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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의 허와 실 유 태 종 ｜ 식문화연구원 원장, 건양대 교수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은 본능에 속하는 일이면서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음식이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갖는 일이 기본이지만 유해성분이 없어 위생적으로 안전하여 사람 몸에 좋은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과학적으로 특성과 성분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에 얽힌 여러 가지 속설과 전래되는 이야기들이 많게 마련이다. 밥 먹고 바로 자면 소가 된다느니, 식초를 많이 먹으면 뼈가 물러 재주를 잘 부리는 곡예사가 될 수 있다. 임신부가 식혜를 먹으면 아기가 삭는다, 임신부가 닭고기를 먹으면 낳는 아기의 피부가 닭살이 된다는 등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런데 이러한 금기사항이나 금기식품들은 대부분이 과학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는 것도 있다. 아이들에게 밥을 포식하고 바로 자면 안 된다는 식사예법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밥 먹고 바로 자면 소가 된다는 공포심을 심어주어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했던 교훈인 것이다. 식초는 뼈의 성분인 칼슘을 잘 녹이므로 뼈가 물러질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으나 식초를 많이 먹는다고 그대로 그 성분이 골격에 도달하여 칼슘성분을 농축시키지는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음식을 먹을 때 알맞은 식초와 함께 먹으면 음식 중의 칼슘 섭취를 도와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임신부가 닭고기를 먹어 아기가 닭살이 된다는 것도 비슷한 것을 연관시켜 생각해 왔던 대물요증(對物療症)적인 유래였던 것이다. 닭고기 단백질이 모양을 바꾸지 않고 직접 인체에서 쓰이지는 않는 것이다. 강장 스태미나 식품으로 물개의 해구신이 좋다고 하는 것도 한 마리 수컷이 수십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사는 물개를 연상해서 강장식품의 으뜸이라 여겨 왔다. 그러나 모든 식품 중의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가 되어 체내에서 재합성되고 이용된다. 또 음식을 먹을 때 여러 가지 것을 함께 곁들여 먹는 일이 많았는데 함께 먹으면 좋지 않은 음식들이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장어와 복숭아, 오이와 무, 게와 감, 게와 꿀, 미역과 파, 산채와 고춧가루, 우유와 설탕, 문어와 고사리, 조개와 옥수수 등 많은 사례가 지역과 나라마다 전래되어 왔다. 두 가지 이상의 식품을 먹는 경우 영양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음식의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고 효율이 떨어지거나 좋지 않은 성분이 만들어지는 것은 음식궁합이 안 맞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어는 고단백 고지방 식품으로 소화에 부담을 주기가 쉬운데 신맛, 유기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복숭아를 함께 먹으면 설사를 일으키기 쉬웠던 것이다. 무에는 비타민 C가 많은 것이 특징인데 날 오이를 채썰어 함께 섞으면 오이 중의 비타민 C 파괴효소 아스코르비나아제 때문에 비타민 C의 파괴가 많아져 손실이 커진다. 우유에 설탕을 섞는 것은 맛은 좋아지나 설탕이 체내에서 분해 이용될 때 우유의 비타민 B가 손실되므로 영양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게는 식중독의 균의 번식이 대단히 잘 되는 식품인데다, 감은 수렴작용을 하는 타닌성분이 있어 소화불량을 수반하는 식중독의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궁합이 안 맞는다고 일러왔던 것이다. 궁합이 잘 맞는 예의 하나로 호남지역에는 홍탁이 있다. 홍어와 탁주를 곁들여 먹는 것인데 홍어의 강렬한 암모니아를 단백질과 유기산을 가지고 있는 탁주가 중화를 시켜 맛과 소화흡수를 도와주므로 궁합이 잘 맞는 이른바 홍탁으로 전래되어 왔다. 당뇨병에는 보리밥이 좋다는 말을 믿고 보리편식을 하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것이다. 먼 옛날 사람들은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서 먹을 것을 구분했다. 어떤 때는 독이 있는 식품을 먹어서 변을 당한 때도 있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물은 조상들이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것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을 가려서 후손에게 전해온 이른바 일용식품은 약 4백종에 이른다. 오랜 역사를 통해 귀중한 인체실험을 바탕으로 얻어낸 지식이었다. 이전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었지만 농업과 어업이 발달하면서 식량을 얻기가 수월해지자 맛있는 것을 골라 먹는 식생활로 바뀌게 되었다. 맛 좋은 것을 가려 배불리 먹다보니 비만,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 등 이른바 성인병 때문에 시달림을 받는 현대인이 급격히 증가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적인 식생활로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고 더욱 건강하고 더욱 많은 일을 하며 나이가 들어도 젊은 사람처럼 지낼 수 있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올바른 식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식품 중 다른 식품과 함께 어울리면서 성분의 변화를 막고 영양효율이 높아지는 것(음식의 궁합이 잘 맞는 식품)과 효율이 떨어지는 것(음식의 궁합이 안 맞는 식품)이 있다. 최근 우리 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많이 늘어나 이제 우리 나라도 장수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실제로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서 온갖 성인병이 계속 늘고 있다. 가장 눈에 뛸 정도로 늘어난 것이 당뇨병이며 과거 30년 동안에 가까이나 늘었다. 이는 한마디로 영양의 과다섭취와 편식이 주원인이다. 영양과다는 바로 비만과 연결되어 당뇨병뿐만 아니라 고혈압·동맥경화·뇌졸중·협심증·심근경색 등의 성인병을 계속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장수하는 나라가 되긴 했지만 이제는 열 사람이 모이면 그중 몇 사람은 병을 앓고 있을 정도로 병자도 많아진 것이 우리들의 현재 상황인 것이다. 성인병이라는 말 대신 요즘은 생활습관병이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생활습관을 고쳐서 예방·개선할 수 있는 병을 생활습관병이라고 한다. 식사, 운동, 휴식, 음주, 담배 등의 생활습관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식습관이다. 식습관이 건강과 질병을 가르게 되고 생활의 질을 결정시킨다. 암발생 원인의 1/3이 식사에 기인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상식화되어 있다. 이렇듯 음식의 허와 실을 잘 알고 머리로 음식을 먹는 시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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