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기람 기자(조선일보 땅집고 취재1팀장)
저출산과 고령화. 요즘 한국 사회가 가장 관심 갖는 주제 중 하나다. 사실 나는 그동안 이 문제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 기사를 봐도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 내가 우리나라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을 깨달은 계기가 있다. 작년 12월 대만 타이페이(台北) 여행 때였다.
여행을 떠난 시기는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금지가 조금씩 풀리던 때다. 음식이 맛있고 사람들이 친절해 즐겁게 여행을 마쳤다. 대만의 많은 것들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지하철이 가장 인상 깊이 남았다. 대만 지하철에는 유달리 ‘유모차’가 많았다. 어른만 득실득실한 서울 지하철이 떠오르면서 문득 대만 지하철 풍경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만에서는 지하철에 탈 때마다 거의 유모차를 볼 수 있었다. 유모차를 끄는 사람 대부분은 젊은 엄마들이었다. 이들은 유모차를 끌고도 지하철을 자유롭게 활보했다. 러시아워 환승구간에서도 막힘이 없었다. 그 모습은 내게 퍽 깊은 인상을 남겼다. 러시아워 시간대에 엄마 혼자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는 모습이라니, 서울 지하철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닌가?
심지어 대만은 우리나라와 세계 꼴찌를 다툴 정도로 저출산이 심각한 나라다. 그런 대만조차 유모차가 이렇게 흔하게 보이다니.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한동안 서울 지하철을 탈 때마다 유모차가 있는지를 살펴보게 됐다. 지금까지 모두 세 번 정도를 봤는데 외국 사람들뿐 한국인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서울은 지하철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아이를 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아이 울음소리 없는 사회다.
0.78명. 우리나라 작년 합계출산율이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가 한 명도 안 된다는 의미다. 한국 합계출산율은 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다. 현 인구 상태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 2.1명이 필요하다는데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인 멸종론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이건 당연한 수순 같기도 하다. 30대 중반 미혼여성인 내 주변만 봐도 기혼보다는 미혼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중 몇몇은 이미 비혼을 선언했다. 일부는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DINK · 무자녀 맞벌이)으로 살겠다고 한다. 기혼 중에서는 아이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조금 더 많다. 아직 아이가 없는 기혼들은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통계만 봐도 아이 낳기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드러난다. 2023년
3월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청년 삶 실태 조사> 결과에서 대한민국 청년 가운데 결혼 의향이 있는 이들은 10명 중 7명, 출산 의향은 그보다 낮은 10명 중 6명으로 나타났다. 미혼자 상당수가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자기 먹을 수저는 들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물가는 무섭게 오르는데 내 월급은 아직도 귀엽기만 하다. 이 월급을 모아서 집 사고 애 낳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잘 먹고 잘사는 SNS 속 세상과 내 현실을 비교하면 더 초라해진다. 이렇게 ‘남들만큼 해줄 수 없을 바에 아예 낳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출산 포기자는 늘고 있다.
한국에서 남 부럽지 않게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에는 총 6억 원이 넘게 든다고 한다. 2020년 기준으로 아이 한 명을 만 26세까지 키우는데 들어가는 총비용이다. 개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통계청에서 내린 평균값은 이렇다. 2023년 2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5억 9,000만 원)을 훌쩍 넘는 값이다. 물가가 오른 지금은 양육비가 더 올라갔을 테니 부담은 더 커졌을 거다.
일단 낳았다 치더라도 한국에서는 애 키우기가 쉽지 않다. 한국 사회가 어린아이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은 탓이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어린아이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이 화젯거리였다. 아이가 내는 소음이나 일부 부모의 몰상식한 태도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자 노키즈존이 늘어났다. 세대 갈등으로 노인혐오, 중년 혐오에 이어 아동 혐오까지 생겨나면서 아이를 데리고 편히 갈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최근 몇 년 사이 사회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1~2인 가구는 늘고 3~4인 가구는 줄고 있다. 소비 시장에서는 그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보인다. 배달의 민족 등 음식 배달 앱은 1인용 식사 배달이 가능한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피자 같이 혼자 먹기 어려웠던 메뉴들도 1인용이 따로 나온다. 마트에는 소분한 야채와 1~2인용 밀키트가 있다. 가전제품도 1~2인용 맞춤 가전이 앞다퉈 쏟아진다. 나 역시 1인 가구로 살면서 혼자여서 뭘 못하거나 한 적은 없다.
아이를 안 낳으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반려동물 시장은 상승세가 꺾인 적이 없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Family)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주변 미혼이나 딩크족을 보면 대부분은 반려동물을 한두 마리씩 키운다. 이들은 반려동물을 진짜 자식처럼 여긴다.
절친한 친구 A는 딩크족으로 지내면서 예쁜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운다. 강아지 키우는 비용은 한 달에 20만 원 정도가 든다. 알레르기 때문에 값비싼 사료를 먹이고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춰야 해서 평균 비용인 15만 원보다 지출이 좀 더 많은 편이다. 강아지 유치원까지 보내면 비용은 더 불어난다. A는 “강아지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벅차다.”며 “아이 생각은 없다.”고 했다.
산부인과·어린이집·초등학교·학원 등 육아 관련 산업은 완전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군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한때는 선망받는 직업이었으나, 현재 대다수의 교대 경쟁률은 사실상 미달이라고 한다. 문 닫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폐교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기존 학교 존폐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학급 변화는 요즘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대화 소재가 됐다. “명문으로 불렸던 00 고등학교는 전체 학급 수가 최소 300명이었는데 올해 100명까지 줄었다더라”, “00 초등학교는 한국인 학생 수와 중국인·베트남 학생 수가 비슷해서 가정통신문이 4개 언어로 나간다더라” 등등.
부동산 기자인 나는 이 변화를 부동산 시장에서도 체감하고 있다. 아이를 위한 시설은 줄고 노인 대상 시설이 느는 것이 체감된다. 유치원·어린이집이 노인들을 위한 ‘노(老)치원’으로 바뀌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최근 5년간 유치원·어린이집이 노인시설로 탈바꿈한 사례만 모두 80여 곳에 달할 정도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다가 경영 악화로 노인시설로 전환하려는 사람이 늘자 이를 대상으로 하는 유료 컨설팅 업체까지 등장했다.
한때는 ‘돈 안 되는 사업’ 취급받던 실버타운은 수요가 늘면서 공급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보증금 9억 원, 월세 500만 원에 달하는 서울 도심 고가 실버타운은 입주 대기 인원이 엄청나 최소 2년 이상을 기다려야 입주할 수 있을 정도다. 건설사들도 새로운 먹거리로 실버타운을 눈여겨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가 내놓은 월세 최대 1,000만 원 수준에 달하는 초호화 실버타운도 청약에 흥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거시설도 3~4인 가정이 아닌 펫팸족 1~2인 가구를 겨냥하는 상품이 자주 눈에 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빌라·오피스텔 등 이른바 ‘펫 주택’이나 펫 특화 시설을 갖춘 아파트 등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이미 흐름을 타면서 사회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 앞으로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나 학세권(학군을 갖춘 지역) 같은 말 대신 펫품아(펫 시설을 품은 아파트)·노세권(노인시설 인근 지역) 같은 말들이 부동산 시장에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