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법에 따르면 감정평가란 “토지등의 경제적 가치를 판정하여 그 결과를 가액으로 표시하는 것”이라 하고, 감정평가사는 “토지등을 감정평가함을 그 직무”로 하며, 그 입법목적을 “국민의 재산권 보호”로 하고 있다. 감정평가사는 이 법률조항을 어떻게 해석하여 실무에 적용하고 있을까?
감정평가제도가 도입된 지 50년이 되었다. 새삼스럽게 감정평가의 개념을 끄집어내어 반추(反芻)해 보는 것은, 감정평가사의 직무 범위에 대해 아직도 의문이 남아 있고 논쟁이 끝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감정평가사의 직무 범위는 감정평가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 “토지등”이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이며, 그 경제적 가치는 최적 이용의 객관적 교환가치이다. “경제적 가치의 판정”과 이를 기준으로 한 감정평가 방법의 선택은 오직 감정평가사의 직무임과 동시에 의무다. 경제적 가치의 판정이 없는 감정평가는 있을 수 없다. 그 판정은 경제적 가치 유무(有無)와 대소(大小)를 내용으로 한다.
감정평가사에게 감정평가에 대한 신념과 사명감이 없다면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국민의 재산권 가치는 누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노라면 문득 지난날이 떠오른다.
2000년 1월 나는 한국감정평가사협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협회로 감정인 추천을 요청했고,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며 내게 협조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1991년 9월 국방부가 충남 서산시 소재의 토지를 군부대에 편입하면서 그 토지 중 답 4필지, 임야 1필지 토지소유자가 지하에 매장된 화강암의 경제적 가치를 포함해서 보상해달라는 청구에 따라 협의·수용재결·이의재결 등의 절차를 거쳐 법원 소송까지 이른 사례다. 법원 소송 절차에서도 7년간 판결을 하지 못했는데, 법원 감정인이 지하에 매장된 화강암의 경제적 가치를 감정평가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1월 24일 오후 3시 고등법원 부장판사실에 감정인 출석 요청이 있어 참석했다. 국방부, 소유자 대리인 변호사, 법원 관계자 등도 참석했다.
부장판사는 “부산에서 왔어요?”하고,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
“여기는 내 방인데 법정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발령이 나서 와보니 7년이 되도록 이 사건을 판결 못하고 있어요. 얼마 전엔 감정 촉탁을 했더니 감정인이 수술하게 되었다고
반려되기도 하고 … ”라는 판결이 지연된 경위를 들었다.
“아무튼 이야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감정인은 이 화강암이 매장된 토지를 어떻게 감정할 것인지 설명을 해주세요.”
나는 감정평가 3방식과 공시지가 비교법 등의 기준, 방법 등을 약 15분가량 대략 설명하고, “충청지역은 감정할 임야와 유사한 임야가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양질의
화강암이 매장되어 있다 해도
감정가격은 인근 지역의 거래 시가를 초과하지는 못할 것입니다.”하고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해 재판장은 특별한 질문이 없었다.
재판장은 “그럼, 감정인이 방금 설명한 대로 감정해 주시고, … 현장은 군부대라서 출입이 곤란합니다. 현장조사 할 날짜를 법원에 알려주면 법원이 조치를 해 드리겠어요.”하면서 “감정인은 필요한 자료를 모두 복사해 가세요.”라고 했다. 이렇게 감정인 면담이 끝났다.
7년 동안이나 이 사건의 재판이 지연된 이유는 감정평가사가 화강암이 매장된 토지의 경제적 가치를 “없음”이라고 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토지소유자가 응용지질기술사로부터 대상 임야의 화강암 석질 및 매장량 감정을 하고, 또 **대학교 부설 경제경영연구소가 화강암을 17년간 채굴할 수 있는 경제적 가격을 9,905,283,000원으로 토지소유자에게 제시한 것도 그 원인이 되었다.
이 사건의 감정목적물은 답 4필지 11,927㎡와 임야 1필지 19,537㎡(실제 사용 현황은 전 부분 3,280㎡, 대 부분 824㎡, 임야 부분 15,433㎡), 그리고 매장된 화강암이었다. 이 중 쟁점 사항은 임야 1필지에 매장된 화강암의 경제적 가치를 판단하여 토지가격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용토지 보상평가에 감정평가 용어의 정의를 법적 근거로 삼을 수 있는가도 쟁점 사항이 될 수 있었다.
법원은 “1991. 12. 2. 당시 대상 토지 등의 적정가격을 평가하되, 대상 임야에 대하여는 지하에 매장된 석재(화강암)의 경제적 가치를 고려할 것”을 감정 사항으로 요청했다.
법원이 화강암의 경제적 가치를 고려할 것을 요구했지만 “대상 임야는 소유자가 1989. 3. 28. **군수로부터 1989. 3. 29. ~ 1989. 12. 31. 기간 (약 9개월) 동안 토지 4,986㎡에 대한 12,854㎥의 토석 채취허가를 받았으나 가격시점일 현재 그 채취권이 소멸한 상태다. 따라서 대상 임야에 매장된 석재의 경제적 가치를 독립하여 인정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소유자가 짧은 기간이나마 대상 임야에 대한 토석 채취허가를 받았다는 점, 용역조사 결과(1994. 6. 27. ~ 7. 23. 응용지질기술사 ***의 감정서 참조) 상석·비석 및 건축자재용 화강암이 매장되어 있고 그 이용가치가 양호하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대상 임야에 매장된 석재의 경제적 가치는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대상 임야에 매장된 화강암에 대하여는 가채매장량, 원석판매계획, 개발기간 및 개발비용, 원석판매 가능 정도, 인근 지역의 석산 가격 형성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정가격으로 평가했다”라는 의견을 명시하여 감정평가서를 제출했다.
이 임야평가가 타 감정서와 다른 점은 대상 임야의 경제적 가치, 즉 최적 이용가치를 화강암이 매장된 석산(石山)으로 판단하고, ‘(구)공특법’ 시행령 제2조 제7항, 같은 법 시행규칙 제21조 또는 제22조의 광업권 평가규정을 준용하여 수익 환원법에 따라 산정된 수익가격을 토지가격에 반영하여 감정액을 결정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매매가격 등기제도가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거래가 조사가 어려웠지만, 실제 현장조사에서는 이 토지와 유사한, 화강암 채취시설까지 포함한 방매(放賣) 사례를 탐문 조사할 수 있었다.
대상 임야에 대하여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 평가가격은 전 10,000원/㎡, 대지 13,000원/㎡, 임야 8,000원/㎡로 결정했다. 토석채취권의 수익가격 총액은 430,405,776원이며, 이를 대상 임야 면적(19,537㎡)으로 나누면 단가는 22,030원/㎡이었다.
그러나 순수익 실현의 불안전성, 임야 및 석산의 시세, 인근 농지가격 수준 등을 참작하여 수익가격의 20% 수준을 각 이용 상황별 대상 임야 평가가격에 배분하여 합산한 가격을 화강암의 경제적 가치를 고려한 대상 임야의 적정가격으로 판단하여, 총액을 354,649,300원(답 4필지 131,197,000원, 임야 1필지 223,452,300원)으로 결정했다.
7년 송사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내가 평가한 금액은 동일한 가격시점에 수용재결 평가액보다 41,705,825원(13.33%)이 증가했다.
1991.11.14.
수용재결평가액 : 312,943,475원, 석재의 경제적 가치 고려하지 않음.
1992.04.17.
이의재결평가액 : 322,121,740원, 석재의 경제적 가치 고려하지 않음.
1993.03.24.
소송평가액 : 307,843,400원, 법원은 석질·매장량을 고려하지 말고 석산으로 평가할 것을 요청했으나 석재의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음.
1996.03.16.
**대학교 연구소의 화강암 경제적 가격 : 9,905,283,000원.
1998.05.
소송 평가 : 임야 1필지에 대해 207,092,200원의 평가가 있었고, “대상 임야에 매장된 화강암의 경제적 가치는 표준지 공시지가를 보정 한 가격의 5% 수준으로 환가하여 이를 평가가격에 포함”하였음 등이다.
2000년 5월 29(목) 조선일보 42판 29면
이처럼 1993년 3월부터 7년간 다툼이 이어져 왔다. 감정평가서를 법원으로 회신하고 3개월이 지난 2000년 5월 29(목) 조선일보 42판 29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팔아버린 땅, 알고 보니 ‘보물山’> 기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당시 화강암 값이 30억 이상인 것은 맞지만, 문제의 땅을 ‘공군기지 터’로 판 것이지 ‘석재 채굴장’용으로 판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토지를 팔 당시 그 땅에 질 좋은 석재가 묻혀 있는 것을 알았다면 당시 감정평가액으로 최소한 3,700만 원은 더 받았을 것”이라고 판결했다는 내용이다. 이를 해석해 보면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이 사건 토지의 보상액 재결 시 그 경제적 가치를 ‘통상의 임야’로 판단한 것이며, 다만 화강암이 묻혀 있는 것을 알았다면 ‘석재 채굴장’으로 판단하여 최소한 3,700만 원의 증액재결을 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했다.
22년 전 현장조사 당시 찬 바람이 부는 허허벌판의 땅에 초병(哨兵)이 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여 마음 든든했다. 땅 밑에 묻혀 있는 것이 어디 화강암뿐이랴?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온천수, 지하수 등도 있고, 문화재도 있을 수 있다. 토지를 매매하거나 감정평가한 후 지하에 오염물질이 발견되어 소송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감정평가 시에는 매장물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고, 확증되지 않는 사실을 전제로 그 경제적 가치를 판단할 수도 없다. 매장물 주장을 하지 아니하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감정평가사가 작성하는 감정평가서는 달리 반증이 없는 한 그 적정성이 추정된다. 그래야만 그 감정평가서는 물론 이를 기초로 행한 후행 행위의 법적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도 한계가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는 것을 소홀히 하여 몰랐다면, 재산권의 경제적 가치를 보호해야 할 감정평가사가 이를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법원 제출 감정평가서는 그 적정성이 추정되지만 때로는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뒤돌아보면 “감정평가는 감정평가서로 말한다.”라는 말이 실감 난다. 토지의 경제적 가치 유무와 대소의 판단은 감정평가의 본질이며, 항상 내보내는 감정평가서에는 확신과 신념과 자부심이 스며있어야만 신뢰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