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Vol.147 FALL 2022

똑똑 부동산 부동산을 보는 눈

기후위기 시대 건물은 ‘트랜스포머’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물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트랜스포머’라는 단어로 축약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장착된 소프트웨어에 따라 전화기가 되거나 컴퓨터, 카메라 등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휴대전화처럼 하나의 디바이스로 진화하고 있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여도 어떤 기능을 장착시키느냐에 따라 180도 다른 기기가 됩니다.

글. 김아영 기자(내일신문 환경부)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소 문제 심각

건물은 지구온난화로 심화되는 폭우, 폭염 등 이상기후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 주는 ‘표피’ 역할을 합니다. 때론 코로나19 등 각종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도록 실내 공기질 지킴이로 변신하기도 합니다.1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지구온난화 자체를 막기 위해 건물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는 의외로 상당합니다. 특히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도심일수록 더 심하죠.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건물이 뿜어내는 양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나 됩니다.2 탄소중립 2050 달성을 위해서 건물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사실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2020년 온실가스를 1990년보다 49.7% 적게 배출한 영국조차도 골치를 앓고 있죠. 전 세계적으로 건물 관련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탄소중립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분위기입니다.


건물에서 에너지를 캐내는 ‘발상의 전환’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수요 조절 ▲재생에너지로 전환 ▲건축 재료 자체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 추진 등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발상의 전환이 필수입니다. 건물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 아닌 생산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냉방비나 난방비를 덜 쓰기 위해서 건물의 단열 등을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이는 기본입니다. 에너지 절약은 물론 건물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 태양광을 입히는 등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쓰는 식이죠. 우리는 이러한 건물들을 거창하게 ‘액티브하우스’, ‘제로에너지 건축물’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독일은 ‘난방제로에너지 → 제로에너지 → 플러스에너지 하우스’로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서 3km 정도 떨어진 보봉(Vauban)마을은 주민 주도형 에너지 자립 마을로 유명합니다. 패시브하우스(단열공법 등을 이용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물)나 플러스에너지 하우스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죠.

또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2015년부터 플러스에너지 건물인 ‘악티프 슈타트하우스(Aktiv Stadt-haus)’를 운영 중입니다. 이 건물이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도심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도심의 경우 거주자 밀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태양광이 부족하기 때문에 플러스에너지 건물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를 보기 좋게 극복했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제로에너지 건물을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라는 소리죠. 미세혈관처럼 돌아가는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는지, 그리고 에너지 효율과 맞물리는 문제인 실내공기질 유지 등은 공간의 특성뿐만 아니라 사용자에 맞춰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이제는 속도전, 정부도 활성화 나서

물론 우리나라도 이러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2017년 완공된 제로에너지 공동주택 실증 단지인 서울 노원 이지하우스(EZ House)가 대표적이죠. 이지하우스는 건물 옥상과 외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습니다. 또한 지열을 통해 온수와 난방을 해결했죠. 발코니의 열 차단 설비와 열 회수형 환기장치 등을 통해 내부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한 건 기본입니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냉방·난방·급탕·조명·환기 등 5개 에너지 소비량을 100% 자체 공급 중이죠.3

이제 문제는 ‘속도’입니다. 제로에너지를 넘어 플러스에너지 건물도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면 이를 어떻게 확산시킬지가 관건이죠. 정부도 바짝 고삐를 당기는 모양새입니다. 2021년 12월 국토교통부는 제로에너지 건축 활성화 유도 정책을 발표했죠. 건물의 에너지성능을 측정·기록한 데이터 기반으로 생애주기별 건물 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또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에 맞춰 공동주택에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를 조기적용(공공 : 2023년~, 민간 : 2024년~)하기로 했죠. 건물 부문의 탄소감축 활동(설비 설치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 금융지원 등도 검토·추진하기로 했습니다.4



우리에겐 ‘융합’의 정신이 필요해

하지만 제일 중요한 점은 바로 ‘융합’의 정신입니다. 사실 건물은 어떤 면에서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습니다. 콘크리트와 철근 등으로 만든 건물 뼈대에 폭염과 폭우를 막는 각종 구조물들이 더해집니다. 여기에 환기공조설비(Heating, Ventilation, and Air Conditioning; HVAC)가 장착되어 우리의 ‘숨(실내공기)’을 컨트롤하고, 이러한 여러 설비들이 작동할 수 있도록 음식과 같은 에너지가 들어가게 되죠.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이러한 건축물의 면면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환기공조설비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도 에너지소비량에 큰 차이가 나타날 수 있죠.5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열원시스템의 에너지 효율이 높고 반송에너지 소비량이 적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사람’입니다. 똑같은 시스템으로 지은 건물이라도 거주하는 사람의 생활 습관에 따라 에너지 사용량은 큰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죠. 어느 시간대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등에 따라 실내공기질도 크게 달라집니다.

제로에너지 건물을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라는 소리죠. 미세혈관처럼 돌아가는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는지, 그리고 에너지 효율과 맞물리는 문제인 실내공기질 유지 등은 공간의 특성뿐만 아니라 사용자에 맞춰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이는 한 부처나 한 영역에서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부처와 영역을 뛰어넘어 각 분야의 지혜를 모아야 기후위기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 1

    Zheng, Wandong, et al. ‘COVID-19 impact on operation and energy consumption of heating, ventilation and air-conditioning(HVAC) systems’. Advances in Applied Energy 3 (2021) : 100040.

  • 2

    서울시 2022년 5월 11일 보도자료 ‘코로나19 이후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량 … 상업·수송 줄고 가정 폐기물 늘었다.’

  • 3

    서울 노원구청 2017년 12월 6일 보도자료 ‘노원 제로에너지 실증단지 오픈하우스 행사 개최’.

  • 4

    국토교통부 2021년 12월 23일 보도자료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

  • 5

    엄태윤, 김상준, 이종호. ‘업무시설의 HVAC시스템 구성과 건물 에너지소비량 분석’. 대한설비공학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2018) : 732-735.

구독하기
TOP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