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Vol.148 Winter 2022

똑똑 부동산 핫이슈

부동산의 차가움과 뜨거움

글. 최용준 기자(파이낸셜뉴스 건설부동산부)

부동산은 늘 예민한 이슈입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집에 대한 가치는 자산 이상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국민 자산의 대부분이 집이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부동산부 기자를 하면 전국 팔도 여러 현장을 다니게 됩니다. 50억 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 단지를 가보기도 하고 쪽방촌을 취재하기도 합니다.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현장을 가기도 하고 건설사들의 기술이 집합된 해저터널과 해상매립 공항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여러 진귀한 풍경들을 보다 보면 어느 현장이 가장 차가울까, 뜨거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동산 관련 취재 현장의 분위기는 차분한 곳과 격앙되는 곳, 둘로 나누어집니다. 경매가 진행되는 법원은 차분해서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지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토지보상 관련 주민설명회 자리는 격앙돼서 뜨거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두 곳의 온도는 굉장히 다르지만 하나는 같습니다. 토지, 주택 등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 결과를 두고 사람들의 반응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지요.


차가운 법원경매

10월 24일 오전 10시, 경매시장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동부지방법원을 다녀왔습니다. 법정은 기본적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입찰법정은 주로 지방법원의 1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대법정에서 주로 진행되기 때문이지요. 법정 문이 열리기 30분 전에 현장을 방문했는데 경락잔금대출 관련 캐피탈, 저축은행 명함이 쌓여 있었습니다. 경매정보업체에서 나와 금일 물건에 대한 경매정보지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경매시장을 취재하러 간 이유는 ‘경매 한파’라는 통계적 수치 때문입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9월 전국 주거시설(아파트·다세대·연립주택 등) 진행 건수는 3,616건으로 이중 낙찰 건수는 1,075건(낙찰률은 29.7%)입니다. 경매가 진행된 물건은 많은 반면에 실제 낙찰로 이어진 건수는 줄어든 셈(8월 낙찰률 41.5%)입니다. 전국 주거시설 낙찰가율 역시 5월부터 하락해 9월 79.90%를 기록했습니다. 낙찰가율은 경매물건의 감정가(100%) 대비 낙찰가 비율로 100% 이하면 감정평가액보다 낮게 낙찰된 것을 의미합니다.

얼어붙은 경매 참여 수치를 보니 경매장에 가면 사람들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입찰법정의 문이 열리자 70여 명의 사람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법정 안은 가득 찼습니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의 외양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부터 검은색 코트를 입고 온 30대 부부, 야구모자를 눌러쓴 20대도 있었습니다. 제 선입견으로는 손에 일수 가방 같은 클러치백을 낀 60대 남성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에 놀랐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여전히 법원경매를 찾는다는 점에 더 신기했고요.

법원경매 현장 안에서는 서로 대화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가 흐릅니다. 눈치싸움이라고 할까요. 법정 가운데 투명한 입찰상자가 있습니다. 누런 봉투에 입찰서류를 밀봉하여 상자에 넣는 방식입니다. 다들 텅 빈 상자를 보면서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한마디도 없이요. 다만, 입찰법정 밖의 복도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경매학원에서 다 같이 온 사람들이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 것이지요. 오늘 나온 물건 중에서 어떤 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경매물건을 사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자산을 불릴지 모색하는 장입니다. 법원경매에는 경매를 공부하러 온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법원경매에 오르는 물건들은 모두 어떤 사연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서늘합니다. 이유를 추측컨대 채권자가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의 담보물건을 경매에 넘기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집이 경매에 오르는 건 그 공간을 소유했던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상실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서울동부지법에서 만났던 한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매물건은 사실 꺼려지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 경매물건은 안 산다고 하는데 저 같은 서민은 경매를 통해서 저렴하게 집을 사려고 왔죠.”

부동산경매사건의 진행기간 등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경매신청이 들어오면 법원은 경매개시결정일로부터 3일 내 경매대상 물건에 대하여 감정평가사사무소·법인에 감정평가 명령을 내립니다. 감정평가 명령을 받은 감정평가사사무소·법인은 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2주일 이내에 감정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감정평가는 사례비교법, 원가법, 수익환원법 등을 활용하여 감정평가하고 여기에 기준시점, 지역 및 개별요인, 감가상각 등을 고려하여 최종적인 경매가액을 산정하게 됩니다.

경매를 통해 집이 넘어간 사람도 경매를 통해 집을 사려는 사람도 절박합니다. 법원경매에서의 차가움과 엄숙함은 감정평가사의 신뢰성과 정확성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법원경매에 오르는 물건들은 감정평가사의 가치 판단을 거쳐 경매대상 부동산의 가격, 즉 감정평가액과 최저매각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토지보상 설명회

부동산 관련 현장의 가장 뜨거운 순간은 고성이 난무하는 LH의 토지보상 관련 주민설명회가 아닐까 합니다. 신도시 조성에 대한 LH 주민설명회에 방문해본 적이 있습니다. 주민들의 극렬한 감정적 표출에 LH 직원들의 설명회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주민들은 “국토부 직원 어딨어”, “LH 책임자 어딨어”라며 주민설명회 자체가 무효라면서 공공택지를 개발하는 일은 절대 안 된다고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신도시 조성 때문에 본인들이 거주하던 땅이 국가에 수용되기 때문에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토지보상지역 주변의 주민들이 몰려올 때도 많습니다. 공공택지에 주민 인프라 시설이 아닌 주택이 들어온다고 하니, 주거환경이 열악해지고 자산가치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택지 개발뿐만 아니라 토지보상금액과 관련해선 더 뜨거운 반응이 일렁입니다. 주민들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토지를 가져가는데 생각했던 보상금액과 차이가 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주민대표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설명회 현장의 공기가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여기저기서 주민들은 “옳소”, “맞다”라며 박수를 치면서 주민대표의 말에 힘을 더합니다. 주민설명회를 진행하는 LH 직원들은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인데 감정적 소모를 겪는 점이 딱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민들 역시 얼마나 화가 나면 저러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국가 입장에선 신도시 및 택지조성을 통해 도시를 계획하는 일도 중요한 행정절차일 것입니다. 국가의 공익사업이 결정되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업시행자의 현장 조사와 감정평가사의 감정평가를 통해 산정한 보상금이 게시됩니다. 3개 이상의 감정평가사사무소·법인에 감정평가를 의뢰해 평균금액을 보상금액으로 결정합니다. 토지소유자가 추천한 1개 감정평가사사무소·법인(소유자 권익 보호), 사업시행자와 시·도지사가 각각 선정한 1개 감정평가사사무소·법인(토지소유자와 시·도지사가 모두 감정평가사사무소·법인을 추천하지 않는 경우나 토지소유자 또는 시·도지사 어느 한쪽이 감정평가사사무소·법인을 추천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2개 감정평가사사무소·법인 선정)이 감정평가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뜨거운 토지보상 관련 업무에도 보상금액을 산정하는 감정평가사의 역할은 무척 중요합니다. 주민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보상금액 산정이 있을까 싶지만, 토지보상 같은 경우는 국가 예산과도 직결됩니다. 이러한 수많은 사람의 토지와 돈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감정평가사는 정확하고 공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가운데 놓인 감정평가사

“감정평가를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감정평가사 한 분은 의뢰인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겁이 나면서, ‘내가 뭔가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감정평가 업무는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대부분 국민에게 부동산 문제는 전 재산이 걸린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동시에 주거, 거주라는 기본적인 권리와 맞닿은 물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감정평가사의 눈에 많은 사람의 돈이 걸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평가사는 차가운 법원경매와 뜨거운 토지보상, 두 곳 모두에서 가장 기초적인 가격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막중한 책임일 겁니다. 물론 감정평가사도 의뢰인을 통해 수입을 올리지만 동시에 공적인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에 기대감도 있을 겁니다. 저도 기자로서 양극단의 부동산 현장을 갈 때마다 감정평가사 개개인의 윤리와 직업의식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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