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Vol.148 Winter 2022

쉼표 교양 슬기로운 직장생활

지금은 준비를 해야 할 때

글. 윤석천 작가

어느덧 2022년도 끝이 보입니다. 희망을 가득 품고 시작한 한 해지만 미래는 짙은 안개 속입니다. 지난 몇십 년 평화로웠던 세계는 전쟁과 갈등 속에 휩싸여있습니다. 기존 질서도 무너지고 있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줄 모르고 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던 저금리 시대도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이후 사라졌던 인플레이션은 괴물이 되어 지구촌 서민의 삶을 할퀴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연말입니다.

기존 질서가 무너질 때 파열은 불가피합니다. 변화는 불안정을 낳기 마련이죠. 금융화된 세계에서 이를 제일 먼저 반영하는 게 자산시장입니다. 올해 자산시장은 그야말로 추풍낙엽 형국입니다. 주식시장은 끝 모를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견고하던 부동산시장도 내림세가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작년만 해도 자산시장은 호황이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투자로 돈 번 사람들로 그득했지요. 코인으로 몇백 배의 이익을 낸 친구,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동료, 아파트를 사 몇 개월 만에 수억 원을 벌었다는 후배 등등. 묵묵히 일만 했던 내가 어리석어집니다. 노동만이 희망이라 믿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납니다. 남부럽지 않은 두뇌와 열정을 가졌음에도 자본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초조하게 했죠. “내가 저들보다 못한 게 뭐야. 더 이상 이렇게 바보처럼 살면 안 돼. 이제부터라도 투자를 해 최소한 남들만큼은 벌어야지.” 이렇게 투자는 어느새 ‘시대정신’이 되었습니다.

‘묻지 마 투자’가 남긴 그늘

벼락거지를 피하려 뒤늦게 투자 대열에 뛰어든 사람들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요? 이들 중 대부분은 아마 큰 손실을 보고 있을 겁니다. 어떤 분은 손해를 보고 투자시장을 빠져나온 분들도 있을 테고 일부는 손실이 늘어나는 자산을 포기하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하고 있을 겁니다. 어느새 투자는 희망이 아닌 고민거리가 돼버렸습니다.

대체 우린 뭘 잘못한 걸까요? 자산시장에 대한 몰이해, 즉 준비되지 않은 ‘묻지 마 투자’가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주체적인 사고에 기초한 투자 행위가 아니라 군중 심리에 휩쓸려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투자란 ‘위험’을 대가로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입니다. 투자 실패는 대부분 이득에만 집중하고 위험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자산시장 호황기엔 이런 현상은 두드러집니다. 너나없이 돈을 버니까요. 자고 일어나면 돈이 불어나는 ‘돈 복사’ 현상은 우리 모두를 투자 천재로 만듭니다. 투자처럼 쉬운 게 없어 보입니다. 이로써 위험은 완전히 무시됩니다. 자신감은 어느새 ‘자만’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시장은 냉혹합니다. 준비 없이 심사숙고의 과정 없이 투자에 나선 이들을 봐주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시장은 돌연 얼굴을 바꿉니다. 천사 같던 표정은 사라지고 험상궂은 악마의 얼굴을 하죠.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장의 모습입니다. 시장은 냉정한 판관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고 준비된 자에겐 상을 줍니다.

투자가 필요한 이유

오늘의 경제는 화폐경제이자 신용경제입니다. 화폐경제는 세상 대부분의 것이 화폐로 치환되는 경제를 말합니다. 문제는 그 화폐 대부분이 ‘빚’이란 사실입니다. 신용경제란 좁혀 말하면 빚으로 움직이는 경제 구조를 말합니다. 정부, 기업, 가계 등 경제 주체 모두는 크든 적든 빚을 지고 있습니다.

과잉 부채는 현대 경제의 숙명입니다. 사실 이는 오랜 초저금리 시대가 만들어낸 후폭풍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무차별적으로 돈을 공급했습니다. 코로나 확산은 이를 더욱 부추겼지요. 초저금리는 빚을 무서워하지 않는 세상을 만듭니다. 너도나도 싼 값에 돈을 빌릴 수 있는데 누가 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경제 주체가 빚의 함정에 빠진 이유입니다. 경제 역시 빚에 의존하는 체제가 됐지요. 빚을 낼 수 없거나 내기 힘들어 빚 규모가 줄어들면 경제가 멈추는 ‘빚 경제’가 돼버린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금리는 재앙이 됩니다. 2022년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 습격으로 각국은 서둘러 금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미국 기준금리는 올 연말 최소 4.5%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에 한국은행도 금리인상 잰걸음을 시작했습니다. 미국만큼 올리진 못하겠지만 거의 4%에 달할 겁니다. 금리를 올린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파열음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주식시장은 급락을 하고 있고 부동산시장도 내리막입니다. 기업들은 자금 조달을 하지 못해 파산 위협에 처해있고 가계 역시 원리금 상황에 허리가 휘는 상황입니다.

이런 고금리 시대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정부와 중앙은행은 고금리가 지속될수록 경제 붕괴가 가속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 인사들 입에서 이제 서서히 이른바 ‘피벗’, 즉 정책전환 가능성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금리인상 가속화에서 속도 조절 쪽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거지요. 물론 금리가 지금보다 더 오를 수는 있습니다. 다만, 오름세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번 초저금리의 늪에 빠진 경제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연착륙을 위한 수단으로써만 기능합니다. 과열된 경제와 튀어 오르는 인플레이션을 약간 누를 정도로만 금리를 올릴 수 있습니다. 20세기 고금리 시대는 21세기엔 불가능합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금리인상 경주는 생각보다 일찍 끝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린 무얼 준비해야 할까요? “Money never sleeps”란 말이 있습니다. “돈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란 뜻이 아닙니다. 과거 고금리 시대에는 돈이 스스로 일을 해 몸집을 불렸습니다. 은행에만 넣어둬도 돈은 불어났으니까요. 이런 현상은 오늘도 보입니다. 고금리 예적금에 돈을 넣으려 대기줄이 생길 정도니까요. 이런 현상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요?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현대 신용경제의 특성상 저금리는 불가피합니다. 그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우리 곁에 올 겁니다. 돈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주인이 노력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거죠. 그 구체적인 수단이 투자입니다. 초저금리는 필연적으로 투자 시대를 다시 만들 것입니다.

모두가 탄식에 젖어 시장을 떠날 때가 최고의 기회가 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2022년 말 시장은 그야말로 공포에 질려 파랗습니다. 이때가 시장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주인이 치열한 공부를 할수록 돈은 왕성히 일을 합니다. 이는 투자의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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