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Vol.145 SPRING 2022

KAPA 인사이드 모먼트

감정평가업계를 떠나며

※ 협회 회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용수 감정평가사님의 회고록과 후배 감정평가사들의 응원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본 회고록은 협회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박용수 감정평가사

저는 2022년 2월 7일 자로 정민감정평가사사무소를 폐업하고 감정평가업계를 은퇴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인 1972년 2월 7일부터 제일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재직 중 공인감정사, 토지평가사 자격을 취득하여 1982년 7월 2일 자로 은행을 퇴직한 뒤 7월 10일 공인감정사합동사무소를 개업했으니 무려 반세기 동안 계속 일을 한 것입니다.

제가 개업한 40년 전에는 국민의 대부분이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만 감정하는 것으로 알던 시절이라 감정평가사사무소를 개업해도 확실히 보장된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강 이남에는 임부택, 금만섭 감정평가사와 영등포에 개업한 우리 합동사무소가 유일하던 때이기도 하지요.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집달관이 독점하던 남부지원의 경매감정을 제가 다니던 대학원에 출강하시던 동부지원 사무국장의 도움을 받아 그 1/2을 우리 사무소에서 처음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격세지감이 드네요.

직장생활을 하던 50년 동안 저는 경제학사(국제대), 행정학사(방송통신대), 경영학석사(성균관대), 예술품감정학석사(명지대), 부동산학박사(강원대) 학위를 취득했고, 2020년에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학점은행제 미술학사(동양화전공)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작년에는 한국미술협회의 회원도 되었으니, 앞으로는 화가로 활동할 생각입니다. 중학생 때 이미 밥벌이가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포기했던 예술가의 꿈을 이제 이루어 보려는 것이지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교에 다닌 50년 동안 저는 국내의 1,300m 이상인 산 61개 전부와 100대 명산 전부를 포함한 500여 개의 산을 등정하고, 200여 개의 섬을 답사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부터 총 127회 출국하여 3,000m 이상인 산 10개를 포함한 해외 산 56개를 등정하고, 중국 33개 성급행정구 전부와 북극(북위 82°) 및 6대주 103개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대만 옥산 정상에서

그동안 책도 4권을 썼습니다. 27,000권을 팔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시민을 위한 부동산이야기(김영사, 1995)’를 비롯하여 ‘우리의 큰 산(산악문화, 2001)’, ‘수려한 명산(산악문화, 2009)’, ‘동아시아의 명산(지식과 감성, 2021)’을 출간했지요. 몇 년 전부터는 여러 단체전에 미술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지난해 여름부터 70세 전에 꼭 하려던 계획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오랫동안 간직한 자료와 유물을 기증하는 일입니다. 먼저 1913년 조선광문회에서 발행한 최초의 인쇄본 ‘산경표’와 틈틈이 수집한 산악 관련 책들을 산악박물관에 기증했고, 지난 10월에는 실학의 비조라고 평가받는 반계 선생의 간찰과 화담 선생, 사가정 선생의 간찰을 실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뜻밖에도 실학박물관에서는 제게 기증식까지 열어주더군요.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을 기초한 조소앙 선생의 친필 시고와 동농 선생의 간찰은 독립기념관에, 20여 년 동안 수집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와당과 동경 45점은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우복 선생의 간찰과 젊은 시절에 수집한 각종 형태의 조선시대 화살촉은 전쟁기념관에 기증했지요.

막상 선현의 유물들을 기증하니 ‘무릇 재화를 간직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그러면 도적에게 빼앗길 걱정도 불이 나서 타버릴 걱정도 없다’는 다산 선생의 말씀이 조금은 이해되더군요.

실학박물관 유물기증식

저는 3인, 7인, 15인 합동사무소와 40인 법인을 거쳐 1993년부터 감정평가사사무소를 시작한 이후, 한국감정평가사협회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습니다.

2000년경 처음 맡은 직책인 감정평가심의위원이었을 때는 하천편입토지 평가에 대해 심의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마포 근처의 수천 평 토지로, 고아원이 있던 한강변의 정상적인 토지였는데 70년대 초에 모래 채취를 위한 서울시의 무단준설로 하천부지가 되었다는 소유자의 주장대로 미불용지로 보아 엄청난 거액으로 평가한 건입니다. 저는 지적선의 형태를 볼 때 그 주장이 틀렸다고 판단했고, 국립도서관에서 오래된 항측도와 한강수위 측정 자료를 찾아 소유자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 후 감정평가사사무소 회원으로는 처음 심의위원회 간사를 맡게 되었지요.

이사 직책을 맡았을 때는 협회에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협회는 총회를 앞두고 전임회장단, 부회장, 감사로 구성된 대책회의를 열었으며, 거기서 이 문제를 총회에서 거론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그래서 제가 협회로 찾아가 이 문제를 총회에서 밝히지 않는다면, 협회 이사로서 이 문제를 모른 척을 할 수 없으니 총회에서 직접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총회를 거쳐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잘 마무리되었지요. 그 일 이후 감사 정원이 1명 더 늘었고, 제가 감정평가사사무소 회원으로는 처음 협회 감사가 되었습니다. 임대사례조사연구위원회 간사 겸 서울지역본부장이었을 때는 회원들의 조사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매장용 부동산의 층별 임대료 격차율은 그 부지의 가격이 높을수록 벌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가설을 상관관계 분석을 통해 실증하여 부동산학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감정평가사사무소협의회 회장이 되었을 때는 매월 지급되는 회장의 업무추진비를 반으로 삭감하고 사무국장의 수당도 일부 줄여서 집합연수 시 회원분들께 식사를 제공하고 명절 선물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회 활성화를 위해 회칙을 개정하여, 회비의 일부를 지회활동비로 지회에 반환하고 법무위원회 위원 일부를 경기도 지회에 배정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협의회 회장이던 당시 가장 큰 당면 과제는 법원수수료 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협회는 미온적이어서 제가 직접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 협의회 회원이면서 변호사인 임형욱 감정평가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분의 공헌과 협의회 회원들 및 협회의 지원으로 2008년 3월부터 기본수수료를 20만 원에서 24만 원으로 인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드립니다.

제가 협회의 모든 직책에서 벗어난 2010년에는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공단화로 인한 업계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협회장의 한국감정원 공단화 찬성 투표방법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협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결국 임시총회에서 공단화 찬성안은 부결되었고, 협회장이 사퇴했습니다.

2011년에는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이하 부감법) 개정안으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새로운 협회장은 부감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2천여 명의 참석 회원을 앞에 두고 그 안건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개정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한 결과, 반대하는 회원이 72.5%에 달했고, 신임 협회장은 사퇴했습니다.

그 후 저는 감정평가제도독립성수호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았지만, 무력함을 절감했습니다. 임시협회장도, 법인대표자들도 대책위원회의 활동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지막 수단으로 2011년 12월 13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국토부에 항의하기 위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 후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협회 회장이 되어, 저는 대책위의 직책에서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업계를 떠나면서 지난 40년을 돌이켜보면 부족한 감정업무 능력으로 타성에 젖어 너무나 오랫동안 업계 동료들의 밥을 축낸 것이 아닌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예()’의 과녁 앞에서 40년을 보냈으면서도 화살을 맞지 않은 것은 다만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오직 자신의 판단과 의견에 따라 공정한 감정평가를 위해 항상 노력하시는 감정평가업계의 동지들에게 커다란 존경을 드리며, 더욱 발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응원 message

존경스럽습니다. 은퇴 후 어떤 일이라도 잘 해내실 겁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의 업계는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생면부지 선배님이지만 몇 줄만 읽어도 지나온 날들의 열정이 전해 옵니다.

새 출발을 축하드립니다. 후배로서 존경스럽습니다.

박용수 감정평가사님과 같은 장소에서 함께한 지 어언 20년이 됩니다. 은퇴는 너무 섭섭하지만 앞으로 삶을 화가로서 보내신다고 하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의 모습은 존경 그 자체입니다.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많은 일을 하셨으며, 많은 감동을 주셨으며, 많은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리더로서, 선배로서, 감정평가사로서, 인간으로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옆에서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감정평가업계 발전에 앞장서 온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화가로서 활동하신다니 좋은 작품 많이 그리시고 입신양명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전 감정평가사사무소협의회 회장님으로 계실 때 솔선수범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존경합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같은 분이 계셔서 우리 업계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새로 도전하는 화가의 길 또한 즐거움이 함께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지금껏 수고하셨습니다.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지니 부럽기도 합니다. 멋진 선택을 축하드립니다. 후에 작품 전시회가 있으면 소식 전해주세요. 응원합니다.

그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로에 섰을 때 도와주시고, 진심 어린 조언해 주셔서 선배님 말씀이 등불이 되었습니다. 감정평가사가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항상 올곧게 생활하시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시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예술품 감정을 공부하시겠다고 하실 때 속으로 정말 대단하시구나 했는데, 화가로 활동까지 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경제학사, 행정학사 박사까지 쉴 틈 없이 정진하시면서도 원칙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과감히 맞서던 용기! 존경합니다. 감정평가업계를 떠나서 새롭게 하시는 일도 멋지게 펼쳐질 것을 믿습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새삼 치열하게 올곧게 인생을 살아오신 것을 느낍니다. 은퇴하시더라도 인생은 항상 현역입니다. 어디서나 열정 잃지 않고 건승하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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