하여금 짜릿한 흥분감을 느끼게 한다.
낚시 환경이나 조건이 늘 시원하고 쾌적한 것만은 아니다. 덥고 모기와 사투를 벌일 때도 있고 비바람과 씨름할 때도 많다. 나 또한 덥고 비가 오면 그런 낚시는 그 맛대로 즐긴다.
비오는 새벽 조용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는 나를 동양화 속의 江太公이나 神仙으로 만들기도 한다. 온 천지가 비에 젖는데 비 맞지 않는 나만의 공간(파라솔 밑)은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독특하리 만치 짜릿한 감흥을 갖게 하고 비릿한 물내음과 구수한 흙냄새가 섞여오면 어릴적 물놀이와 흙장난을 떠오르게 하여 천진하고픈 꿈을 새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가끔은 가족이나 가슴을 터놓는 친구와의 동행도 단독출조와는 또 다른 별미를 준다. 가족과의 낚시는 낚시라기보다는 물놀이나 야유회의 성격이 짙다. 우선 출조준비부터 복잡해진다. 아이들을 위한 먹을거리, 음료수, 풀숲 등에서의 안전을 위한 신발 등등.... 낚시 시작부터 대를 펴고 앉으면 5살 먹은 아들놈은 자기 낚싯대도 펴달라고 조르기 시작하며, 언제 물고기가 잡히느냐, 지금 낚싯대를 들어봐도 되느냐? 라는 등 이러다 시들해지면 물가에 들어가 첨벙대려고 하여 아빠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하고, 재잘거리거나 주변의 작은 돌멩이를 찾아내어 물 속에 던지는 낚시(?)를 한다. 이러니 어떤 배짱 있는 물고기가 다가오겠는가? 이 때 "낚싯대를 들고 호숫가에 애들하고 낚시하러 오는 작자가 잘못이지"라고 갈등하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짐을 겪는다. 이럴 때는 낚싯대는 드리웠으되 김밥 먹고 딴 죽피며 놀다오는 것이 최상의 낚시기술(?)이 된다.
혼자만의 낚시는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초월의 자세가 필요하거나 무(낚시용어로는 꽝이라 함)에 적응하는 체념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반면, 친구와 함께 하는 낚시는 마음이 편안하고 어떠한 주제가 등장해도 동조가 쉬운 우정을 나누는 場이 되며 비즈니스라면 이익에 휩쓸리지 않고 거래가 성사되는 사업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해결의 場이 되기도 한다. 혹은 물가에서의 소주파티로 고주망태가 되기도 한다. 흙이나 돗자리 위에서 널브러져 한 두어 시간만 자고 나도 맑은 공기는 금새 熟醉를 해소시킨다.
그래도 낚시는 大魚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 좋다. 세월을 낚는다, 강태공이다. 神仙 등등... 신비감이 흐르는 말들로 잡혀도 그만 안 잡혀도 그만 이라는 풍설을 늘어놓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괴기(물고기의 시골말)를 많이 잡으면 좋고, 가급적 大魚를 낚으면 더욱더 좋다. 이 단계면 낚시는 靜的인 정신수양 활동이 아닌 다이나믹한 스포츠로 돌변하기도 한다. 밤새워 꽝일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하며 맑고 신선한 바람을 위안 삼아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금요일쯤이면 가족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어느덧 풀 향기 풍기는 바람을 맞으며 낯선 풍경의 뚝방길을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이버공간을 드나들며 사는 지혜
송호용/경남도청 지적과장
정보화 사회는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여 분출되는 다양한 목소리로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격의 없이 자유로운 목소리로 하여 봄철 가도를 수놓는 벚꽃처럼 민주주의를 활짝 피우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익명을 통한 거친 욕설이나 근거 없는 비난과 고발을 서슴없이 하면서 마녀사냥을 즐기는 네티즌, 당하는 자의 아픔보다는 그 공격의 시원함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방문자.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핵심을 벗어난 변명과 변론,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과 보복적 대응들이 난무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씁쓸한 느낌마저 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 인연들이 이렇게 얽혀 들어서는 안 되는데 라는 우려가 반복되는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조선조의 문신 벽오 이시발 선생의 유고 한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유고록 내용을 간추려 보면,
어느 날 문하에 장생이란 제자가 찾아와 "스승님 저는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면서 오로지 남을 칭찬하고 살았는데 유독 한 사람만은 저를 유별나게 비난하므로 글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자네는 어찌하여 그를 원망하려 하는가. 그의 비난 저변에는 실제로 자네가 스스로를 경계하며 세상의 도리를 다하고 사는 그 틈새에서 우쭐하여 불거질 수 있는 실수를 경계하는 뜻이 있음을 보아야 하네. 일찍이 주공도 관숙과 채숙에게 유언비어를 들었고 공자도 손숙씨에게, 맹자도 장씨 아들에게 비방을 들었듯 성현들조차도 이 헐뜯음에 자유롭지 못했네. 이 세상 사람들 틈에 살면서 어찌 자신을 헐뜯는 자가 없기를 바라는가. 그러므로 군자가 처신을 하면서 돌봐야 할 것은 상대에게 달려있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으로서 자신이 할 도리를 다했는데도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가 자기분수도 모르고 저지른 행사로 보면 될 것이요, 자신이 할 도리를 다하지 못했는데도 칭찬의 말이 들린다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워야 할 것이네"라고 말하였다.
지금부터 약 400여년 전에 남겨진 이 글이야말로 자신의 모습은 자세히 보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요, 자신의 거울에 비춰진 남의 모습만 검증 없이 비난하거나 남의 비난에 대하여 스스로를 뒤돌아보지 못하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어리석음과 남의 칭찬에 스스로 할 도리를 다한 양 우쭐대거나 사이버공간을 누비는 비난을 은근히 즐기려하는 어리석음 모두를 경계하는 것으로서 이 정보화시대의 사이버공간을 드나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계하고 다듬고 지켜가야 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
유난히도 덥고 길었던 여름을 넘어 그 덥고 긴 만큼의 풍요가 넘실거리는 이 계절 가을처럼 이 민주화의 격의 없는 공간에도 지난 아픈 만큼 더 성숙하여 풍요의 물결이 넘쳐나기를 두손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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