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Vol.148 Winter 2022

KAPA 인사이드 제2회 감정평가사 수기 공모전 장려상作 ②

시골평가사의 일상

글. 김상설 감정평가사(삼창감정평가법인 전북지사)

오늘은 한적한 시골로 출장을 간다. 새벽밥을 단단히 챙겨 먹고 등산화와 모자를 필수로 챙겨 가벼운 옷차림으로 출발한다. 하루의 중노동을 위해서는 새벽 운동과 스트레칭 등 준비가 필요하다.
평가대상은 공공사업으로 인한 시골 동네와 주변 농경지 및 지상물건에 대한 보상평가다.

○ 우선 농경지를 보자.

경지정리된 논이고 주변 시세는 @22,000원/㎡ ~ @30,000원/㎡ 정도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에 해당할 것이다. 관련 자료를 조사해본다. 신고된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15,000원/㎡에서 @33,000원/㎡까지 다양하다. 부동산거래는 당사자의 주관적인 사정에 따라 돈이 급한 사람은 주변 시세보다 싸게 팔기도 하며, 귀농 등의 사유로 꼭 그 땅이 필요한 사람은 시세보다 비싸게 쳐주어야 원하는 땅을 가질 수가 있다.

정답은 무엇인가? 감정평가 목적에 따른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담보감정평가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야 부동산의 가치가 실현되기 때문에 장래의 부동산의 가치에 대한 전망이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가 되므로 현재 시점의 감정평가는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보상평가는 어떤가? 소유자는 원하는 매매가 아니고 강제로 수용되는 처지다. 손실보상 이론이 주장하는 생존권 및 생활 보상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결론은 담보는 @25,000원/㎡, 보상은 @30,000원/㎡로 결정했다.

이렇듯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에서도 정답 찾기가 쉽지 않고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해야 한다. 부동산의 고유한 특성(부동성, 부증성, 위치의 고정성, 가격 다원론 등), 손실보상의 기본이론(정당보상, 생활 보상 등)에 대한 사전 지식, 임장 활동을 통한 각종 자료의 분석과 통찰 등은 물론이고 그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소신 있고, 살아 있는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 다음 감정평가 대상은 농작물이다.

다년생 농작물(인삼, 복분자, 오미자 등)은 흔히 보상평가의 대상이 되지만, 단년생 농작물(쌀, 보리, 콩, 마늘 등 일반 농작물)은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공공사업은 사업예정고시, 사업인정고시, 사업결정고시 등의 절차를 걸쳐 연차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단년생 농작물을 훼손시키면서까지 공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속한 공사가 요구되는 소규모 사업의 경우는 단년생 농작물이라 하더라도 수확기까지 공사를 미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단년생 농작물이라 하더라도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

농작물의 보상액은 가격시점까지 소요된 투하비용(묘 포장의 경우) 또는 장래 예상 총수익액에서 장래 경영비용과 현재 상품화가 가능한 금액을 공제한 금액으로 한다. 관련 자료를 보자. 농촌진흥청의 통계자료는 농작물의 파종기부터 수확기까지 전체 총 수확량과 전체 경영비용 그리고 소득률뿐이다. 농작물의 보상액은 가격시점 현재부터 장래 투하비용 및 현재 상품화 가능액을 알아야 하는데, 농촌진흥청은 물론이고 지자체 산하 농업기술원 등에서도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결국 감정평가사가 현장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제일 어려운 것이 장래 투하비용이다. 토지소유자인 농민들 스스로 월별 경영비용에 관한 자료를 축적하거나 정리하는 경우는 물론 기대난망이다.

농작물평가를 접하게 되면 우선 겁부터 난다. 왜냐면 정답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난감하지만 감정평가사는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다. 농업에 대한 애정과 지역적 특성, 각 농작물의 특성(파종 시기, 수확기, 중간 소득의 가능성, 기간별 경영비용, 총 수확량 등)을 깊이 통찰하여 현장에서 정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경험상 농작물의 보상가는 단년생의 경우 작물별로 @500원/㎡ ~ @4,000원/㎡ 수준에서 결정된다. 물론 동일 작물이라 할지라도 시기별 보상액은 다 다르다. 대부분 소규모 사업이기 때문에 농작물 보상금 총액은 소액에 불과하다.

그 대가는 어느 정도인가? 감정평가 수수료는 종가제가 원칙이기 때문에 평가금액이 미미한 경우 수수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작물마다 자료 검토가 많이 필요하고 투박한 농촌현장에서 진행되는 작업이지만 거의 무보수로 이뤄지는 것이다. 시골평가사들은 농부를 닮아서 그런지 순박하다. 고급 전문지식 서비스와 중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분야가 수두룩 한데도 그저 묵묵히 열심히 일해왔다.

○ 감정평가사의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

• 감정평가사는 부동산 판사
재산권의 가치에 관한 문제는 대부분 감정평가를 거쳐야만 한다. 법원의 재판 중에도 재산권의 가치에 관한 것은 감정평가가 판사의 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판사는 죄인이 뉘우치면 형벌을 감경해줄 수 있다. 그러나 감정평가사는 불쌍한 소유자라고 해서 보상금을 후하게 책정해줄 수도 없다. 오로지 냉철하고 공정한 판단력으로 재산권의 객관적인 가치판단만을 요구받고 있다. 민주주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윤리의식보다 더한 객관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 감정평가사는 부동산정책의 첨병
표준지공시지가 조사·평가, 보상평가, 금융기관의 담보평가, 기업자산에 대한 공정가치 평가 등 국가의 중차대한 부동산정책의 최일선에서 감정평가사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투기가 날뛰는 개발예정지대에서 지가 흐름의 연속성과 공인할 수 있는 매매 가능 가격은 어느 정도일지 고민하여 한숨 속에 날을 지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고되는 거래사례는 천방지축이다(이를테면 새만금 관광단지 예정지 인접 지역인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일대의 거래사례는 @90,000원/㎡ ~ @350,000원/㎡까지 약 4배 이상을 넘나들고 있다). 행정지도 가격인 공시지가는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인가?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해야 하는 보상가격은? 감정평가사는 롤러코스터처럼 춤추는 부동산시장에서 평가의 연속성과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지가의 안정성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위해 일하는 감정평가사
각종 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재산권이 실질적으로 감정평가에 의해 최종적으로 판단된다. 각종 세금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는 어떤가? 보상예정지역에서는 공시지가가 낮다는 민원이 많고, 기타지역에서는 공시지가가 높다는 민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국민은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민원을 제기하기 마련이다. 개발지역에서 보상평가를 할 때 토지소유자는 개발이익이 포함된 대토가 가능한 인근 지역의 시세대로 보상해 달라고 하고, 정부(법규)에서는 당해 사업으로 인한 개발이익은 보상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한다. 어디까지를 당해 사업으로 인한 개발이익으로 볼 것인가? 실제 대토를 해야 하는 국민의 재산권 보장은?

불쌍하다. 샌드위치 신세여. 감정평가사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국가의 제도적인 간극을 몸으로 때우며 묵묵히 걸어가야만 하는 숙명인가?

○ 시골평가사의 주장

• 감정평가사의 사회적 책임이 중차대한 만큼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아가자.
국민의 재산권 보호의 최후 보루로서, 부동산정책의 첨병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자. 작금의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피해보상을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 2년 이상 지속된 피해의 적절한 보상을 위하여 우리 감정평가업계가 공헌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

• 수목과 농작물평가에 대한 수수료를 현실화하라.
수목과 농작물평가에 대한 수수료가 종가제로만 되어있는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평가기법 개발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수목은 종량제로 전환해야 하고, 농작물은 영업권평가 수수료에 준하여 작물별 기본수수료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 감정평가사의 박사화를 추진하자.
감정평가사의 업무 범위는 법학, 경제학, 회계학, 건축학, 기계공학, 농학 등 만물 박사를 요구한다. 젊은 감정평가사들이여! 만물 박사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박사 되기’를 즐겨라. 일하면서 박사학위까지 딸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겠는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悅乎)아! 기존 자료나 남의 자료에만 의존하여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들게 된다. 도전적인 사고방식으로 업무 분야마다 새로운 기법을 창출하기 위하여 고심하라. 재산권 보장을 위해, 부동산정책의 첨병을 자임하며 노심초사하다 보면 박사학위는 저절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감정평가사의 박사화를 촉진하기 위해 협회에서 석·박사학위 취득자에게 적절한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법도 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젊은 감정평가사의 눈은 더욱 빛날 것이고, 감정평가업계는 연구 열기와 자신감이 넘칠 것이다.
감정평가사, 대한민국 최고 지성의 전문가 단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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